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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254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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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소설 2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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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64쪽 | 140*210*30mm
ISBN13 9791141601539
ISBN10 1141601532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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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까지 맨살을 드러낸 사람들이 열기로 달아올라 시큼한 냄새가 나는 더러운 땀을 흘리며 벌겋게 달아오른 용광로의 아가리로 석탄더미를 던져넣으면 거대한 용광로가 그것을 집어삼키며 낮은 소리를 냈다. 그런데 저쪽 바에는 사람들이 의자 팔걸이에 다리를 올려놓은 채 코냑과 리큐어를 천천히 음미하며 독한 담배 연기가 자욱한 공기 속에 태평하게 앉아 있었다. 무도장에선 모든 것이 반짝이고 빛과 온기와 기쁨이 흘러넘쳤으며 쌍쌍의 남녀가 원을 그리며 왈츠를 추고 몸을 꺾으며 탱고를 추기도 했다. 부끄러운 줄 모르는 달큼한 애수 속에서 음악은 집요하게 하나만, 오직 하나만 바랐다……
--- p.14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중에서

셀 수 없이 이글거리는 배의 불빛들이 눈보라 너머 악마의 눈에 띄었다. 악마는 두 세계의 관문인 지브롤터해협에서 밤과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는 배의 뒤를 쫓고 있었다. 악마는 절벽만큼 거대했지만, 오래된 심장을 가진 ‘새로운 인간’의 오만이 창조한 수많은 굴뚝이 달린 여러 층의 배 역시 거대했다.
--- p.37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중에서

“가장 큰 희극이 뭔지 알아? 네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무리 설득해도 믿을 수가 없다는 거지. 바로 그게 문제야, 창. 그렇지만 삶이란 얼마나 멋진가. 정말 멋져!”
--- p.51 「창의 꿈」중에서

만약 창이 선장을 사랑하고 그를 느낀다면, 자신의 기억의 눈으로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 신성한 존재를 본다면, 아직 선장이 그와 함께 있다는 뜻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이 세계에 죽음은 허락되지 않는다.
--- p.62 「창의 꿈」중에서

오랫동안 나와 누이는 수호돌에 끌림을 느끼며 그 옛스러움에 매혹되어 살아왔다. 하인들, 마을과 저택은 수호돌에서 한 가족을 이루며 살았다. 우리 선조들이 이 가족을 이끌어왔다. 실제로 후손들도 오랫동안 그렇게 느껴왔다. 가족, 일족, 씨족의 삶은 뿌리가 깊고 굴곡이 많고 신비하며 때론 무섭다. 그 삶은 어두운 심연과 전설들, 그리고 과거가 있어서 강력하다.
--- p.71 「수호돌」중에서

나타시카는 첫번째 짝사랑의 쓰리고 달콤한 독을 홀로 천천히 전부 들이켜고, 수치심과 질투심에, 밤마다 꾸는 끔찍한 악몽과 달콤한 꿈에 넘치게 고통받았다. 고요한 스텝의 하루하루가, 이룰 수 없는 꿈과 기대가 그녀를 오래도록 괴롭혔다.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원통한 감정은 종종 그녀의 마음속에서 부드러운 감정으로 바뀌었다. 열정과 절망은 순종과 기대로 바뀌었다. 아무것도 원하거나 기대하지 않으면서 모든 사람에게 영원히 숨겨야 하는 사랑. 눈에 띄지 않는 가장 보잘것없는 존재로 그의 곁에 남고 싶은 마음. 수호돌에서 날아온 소식에 가끔은 정신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소식은 오래도록 없었고, 수호돌 특유의 일상의 감각도 사라졌다. 그래서 수호돌이 너무나 아름답고 그리운 곳으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고독과 슬픔은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 pp.124~125 「수호돌」중에서

“내가 우리 아빠 책에서 읽은 건데, 여자는 이런 아름다움을 갖춰야 한대. (……) 깊은 밤처럼 검은 눈썹, 부드럽고 발그레한 뺨, 가냘픈 몸매, 보통보다 긴 팔. 꼭 보통보다 길어야 해! 그리고 작은 발, 적당히 큰 가슴, 균형이 잘 맞는 동그란 종아리, 진줏빛 무릎, 비스듬한 어깨. 내가 그 많은 걸 거의 다 외웠어. 전부 너무나 옳은 말 아니니? 그런데 뭐가 제일 중요한지 알아? 바로 가벼운 숨결이야! 그런데 그게 나한테 있어. 내 숨소리 좀 들어봐. 정말이지, 그렇지?”
이제 그 가벼운 숨결은 세상에서 사라져 구름 가득한 이 하늘에, 이 차가운 봄바람 속에 흩어져버렸다.
--- p.163 「가벼운 숨결」중에서

중위가 그녀의 손을 잡아 자기 입술에 댔다. 그녀의 작고 강단 있는 손에서는 햇볕에 그을린 냄새가 났다. 그녀는 한 달 내내 남부의 태양 아래 뜨거운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해수욕한 뒤라(그녀는 흑해의 아나파에서 왔다고 말했다) 이 가벼운 아마亞麻 드레스 아래의 몸은 아마도 온통 탄탄하고 건강하게 그을렸으리라는, 생각만 해도 행복하면서 심장이 멎을 만큼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 p.168 「일사병」중에서

가슴이 내려앉는 지금, 일상적이고 평범한 모든 것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지! 그렇다, 그는 가슴이 내려앉는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두려운 ‘일사병’으로 인해, 너무나 큰 사랑으로 인해, 너무나 큰 행복으로 인해 가슴이 내려앉았다!
--- pp.174~175 「일사병」중에서

이 끔찍한 사건은 수수께끼처럼 기이하고 해결이 불가능하다. 한편으로 볼 때는 몹시 단순한 듯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복잡해서, 우리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이 말하듯 삼류소설 같기도 하지만 동시에 깊이 있는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는 그런 사건이었다……
--- p.181 「옐라긴 소위 사건」중에서

나였다면 옐라긴에 대해 말할 때 무엇보다 그가 스물두 살이라는 사실을 지적했을 것이다. 치명적인 나이, 한 인간의 미래를 좌우하는 두려운 시기. 일반적으로 인간에게 이 시기는 의학적으로는 성적 성숙기로 규정된다. 이 시기에 인간은 인생에서 상당히 가볍게, 대부분은 그저 시적으로 고찰되는 첫사랑이라고 불리는 것을 겪게 된다. 종종 이 ‘첫사랑’이 극적이거나 비극적인 사건들을 동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이 시기에 인간이 일반적으로,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열렬한 마음이라고 불리는 떨림이나 아픔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것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이 시기에 인간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채 지독한 성性의 개화와 고통스러운 발견, 그리고 최초의 성의 미사를 경험한다.
--- pp.197~198 「옐라긴 소위 사건」중에서

미탸의 질투를 이루는 모든 감정은 끔찍했다. 그 가운데 가장 끔찍하면서도 뭐라고 규정할 수 없고 심지어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복되고 달콤한 어떤 것, 미탸와 카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그것이 카탸와 다른 남성을 생각할 때는 극도로 혐오스럽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런 감정을 느낄 때면 카탸가 그의 마음속에 격렬한 증오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녀와 함께 일대일로 하는 모든 것은 천국의 아름다움과 순결함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녀와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것이 순식간에 변했다. 그것은 목을 조르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파렴치한 어떤 것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 미탸가 죽이고 싶은 대상은 상상 속의 맞수가 아니라 바로 그녀였다.
--- p.248 「미탸의 사랑」중에서

바로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환희와 공포로 그의 심장을 찔렀다. 카탸! 아침의 태양이 그녀의 신선함으로 반짝였고, 정원의 상쾌함은 그녀의 상쾌함이었으며, 교회 종소리에 담긴 유쾌한 모든 것이 그녀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으로 한들거렸다. 할아버지의 벽지는 여기 이 저택, 이 집에서 살고 죽은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의 삶, 고향, 시골의 옛 시절 전부를 그녀가 미탸와 공유하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 p.292 「미탸의 사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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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부닌은 전형적인 러시아적 특성을 산문 속에 부활시킨 위대한 예술적 재능을 지닌 작가다.
-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부닌은 투르게네프와 톨스토이로 대표되는 러시아문학의 위대한 전통에서 마지막으로 활짝 핀 꽃이다.
- 런던 매거진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는 도덕적인 힘과 절제된 생동감이란 면에서 톨스토이의 탁월한 작품 「폴리쿠시카」와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견줄 만하다.
- 토마스 만 (소설가)
부닌 이전까지 사랑에 대해 이렇게 쓰는 작가는 없었다. 부닌의 혁신은 「미탸의 사랑」 속 주인공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현대적인 과감함(당시에는 ‘모더니티’로 불렸다), 언어 형식의 고전적인 명료함과 완벽함을 결합했다는 사실에 있다. 비범한 감수성으로 고통과 희열감을 느끼며 자연과 자기 자신을 과도하고 예민하게 감각하는 능력을 가진 미탸의 감정은 분명 자전적인 것이다.
- 안나 사아캰츠 (비평가)
부닌의 철학으로 가는 길은 부닌의 언어를 통해 열린다.
- 블라디슬라프 호다세비치 (시인, 비평가)
사랑을 통해서 세계는 인간에게 비로소 아름다움이 된다. 부닌의 예술 속에서 사랑은 이렇게 존재의 비극성과 삶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내포한, 인간 삶의 영원한 신비이자 행복과 고통의 원천이 된다.
- 최진희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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