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메뉴
주요메뉴


소득공제 베스트셀러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 판매지수 552
베스트
주제로 읽는 역사 90위 | 주제로 읽는 역사 top100 1주
정가
22,000
판매가
19,800 (10% 할인)
배송안내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11(여의도동, 일신빌딩)
지역변경
  • 배송비 : 무료 ?
eBook이 출간되면 알려드립니다. eBook 출간 알림 신청
  •  국내배송만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372쪽 | 125*188*30mm
ISBN13 9791171178605
ISBN10 1171178603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한라산 등반코스 중에 가장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 영실 탐방로다. 영실 탐방로는 존자암지로 갈 수 있는 영실 탐방로 입구(주차장)에서 시작해 오백 장군(오백나한)이라 불리는 병풍바위(1,300~1,550m)를 거쳐 한라산 정상이 보이는 아름다운 ‘선작지왓’을 지나 윗세오름(1,700m)으로 이어진다. 윗세오름에서 어리목 탐방로와 합류하며, 여기서 다시 한라산 남벽 절벽 바로 밑 지점인 남벽 분기점(1,600m)까지 갈 수 있다. 남벽 분기점은 돈내코 탐방로와 이어진다. 총길이 편도 5.8km이며, 영실 휴게소에서 남벽 분기점까지 2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이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뽑으라면 단연코 선작지왓이다. 가파른 경사의 영실계곡의 영험함을 경험하고 나면 바로 완만한 경사의 긴 등반로가 나타나는데 이곳을 선작지왓이라 한다. ‘선’은 설익었다는 뜻이며, ‘작지왓’은 자갈밭을 뜻하는 제주어다. 이곳은 넓은 초원지대에 온갖 꽃들로 뒤덮여 산상 화원을 방불케 하고, 한라산의 서쪽 어깨 끝에서부터 시작해 남벽 밑의 방애오름까지 이어지는 드넓은 공간을 차지한다. 방애오름의 경우 봄철 오름 전체가 온통 분홍으로 덮일 정도로 아름다운 공간이다.
---「03 영곡」중에서

성판악은 표고 1,215m, 비고가 제일 낮은 쪽이 200m이며 한라산 동쪽에서 가장 규모가 큰 오름으로 크기만큼이나 높고 가파르며, 사방에 크고 작은 골짜기들이 패어 있는 험준한 산
이며, 서귀포시(남원읍 신례리)와 제주시(조천읍)의 경계 역할을 한다. 제주 동남쪽에서는 그만큼 눈에 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제주십경도〉의 ‘서귀소’나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제주십이경도〉의 ‘서귀진’ 그림을 보면 성판악이 두드러지게 묘사되어 있다. 두 그림 모두 그림 상단 중앙에 한라산 백록담 주봉이 중심을 잡고 좌측에 영실기암과 우측에는 성판악(城板岳)을 그려 넣었다. 특히 성판악은 두 그림 모두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크고 웅장하게 묘사되어 있다. 수많은 제주 남쪽의 오름 중에 유독 성판악을 크고 웅대하게 그린 이유가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성판악은 다른 오름들과 다르게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성판악이 주인인 그림이 하나 더 있다. 보물 제652호로 지정되어 있고, 국보 지정이 추진 중인 〈탐라순력도〉가 그것이다. 이 그림은 조선시대 제주목사를 지낸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화공 김남길(金南吉)에게 자신의 재임 기간에 순력(巡歷, 조선시대에 관찰사가 자기 관할 내의 각 고을 민정을 시찰하던 일)과 각종 행사를 그림으로 기록해서 남기도록 한 화첩이다.
---「04. 성판악(성널오름)」중에서

타임머신이 있다면 탐라국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다. 그때로 돌아가면 한자어나 일본인들이 정해놓은 지명말고 진짜 제주어로 된 지명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거의 모든 지명이 한자를 차용하여 기록하다보니 본래의 순수 우리말이나 제주어로 된 지명들이 전혀 다른 의미의 한자어 지명으로 변해버린 것들이 허다하지 않는가?

물론 그 한자어의 의미 또한 오랜 기간 제주 사람들과 함께해 온 터라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없고, 어떤 것들은 또 나름의 의미와 철학이 깃들어 있어서 양쪽 모두 우리의 소중한 자산임에는 틀림없지만 순우리말이나 제주어로 된 지명을 찾는 일은 의미있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당장 한라산이란 이름부터 한자어 아니던가?! 한라산은 본래 ’한울오름’에서 비롯된 ‘한울산’이라 전해진다. 1930년대 한 종교에서 펴낸 자료를 보면 한라산은 한울오름에서 나온 한울산을 한자어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한라산이 되었다고 한다. 한울산의 정확한 뜻은 전해지지 않지만, ‘한’은 순우리말로 크다 또는 가득하다의 뜻이고, 순우리말인 ‘울’은 우리나 가족을 뜻하여 이 둘을 합하면 ‘한울’이 되는데, ‘한울’은 천도교에서 하늘, 큰 우주, 온 세상을 뜻한다. 단어 뜻 자체로만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우리말인가?! 이런 곱고 아름다운 우리말 지명이 탐라가 고려에 복속되면서 한자어를 차용하여 표기되어 한울산이 한라산(漢拏山)으로 표기된 것이다.
---「05. 산벌른내」중에서

“서귀포에 일호광장 말앙(말고) 뭐 이서(있어)?”
그러면 우리는 크게 개의치 않는 듯 게슴츠레 눈을 하고 이렇게 대답했다.
“무사(왜)? 일호광장에 다 이서(다 있어).”

시엣아이들은 보통 지방을 내무렸다(나무랐다). 특히 서귀포 친구들을 잘 내무렸다. 그들은 서귀포에 잘 와보지도 않지만, 한번 와보고는 일호광장에 한번 놀라고 또 일호광장을 벗어난 모습에 한 번 더 놀랐다. 그러면서 서귀포에는 일호광장 말고는 없다고 우리를 내무렸다.

사실 딱히 일호광장 말고는 제주시보다 크거나 새로운 것들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거꾸로 이야기하면 일호광장 하나만큼은 그들도 인정한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들이 인정하고 말고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일호광장이 서귀포를 상징하는 중요한 랜드마크였고, 서귀포가 도시라는 유일무이한 징표였던 셈이었다.
---「06. 일호광장」중에서

이 회사의 포경선들은 서귀포 연안 해역에서 고래를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 엄청난 포획이 자행되었다. 얼마나 많은 고래가 희생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는 없지만, 수많은 제주 고래가 남획되었다. 이를 말해주는 사료가 있는데, 1937년 11월 12일 『조선일보』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제주도 근해서 포경 사십사두(四十四頭)”(기사 제목) “본 수산 포경사무소 소유 4척의 포경선은 9월 하순에 출장하여 11두의 포경을 하고 돌아왔었으나, 10월 한 달 동안에 44두라는 놀라울 만치 대량의 고래를 잡았다. 제주도 근해의 최고 포경 기록이 1년간 48두였는데, 올해에는 그 기록을 1개월 중에 돌파하였다고 한다.”(기사 본문)

아마도 이런 식이었으면 매년 수도 없이 많은 제주 고래가 사라졌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매일같이 일본 동양 포경주식회사에서 고용된 수많은 인부가 종일 고래를 해체했을 것이다. 전성기 시절에는 수백 명의 인부가 고용되어 하루 종일 고래를 해체했다고 한다. 고래고기와 기름은 무역업자들에 넘겨졌고, 모두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반면 조선인들은 피비린내 나는 고래 해체 작업을 하고 품삯을 받았다. 가치를 인정받는 것들은 일본으로 반출되었지만, 반출되지 못하고 남겨진 것들은 피비린내와 썩은 부산물들이었다.
---「07. 서귀포항 방파제」중에서

폭풍의 언덕에 올라 황우지해안을 바라보면 절벽 아래 해안가에 12개의 동굴이 나 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 듯하고, 도대체 누가? 왜 만들었을까?

태평양전쟁이 끝나갈 무렵 일제는 제주도를 일본 본토 사수의 ‘마지노선’으로 삼는다. 이른바 ‘결 7호 작전’이라 불리는 방어계획이 세워지고 병력을 제주도로 집중시켰다. 1945년 1월 1천 명 수준에 불과했던 일본군이 8월에는 약 7만 명에 이르렀다. 한반도에 배치된 일본군 36만 명의 1/5에 해당했다. 이 중 1만 8천 명은 조선인 징집병이었다.

일본군은 제주도에서의 결사 항전을 준비했다. 이오지마와 오키나와에서 보여주었던 끈질기고 무모한 저항을 고스란히 재현하고자 했다. 일본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었다. 군·민을 총동원한 다 죽기 작전으로 미군에 심각한 타격을 주어 전쟁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일으켜 강화 협상에 유리한 입장을 가지려고 한 것이었다.

실제로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그들의 목적이 잘 드러났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들을 총알받이로 내세우거나, 자결하라고 강요해서 무려 12만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일본군 전사자 2만 3천 명의 약 5배 이상이 희생된 것이다. 81일 동안 하루 평균 1천 481명씩 죽어나갔다. 대재앙이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원자폭탄 공격이 없었다면 제주도는 오키나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피해가 있었을 것이다. 오키나와의 3배에 이르는 7만 명의 병력이 있었고, 제주가 함락되면 그 다음 차례는 일본 본토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결사 항전을 위해 제주 곳곳을 요새화했다.
---「08. 외돌개」중에서

반면 매일장은 1960년부터 지금 이 자리를 줄곧 지켰으니 역사를 인정해줄 만하다. 더욱이 있는 자리가 서귀포 최고 노른자위 땅 아니던가? 중앙로, 중정로, 동홍로가 만나는 삼각형 안이 매일장이 있던 자리다. 보통 도심이 개발되면 이런 알토란 같은 곳부터 개발되곤 하는데 지금껏 자리를 유지하는 걸 보면 매일장의 생명력은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두 시장은 명실상부한 서귀포를 대표하는 유통시장이다. 그렇지만 두 시장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물론 두 시장 모두 깎아달라면 깎아주고, 더 달라면 더 넣어주는 정감 있는 시장이며, 시민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 있는 장소임은 틀림없지만 분명히 두 시장 사이에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

오일장에는 사람이 살지 않지만, 매일장에는 사람이 산다. 즉, 매일장은 시장인 동시에 주거 공간이기도 했다. 그곳의 상인들은 장사치이자 주민들이었다. 그들은 낮에는 상인들로, 밤에는 주민이 되어 매일장을 지켰다. 점포는 그들의 작업장이었고, 점포 쪽방이나 다락방, 2층에는 그들의 주거 공간이 있었다. 친구들은 학교가 끝나면 매일장으로 돌아갔고, 다음 날 아침이면 매일장에서 등교했다. 매일장은 시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매일장 안에는 놀이터도 있었고, 교회와 성당이 있었고, 식당과 주점도 있었다.
---「09. 매일올레시장」중에서

천제연은 ‘천제(天帝)의 연못(淵)’이란 뜻이다. 즉, 인간의 못이 아니라 하늘의 못이란 뜻이다. 연못에 붙는 이름치고 너무 거창한 이름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천제연을 보는 순간 ‘아,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아름다움의 한계를 넘어섰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이 아름다움 때문에 천제연은 8km가 넘는 계곡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천제연이 곧 연못이며, 폭포이기도 하고, 계곡 전체를 이르는 이름이다.

수심 21m의 연못과 높이 22m의 병풍과 같은 주상절리대 절벽이 만나는 이곳은 옥황상제를 모시는 칠선녀들이 밤이 되면 구름을 타고, 피리를 불며 내려와 목욕하고 올라갔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천제연의 물은 너무나 깨끗한 나머지 영롱한 옥색을 띤다. 깨끗한 물은 주변 풍경을 그대로 반사해서 절벽이 마치 물속 깊은 곳까지 이어지는 듯하다. 계곡의 깊숙함은 바람마저 멈추어 세우니 거울 같은 연못의 수면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고요하다. 이러고서 어찌 사람의 연못일 수 있겠는가?

사실 천제연폭포는 한 개의 폭포가 아니다. 천제연계곡에는 총 3개의 폭포가 있는데, 이 모두를 총칭하여 ‘천제연폭포’라 한다. 이 중 가장 상류에 있는 폭포가 ‘제1폭포’이며 ‘천제연(天帝淵)’이 있는 곳이다.
---「12. 천제연계곡」중에서

제주도 368개 오름 중에 손에 꼽히는 명산이 서귀포에 있다. 바로 ‘군산(軍山)’이다. 안덕 난드르(대평리)와 창천리부터 서귀포 예래동에 이르는 장대한 오름이다. 제주시 서북쪽 어디서든 보인다는 오름의 제왕, ‘어승생악’보다 면적이 크다. 어승생보다 덩치가 큰 오름은 군산이 유일하다. ‘군산’의 병풍 같은 산세가 군 진영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군산은 서귀포시 동지역과 안덕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데, 군산의 동쪽이 ‘열리’라 불리는 ‘예래동’이다. ‘열리’는 ‘예래리’의 발음이 축약된 것으로, 보통 ‘예래동’이라 쓰고 ‘열리’라 읽는다. 그런데 ‘예래’의 지명 유래는 꽤 흥미롭다. 보통 지명에 예가 쓰이면 예(禮)가 쓰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예래리의 예는 ‘사자(사자 예, 猊)’가 쓰인다. 거기에 래(來, 오다)를 붙여 ‘사자가 온다’라는 뜻이다. 실제로 군산 정상에 가면 사자바위가 있고, 중문관광단지에서 열리로 들어가는 도로 초입에는 아가리를 벌려 포효하는 사자상이 서귀포를 보며 서 있다. 재미있다. 열리는 곧 ‘사자의 마을’이다.

아주 오래전 마을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는 고승에게 마을에 불길한 일이 끊이질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고승은 서귀포 앞바다에 범이 웅크리고 이곳을 노려보고 있으니, 그 드센 기운이 마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면서 범과 호각지세를 이루는 사자를 끌어들여 그 기운을 막아야 한다고 했으니 사람들은 사자의 기운을 이곳 군산에서 찾은 것이다. 군산 정상에 있는 서귀포를 향해 나 있는 바위를 사자바위로 하고 이 마을을 예래라 명명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후부터 예래에는 불길한 일이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13. 법환 최영로」중에서

황소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지만, 그의 단칸방에도 황소처럼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다해내는 우리 겨레처럼 아이들에게 인내와 끈기를 심어주고자 그가 지은 〈소의 말〉이라는 시를 붙여 넣었다. 당시 소는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그래서 그의 황소 그림은 언제나 힘이 넘치고, 역동적이며, 위용이 있고, 우직하며, 묵직한 느낌을 주었다. 굵은 선으로 표현된 황소의 강렬한 움직임은 마치 거친 캔버스 위를 사정없이 내달리며 지축을 흔드는 싸움판의 황소를 닮아 있었다. 그것이 중섭이 고집했던 황소 그림의 특징이다.
---「15. 이중섭거리」중에서

서북청년단 등 토벌대가 제주에서 벌인 그 만행을 어찌해야 하는 것일까? 너무 참혹해서 묻어두어야 하는가? 아니면 참혹한 역사라도 기록해야 하는 것인가? 기록하면 아마도 19금이 아니라 ‘99금’ 정도는 될 텐데, 장담컨대 목 베기 경쟁이나 난징의 강간을 뛰어넘는 미친 짓들이 나올지도 모른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산남의 중심은 서귀면이었다. 이즈미 세이치의 『제주도』에 의하면 1936년 제주도 내 1만 명 이상 인구가 있던 곳은 제주읍과 대정면 그리고 서귀면이 유일했다.

서귀면은 남제주군청 소재지였고, 모슬포와 성산포에 경찰서가 생기기 전까지 산남 유일의 경찰서도 서귀면에 있었다. 그리고 조선경비대 제2연대 1대대 대대본부와 악랄함으로 악명높았던 서북청년단 사무실 역시 서귀면에 있었는데, 모두 서귀리포구 인근지역(서귀리)에 모여 있었다.
---「16. 정방폭포」중에서

한라산은 물을 품고 있다. 한라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들이 제주 전 지역으로 뻗어나가면서 곳곳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제주도의 지질 특성상 제주도에서는 하천이 발달한 지역이 별로 없다. 현무암층이 대부분 지하로 흡수해버리기 때문에 섬 전체가 물이 아주 귀한 곳이었다. 물론 서귀포는 예외다. 물이 귀한 고장 제주에서도 물이 좋았다.

실제로 서귀포 동쪽 끝 효돈에서 제주 남쪽의 최대 하천인 산벌른내(효돈천)에서부터 서쪽 끝 예래의 논짓물까지 마을마다 하나씩 하천이나 큰 용천수를 끼고 있다.
---「17. 강정마을」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회원리뷰 (0건) 회원리뷰 이동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0건) 한줄평 이동

  등록된 한줄평이 없습니다!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배송 구분 예스24 배송
  •  배송비 : 무료배송
포장 안내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촬영범위 : 박스 포장 작업

  • 포장안내1
  • 포장안내2
  • 포장안내3
  • 포장안내4
반품/교환 안내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반품/교환 방법
  •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  모바일 쿠폰의 경우 유효기간(발행 후 1년) 내 등록하지 않은 상품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모바일 쿠폰 등록 후 취소/환불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  쿠폰은 결제 시 적용해 주세요.
1   19,800
뒤로 앞으로 맨위로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