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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라기 로맨스

조성주 저 / 박우서 그림 | 북스토리 | 2024년 10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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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80g | 125*185*10mm
ISBN13 9791155643457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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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라는 태양이 좀 더 높이 솟을 때쯤 도착할 것이다. 머지않아 동족들을 이끌며 대지를 뚫고 나타나 환하게 미소 지을 플로라를 생각하니 참으려 해도 자꾸만 코가 움찔거린다. 그리고 마치 정해진 순서처럼 한 친구의 모습이 뒤이어 떠오른다. 지나간 1억 3000만 번의 봄을 맞을 때마다 나는 그 친구를 대신하여 플로라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디노. 그는 위대한 종족의 초라한 후예였다.
--- pp.11~12

디노는 작은 소리를 따라 땅을 내려다보았다. 주변에 있는 것들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이상한 풀이 보였는데 아마도 그것이 자신을 향해 소리치고 있는 것 같았다. 디노는 우선 발을 고쳐 디뎠다. 그러고는 그 풀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고개가 바닥에 닿을 만큼 천천히 내렸다. 마치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약간의 현기증이 났다.
--- p.31

디노는 안타까웠다. 그녀를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마주치는 모든 자들이 공포에 떨며 자신을 바라볼 때의 서글픔을 어떻게 말할 수 있으며, 아무리 숨고 싶어도 숨을 수 없는 거대한 자의 절망감은 또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 맞아. 난 너하고는 달라….
디노의 말에 플로라는 더욱 발끈했다. (…)
- 이젠 날 좀 혼자 있게 해줘.
디노는 거북했다. 뭔가 얘기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식으로 대화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힘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 pp.84~85

- 난 ‘영리한 사업가’라고 했잖아. 세상을 좀 알지.
여전히 당황한 상태였지만 플로라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
- 안심해. 이건 공평한 거래야. 어렵지도 않아. 그냥 날 받아들이기만 하면 돼. 그럼 넌 ‘번성하는 능력’을 가지게 될 거야. 우리 같이 저 들판을 가득 채워보자고.
- 내가 너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 난 최초의 꽃이야.
- 최후의 꽃이 될 수도 있겠지.
--- pp.91~92

디노의 편안한 태도가 주는 불길함 때문에 내 마음은 날카로운 가시덤불 비탈을 굴러 내리듯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한없이 깊어진 그의 눈동자 앞에서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 다시 한번 디노는 거대한 몸을 일으켰다. 그가 온전히 일어서는 데는 시간이 한참이나 걸렸다. 그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서 있는 무기력하고 보잘것없는 내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나는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주었다.
- 머지않아 아주 춥고 긴 겨울이 올 거야. 플로라를 걱정하지는 마. 그녀는 이제 강해졌어. 작은 씨앗이 되어 땅속에서 추위를 나는 법을 깨닫게 되었거든.
--- pp.132~133

- 플로라, 난 네 이름이 정말 좋아.
앙상해진 나무와 바위들 사이로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돌다 스며들었다. 말을 마친 디노는 방금까지 있었던 그 높은 곳으로부터 느릿느릿 무너져 내렸다. 누구보다도 거대했던 그의 몸은 엄청난 울림만을 남긴 채 돌과 흙을 가르며 깊이 박혀버리고 말았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키다리나무 숲은 오래도록 슬프게 흔들렸다. 이제는 결코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을 디노의 모습을 바라보며 플로라는 나직이 속삭였다.
- 너무 짧아. 너무 짧아, 안녕과 안녕 사이가….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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