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도시를 파괴하는 동시에 재건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고베 지진 발생 이후 고베시가 보여준 재난 극복 과정을 통해 도시재생을 함께 추진하여 도시 회복력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친수공간은 도시의 매력을 높이고 시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중요한 자원이기 때문에, 도시재생 사업에서 친수공간 재개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도시 활성화를 도모해야 한다. 도시재생 사업은 지역의 역사, 문화, 자연환경 등을 고려하여 지역 특성에 맞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하며, 공공 부문, 민간 부문, 시민 사회의 협력을 통해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될 수 있기에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민간 부문의 창의성과 전문성을 활용해야 한다. 고베 대지진이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초래하며 도시 기능을 마비시켰지만, 시민들이 좌절하지 않고 고베시를 비롯해 민간기업, NPO/NGO를 중심으로 재난 상황을 도시 재건 및 활성화의 기회로 삼아 적극적인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고 교훈적이었다.
--- 「지진 재난 극복과 도시재생의 공존」 중에서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미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단계별 목표와 전략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초기 단계에는 도시의 기반 시설을 구축하고, 후기 단계에는 문화 콘텐츠 개발에 집중하는 등 시대별로 중점을 달리하여 추진했다. 그 결과 미나토미라이21은 시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 미래 세대를 위한 도시로 조성되었으며, 부산 북항 재개발과 같은 다른 도시개발 프로젝트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지속가능한 도시개발의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 「도시재생의 성공 모델,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 중에서
구랑위의 예술문화에 대한 개발과 홍보도 이 시기에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구랑위는 ‘피아노 섬[鋼琴之島]’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중국 내에서 피아노 보유율이 가장 높은 도시이다. 기독교와 서양 문화가 유입되면서 서양음악 교육도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가정이 피아노를 구입하였고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다. 구랑위의 음악 전통이 유구하게 이어지면서 인청쭝(殷承宗), 저우수안(周淑安), 쉬페이핑(許斐平), 린쥔칭(林俊卿) 등 저명한 음악가를 다수 배출하기도 하였다. 구랑위의 골목에서는 어렵지 않게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가정 음악회나 동네 음악회 등이 성행하기도 하는 등, 구랑위는 음악적 정취가 충만하였다. 이러한 문화 예술적 분위기를 부각하기 위하여 피아노 박물관, 오르간 박물관 등의 악기나 음악을 테마로 하는 박물관을 개장하였고 콘서트홀을 보수 개조한 뒤 세계 각국의 음악가를 초청하여 콘서트를 진행하거나 피아노 콩쿠르 등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또한 사계절 음악주간을 추진하고 피아노 페스티벌 등을 열기도 하였는데, 이는 국내외에 구랑위가 예술적인 도시라는 것을 홍보하고 각인시키는 데에 목적을 둔 활동이었다.
--- 「구랑위의 도시개조 프로젝트」 중에서
오늘날 홍콩의 문화유산은 ‘문화적 가치/경제발전,’ ‘중화민족주의/홍콩특색,’ ‘애국주의/식민주의 노스탤지어’와 같은 담론이 대립하는 장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홍콩이라는 도시를 국제 금융 중심지이자 글로벌 관광지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와, 주민과 영세 상인과 저소득 이주노동자의 기억과 공동체가 유지되는 홍콩인의 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열망들이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홍콩의 사례는 식민주의와 냉전과 관련하여 복잡한 장소 기억이 공존하는 한국의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유산 보전,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 등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 「홍콩의 도시 변화와 홍콩인의 정체성 정립」 중에서
이후 2001년 후반 예술가들에 의해 보얼예술발전협회가 설립된다. 이들은 시정부, 가오슝사범대와 협력하여 보얼창고단지와 그 주변을 아우르는 예술특구를 구상했다. 가오슝을 가로질러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 아이허(愛河)의 명칭을 딴 ‘아이허 문화유역’이라는 개념도 제시되었다. 아이허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의 인근에 위치한 보얼창고를 문화유역의 시작점으로 삼아, 아이허 상류까지의 강변 양쪽에 극장, 음악관, 미술관, 역사박물관, 상공업 전시관, 객가(客家)민속박물관 등을 지어서 하나의 광대한 문화유역을 만들자는 구상이었다. 정교한 구상과 조사, 논의 끝에 가오슝사범대의 천밍후이(陳明輝) 교수 등은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여 정부에 제출하였고, 당시 행정원 문화건설위원회의 ‘유휴공간 재활용’ 계획에 선정되었다. 보얼예술특구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이로써 가오슝은 문화사막에서 벗어나 문화오아시스(文化綠州)로, 타이완 남부 지역의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변모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 「‘문화사막’에서 ‘문화오아시스’로」 중에서
싱가포르 정부는 도시 계획을 통해 싱가포르를 깨끗하고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도시 재생은 도시계획 과정에서 노후화되거나 쇠퇴한 도시지역을 다시 시민들이 살기 좋은 공간이나 장소로 탈바꿈하는 것을 가리킨다. 리콴유 정부는 1960년대 이후,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국가로 만들기 위해, 세 가지 측면에 중점을 두었다. 첫 번째는 경쟁력 있는 경제능력, 두 번째로 지속가능한 자연환경, 마지막 세 번째로는 시민들의 질 높은 삶의 수준이었다. 싱가포르 차이나타운 역시 이러한 도시 계획의 영향 아래 재개발되었다. 물론, 차이나타운이 가지고 있었던 부정적인 이미지가 너무 컸기 때문에, 새로운 지역으로 변모시키고자 했던 정부의 노력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차이나타운 지역에 대부분을 차지했던 건축양식인 숍하우스(shophouse)가 그 바로미터였다. 식민통치 이전의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낡고 오래된 숍하우스들은 철거되거나 개조되었다. 철거된 그 자리에는 고층 빌딩과 쇼핑센터가 대체하게 되었다. 좁고 복잡했던 골목길은 넓고 깨끗하게 정비되었으며, 거리 곳곳에는 시민들을 위한 녹지 공간이 조성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을 쾌적하고 편리한 공간으로 만들었고, 관광객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 「싱가포르 차이나타운, 옛 모습 잃어버린 엇갈린 재개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