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라이 프』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부르는 것을 예수님이 어떻게 이해하셨는지 소개하려고 한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실까? 질문을 바꿔서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해 묻든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 묻든지 그분의 답은 똑같다. 예수님이 수없이 말씀하신 대로 그 대답은 ‘나를 따르라’이다. 혹은 ‘내 제자가 되어라’이다.
하지만 그런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각 장에서 나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는 삶에 관한 예수님의 전망을 그려 보려고 한다. 성경읽기.기도.교회.출석.전도의 접근법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수님은 다른 것에 초점을 맞추셨으며, 우리도 그분처럼 할 때 이런 행동은 각각 예수님의 더 큰 이상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개인적-경건-훈련 계획 대신에 하나님 나라?거룩함의 계획을 제시하신다. 예수님은 우리 존재의 핵심까지 변화시키는 하나님 나라 꿈을 제시하신다.”
---「머리말」중에서
“이제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의 삶을 어떻게 이해하셨는지, 혹은 자신을 따라 하나님 나라 꿈 안으로 들어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간략히 설명하겠다. 첫째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접근 방식이 출발점이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삶에서 그분을 영접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원하셨다. 그분은 그 삶을 넘겨받기 원하셨으며, 그분의 부르심은 존재 자체를 그분께 내어 드릴 정도로 철저히 그분을 신뢰하라는 것이었다. 둘째로, 성경읽기와 기도, 예배, 영적 훈련을 비롯한 개인적 경건 훈련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목적에 이르기 위한 수단일 뿐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목표가 아니며, 이런 것으로는 누가 그리스도인인지 누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인지 제대로 가늠할 수 없다. 그 대신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라고 부름받았으며, 이것은 우리의 온 삶을 바칠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도록 부름받았음을 의미한다.”
---「온 삶」중에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온 삶을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전망에 바침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내 영혼을 구하는 기독교, 내 안의 필라멘트를 빛나게 하는 기독교, 개인적 영성의 기독교는 예수님이 선포하신 온전한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그저 나에 관한, 나를 위한,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즉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평가하는 데 몰두하는 기독교는 예수님의 메시지의 핵심을 이루는 사회적 초점을 결여한다. 그런 형태의 기독교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그런 형태의 기독교는 당신의 온 삶을 바칠 가치가 없다.”
---「하나님 나라의 삶」중에서
“사랑이 없으면, 사회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혼돈이 되고 만다.
사랑이 없으면, 사회는 모두가 제멋대로 행동하는 곳이 되고 만다.
사랑이 없으면, 사회는 더 이상 사회가 아니다.
사랑이 있으면, 사회는 공동체가 된다.
사랑이 있으면, 사회는 모두가 한 사람을 위하고 한 사람이 모두를 위하는 곳이 된다.
사랑이 있으면, 사회는 하나님 나라가 된다.”
---「사랑에 헌신된 삶」중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주린 사람들을 위해, 우는 사람들을 위해,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오셨다. 그분은 부자들에 맞서기 위해, 지금 배부른 사람들에 맞서기 위해,금 웃는 사람들에 맞서기 위해, 인기 있는 사람들에 맞서기 위해 오셨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분은 가난한 사람들을 향해 복되다 하시고 부자들에게는 ‘화 있을진저’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당신의 성경에도, 내 성경에도 적힌 말씀이다. 이것은 도덕적 미덕의 목록이 아니라, 누가 주님의 편이고 누가 주님의 편이 아닌지를 폭로하는 혁명적 방법이다. 누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온전히 사는지, 누가 그렇지 않는지를. 누가 하나님 나라 안에 있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누가 모든 꿈 이면의 그 꿈을 실천하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정의에 의해 형성된 삶」중에서
“언제부턴가 하나님 나라는 개인적 영성이 되었고, 주일 모임은 종교 예식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교회는 개인들이 주일에 한 시간 동안 모여 자신들의 소중한 영혼을 위한 양식을 먹는 공간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꿈을 개인적 영성의 꿈으로 변질시켰다. 언제부턴가 하나님 나라는 더 이상 사회가 아니라 영성이 되고 말았다. 역사상 그 어느 세대보다 우정을 많이 필요로 하는 세대에게 그 영향력은 치명적이다. 21세기 초에 우리는 놀라운 역사를 지닌 아름다운 건물을 바라보며 개인으로 서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직하다면, 22세기가 되면 과거에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고 교회가 무엇을 이루려 했는지 기억이나 할지 의문을 품을 것이다.”
---「공동체의 삶」중에서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 속으로, 우리의 비극 속으로, 우리의 불의 속으로, 우리가 만들어 낸 구조 악 속으로,우리 자신이 저지른 죄 속으로 들어오셨다. 하지만 그분이 우리와 연대하신 것은 구속의 행동이기도 하다.
갈릴리는 골고다로 변하고, 골고다는 은총으로 변한다.
그분의 골고다는 우리의 골고다로 변하고
그분의 골고다는 우리의 은총으로 변한다.
그분의 삶이 우리의 삶이 될 때 우리의 온 삶은 그분의 삶이 된다.
예수님을 끌어안을 때 우리는 십자가의 예수님을 끌어안는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끌어안는 것은 슈브(회개)를 통해 죽는 것이다.”
---「십자가의 삶/부활의 삶」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