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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조용하지 않다

박물관은 조용하지 않다

: 감상을 내 것으로 만드는 당당한 전시 관람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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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91189352837
ISBN10 1189352834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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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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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쓰인 글들의 첫 번째 독자는 저였습니다.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쉽게 전시에 말을 붙이고 입을 떼고 글로 모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박물관에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어떻게 제대로 보고 감상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박물관 내부에서 일하면서부터는 사람들이 박물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궁금했습니다. 이들은 박물관의 안과 밖에서 서로를 진심으로 궁금해하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른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서로에게 보내는 초대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 p.7

저는 박물관이라는 공적인 장소에서 이야기를 하는 개인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감상은 아주 개인적인 목표인 동시에 사회적인 활동입니다. 이 책은 관람자에게 전시 감상을 돕는 ‘도구’이자 감상을 토대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체크 리스트’입니다. 나의 감상으로부터 타인과 연결되는 기록과 대화를 장려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전시 공간은 대부분 국공립 박물관 상설전시실입니다. 박물관은 여러 전시 공간 중에서도 대중과 시민에게 가장 열려 있어야 한다는 공공성을 지닌 곳입니다.
--- p.8

전시는 일상을 벗어난 비일상의 공간입니다. 적절한 온도, 조도, 습도가 맞춰진 실내 공간에는 가지런하게 정렬된 사물들이 이름표를 달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깨끗하게 비워둔 공간과 조용한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어색함을, 누군가에게는 안도감을 줍니다. 만약 전시를 보는 일에 약간의 문턱을 느끼는 분이라면, 심호흡 한 번 하고 전시장 문을 열어봅시다. 아무리 좋은 것이 앞에 있어도 굳어 있는 어깨로는 그 무엇도 느끼기 어렵습니다. 감상은 궁금해하는 사람에게만 열리는 문입니다. 의도가 담긴 전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감상하는 법을 연습할 수 있습니다.
--- p.25

박물관(博物館)은 여타 전시 공간보다 가장 권위있고, 학술적인 비영리기관입니다. 기관 자체가 공공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기업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립 박물관과 미술관도요. 법적인 근거에 따라 적절한 건물, 소장품, 인력이 요구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박물관과 미술관의 구분이 명확하지만 해외에서는 보통 뮤지엄(museum)이라는 단어로 이 둘을 통칭합니다. 미술에 특화된 박물관을 미술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용어 구분은 뮤지엄(museum)을 일본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며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무료로 운영되는 곳도 많으나,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학술적으로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입장료를 받는 곳도 있습니다.
--- p.29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전시를 구분할 수 있지만, 저는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상설전시와 기획전시의 구분은 ‘전시 기간’입니다. 이는 전시 구성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상설전시는 비교적 긴 시간을 두고 하는 전시로 10년 이상 같은 형태로 유지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4~5년 정도로 개편 주기가 짧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면적 개편 대신 일부만 개편하기도 합니다.
--- p.35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를 구분해서 봐야 하는 이유는 박물관이 전시를 소개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매체 홍보를 통해 접하는 전시는 대부분 기획전시입니다. 이러한 홍보는 관람객이 기획전시의 관람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기획전시의 제목과 소개 방식에 따라 전시의 성격과 강조점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으며, 이는 전시의 맥락을 이해하는 중요한 정보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상설전시는 언제나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지만, 홍보로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관람객들이 기획전시만 보고 상설전시는 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개인적으로 아쉬울 때가 있어요. 상설전시가 마냥 같은 것을 보여준다는 인상은 잠시 거두고 쌓여 있는 프로그램과 자료와 함께 전시를 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사실 상설전시의 맛은 반복 관람에 있거든요. 반복하실 때마다 감상이 바뀌며 감탄하실지도 몰라요. ‘내가 이렇게 변화했구나’ 하고요.
--- p.37

‘모두를 위한 박물관’, ‘포용하는 전시’. 국공립 전시 기관이라면 꼭 찾아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홈페이지 비전과 미션에 쓰여 있지 않더라도 근무하는 분들 종이 문서 어딘가 한 귀퉁이에는 분명히 있을 겁니다. 우리가 ‘시민’의 이름으로 근대라는 시대를 열고 나서부터 박물관은 시민을 위한 기관임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시민인 저는 기관이 이를 어떤 방식으로 실행하고 있는지 살피고, 이를 만들어가는 자세로 지켜보고 함께해야겠죠.
--- p.41

물건을 수집하고 학습하는 행위는 인간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박물관이라는 장소의 기원은 매우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박물관을 중요한 물건들을 모은 물리적인 장소라고 설명한다면, 이는 박물관의 존재 이유와 특성을 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단순히 중요한 물건을 모아 둔다면, 내 방도 박물관이 될 수 있겠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박물관의 모습은 근대에 시작되었습니다. 박물관의 출발은 프랑스 시민혁명 이후의 사회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근대 이전까지 높은 계급의 사람들은 사치스럽고 귀한 물건들을 자신만의 공간에 보관하며 소유했습니다.
--- p.44

박물관은 개인과 사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다면 그 중요한 역할이 되는 권위는 어디로부터 나오는 걸까요? 박물관의 권위는 시민의 신뢰로부터 나옵니다.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을 보존하는 공간을 넘어, 민주사회에서 시민들이 문화적 자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박물관은 역사적 소장품을 통해 제공되는 진실성과 신뢰성을 토대로 소장품을 연구하고 보존하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기관입니다. 박물관은 시민이 더 나은 방식으로 교육받기 위해 존재합니다. 따라서, 박물관의 권위는 시민들이 박물관을 통해 얻는 교육적, 문화적 혜택에서 비롯되며, 이는 박물관이 민주적 사회에서 공공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 p.48

“나는 아는 게 없어서 박물관에서 할 말이 없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전시물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다면 할 말은 많아지겠죠. 하지만 전시에 지식과 정보는 이미 충분히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걸 부러 공부하고 갈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전시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이 전시가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는가에 대해서입니다. 박물관은 어떤 우선순위에 따라서 주제들을 골랐고 그게 정말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만한 정보인지, 그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 p.54

관람자 입장에서는 매번 말끔하게 단장한 모습의 전시를 만나지만, 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참 지난합니다. 전시라는 것이 대단하고 신비해 보일지 몰라도, 전시 역시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먼지가 풀풀 나고 땀 흘리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고민을 거쳐 전시는 우리에게 옵니다. 정돈되어 있는 공간이 주는 신비감이 즐거움보다는 무거움으로 다가올 때, 숨을 한 번 내쉬고 전시 이면의 사람들의 흔적을 살펴봅니다. 누군가의 메모지에 적혀 있던 작은 아이디어가 이곳에 오기까지의 여정을 생각해 봅니다. 고장 난 터치스크린도, 깜박거리는 조명도, 갑자기 제한된 전시 영역도 사정이 있겠거니 합니다. 전시를 만드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생각의 폭을 넓히고 대화의 역동을 만들어 봅시다.
--- p.89

감상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나라는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감상은 나의 존재를 스스로 믿게 만드는 일입니다. 나의 이야기는 나만 쓸 수 있습니다. 엉성하고 짧아도 나에 대한 정보는 나에게서 나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중요하지 않아서 없는 것이 아니고 쓰이지 않아서 중요한 줄 모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반드시 써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이 있습니다.
--- p.129

저에게 전시를 보기 가장 좋은 시점은 여유가 있을 때입니다. 잘 먹고, 잘 자고 나서 무언가에 파고들 호기심이 생기면 오래 기억될 감상을 남기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좋은 감상을 만드는 조건은 장소가 아니라 타이밍일지도 몰라요. 그래서 매번 새로운 소식을 따라 숙제처럼 전시를 보는 것도 선호하지 않습니다. 물론 전시를 기다렸다가 때맞춰 보러 가는 즐거움도 있지만, 내가 준비가 되었을 때 보러 가는 전시가 제일 오래 남더라고요. 전시보다 제 삶의 흐름이 중심이 되니까, 전시를 보러 가는 날에는 원래 알고 있는 전시 공간을 중심으로 그날 볼 수 있는 기획전이나 다시 보고 싶은 상설전을 보러 가게 됩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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