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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간식, 시간과 시간 사이에서 만난 작고 다정한 것들

유유자적 시리즈이동
진유정 | 크루 | 2024년 10월 28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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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724g | 175*225*20mm
ISBN13 979117217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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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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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오기 직전 인적 드문 그 시간을 걷노라면 오늘을 향해 가장 먼저 나선 사람이 된 듯하다. 아침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매일 누군가 그 문을 열어 아침이 시작된다면 이번엔 내가 그 문고리를 당긴 것 같다. 그렇게 나선 거리에 쏘이가 있다. 부지런한 자만이 맛볼 수 있는, 새벽과 아침 사이에 존재하는 하노이(Ha Noi) 찹쌀밥 쏘이가 아침의 문을 연 이들을 길 위에서 맞아 준다.
--- p.19 「아침으로 들어가는 문: 쏘이」 중에서

‘아, 이거다!’ 그럼 그렇지. 반버톳놋에 대한 요란한 찬사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빵과 떡, 어느 쪽도 아니다. 독특한 식감이다. 우리나라의 술떡과 닮은 부분이 있고, 당근케이크의 식감과도 비슷한데 조금 더 쫄깃하고 탱글탱글하다. 향은 더 근사했다. 씹을 때마다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한 향기가 한창 땀 흘리고 있던 몸과 마음의 공기를 단번에 바꿔 준다. 드디어 제대로 된 반버톳놋을 만났다.
--- p.72 「메콩강 끝에서 만난 작은 디저트: 반버톳놋」 중에서

출발하기 전 동반에서 싸 온 소중한 도시락, 쏘이응우삭을 펼친다. 강렬한 색의 대비가 다시 봐도 놀랍다. 염료로 쓴 식물의 향이 배어들어 밥 냄새도 향긋하다. 알록달록한 찹쌀밥을 손으로 조금 떼어 땅콩과 깨, 소금과 설탕이 적당히 섞인 고소하고 짭조름한 양념에 찍어 먹는다. 그리고 직접 탄 짜쓰어맛차를 한 모금. 꿀맛이다. 녹차와 찹쌀밥이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던가.
--- p.94 「국경 마을 최북단 카페로 가는 길: 쏘이응우삭, 짜쓰어맛차」 중에서

찹쌀 반죽 안에 바나나를 넣은 뒤 잎에 싸서 숯불에 굽는다. 까매진 바나나 잎을 벗겨 내면 노릇하게 익은 찹쌀떡이 얼굴을 내민다. 그러면 가위로 대강 자른 뒤 코코넛 밀크와 볶은 땅콩 가루를 뿌려 뚝딱 그럴듯한 간식 한 접시를 만들어 낸다. 특별한 날이 아닌 그저 그렇게 무탈하게 흘러가는 평범한 하루 같은 간식. 그러면서도 다른 어떤 간식에 견주어도 결코 ‘빠지지’ 않는 바나나 간식들에 심심한 사과와 뒤늦은 찬사를 보낸다.
--- p.108 「이러니 바나나 안 바나나: 쭈오이넵느엉」 중에서

판티엣 항구 뒤쪽 골목, 사람들이 빨간 플라스틱 테이블 앞에 작은 접시를 놓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접시는 손바닥보다도 작다. 그 위에 쪼르르 놓인 동글동글한 것들. 지름이 1cm 정도 되는 작은 구슬 모양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이렇게 사람들을 불러 모을 음식인 걸까. 사람들을 모이게 한 이 ‘쪼그마한’ 주인공은 바로 ‘입’이다. 그것도 살이라곤 손톱만큼밖에 붙어 있지 않은 작은 오징어 입, 여기 말로 랑믁믁(R?ng M?c) 되시겠다.
--- p.141 「날 만나려거든 항구 뒷골목으로 오셔: 랑믁」 중에서

나도 하나를 뚝딱 해치우고 하나 더 시킨다. 두 번째 반고이를 들고 그제야 옆에 있는 다른 손님을 둘러본다. 학교 옆 간식 집인데도 모두 어른들뿐이다. 할머니 손님도 한 분 계신다. 아이들은 아직 학교에 있고, 체육 시간인지 운동장이 떠나갈 듯 떠드는 소리가 담장을 넘어온다. 그 소리를 배경으로 나이 든 우리들은 모두 아이처럼 반고이를 들고 있다. 곧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이 몰려와 차지할 자리를 잠시 빌린 듯 말이다.
--- p.149 「어른들도 간식이 필요해: 반고이」 중에서

동그란 풀빵 틀에 쌀 반죽을 부어 굽는 반깡은 반죽만 붓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반죽을 부은 후에는 빠른 손놀림으로 숙주 약간과 메추리알이나 달걀을 얹고 황토로 만든 작은 뚜껑을 일일이 열었다 덮었다 하면서 굽는다. 슬쩍 보면 아이들 소꿉장난처럼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은근히 손이 많이 간다. 길거리 간식이라고 대충은 없다. 게다가 귀여운 생김새와 다르게 알면 알수록, 먹으면 먹을수록 묘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간식이다.
--- p.172 「소꿉장난 같은 풀빵의 반전味: 반깡」 중에서

세상의 달콤함이란 달콤함은 다 모아 차곡차곡 포개 주겠다는 듯 제대로 작정한 스위트함의 총체, 그것이 보비아응옷이다. 우선 얇게 부친 부드럽고 달콤한 전병을 쫙 펼치고 그 위에 단맛은 기본에다 향까지 달큰한 코코넛 과육을 아낌없이 얹는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할 텐데 여기에 다시 가늘고 긴 사탕 엿 하나 과감하게 척 보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게만 하면 뭔가 아쉽다는 듯 검은깨 몇 알을 시크하게 흩뿌린다. 이제 베트남 사람들의 장기인 ‘예쁘게 말기’만 하면 보비아응옷은 완성된다.
--- p.288 「축제가 시작됐다! 세상의 달콤함을 돌돌 말아라: 보비아응옷」 중에서

생각해 보면 반간은 좀 쿨하다. 화려한 색과 외형으로 유혹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색이라니, 이런 이름이라니. 케이크에 이렇게 무시무시하고 직설적인 이름을 붙인 건 용기 있는 자만 먹게 하려는 의도일까. 아니면 반전의 즐거움을 주려는 걸까. 거친 매력을 뿜어내는 이 다크 감성의 케이크가 맘에 든다. 활달하고 외향적인 성격과는 정반대인 침묵하는 조용한 힘으로 삶을 이끌어 가는 사람처럼 믿음직스럽다.
--- p.325 「간을 먹는 밤: 반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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