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오늘도 아주 고마웠어요. 혹시 괜찮으시면 서울 나들이 오신 김에 며칠 더 계시면서 좋은 이야기 더 많이 듣고 싶은데 어떠셔요?”
자함이 아침에 눈을 뜨자 어젯밤 식당에서 장주희의 말이 생각났다.
그러하마 하고 약속했던 것도 떠올랐다.
‘흠, 그렇다면 오늘은 창덕궁 관람이나 할까?’
광화문 앞을 지날 때, 문득 낙원상가 뒤 시래기 해장국집이 생각났다.
허름한 식당에 들어서자 ‘오늘은 현찰 내일은 외상’이란 글씨가 눈에 확 들어오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두툼한 아주머니 손길에, 지극히 서민적인 해장국 한 사발, 밥 한 공기, 물컹 시큼한 깍두기가 거무튀튀한 통나무식탁에 웅크리고 앉았다. 소주 반병도 곁에 앉혔다. 어느새 서민적인 가격 3,000원으로 기분이 화창해졌다.
아딸딸한 기분으로 탑골공원을 스치며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섰다. 무얼 하는지, 어느 가게 앞에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웃고 있었다. 대낮에 쇼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꿀타래 쇼!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인사동의 최고 명물 꿀타래 쇼를 보여 드릴게요. 여기 보이는 이 덩어리가 바로 주원료예요. 꿀로 만든 덩어리라서 이름을 붙인다면 무슨 덩어리? 꿀 덩어리. 밑에 있는 가루는 무슨 가루? 옥수수가루. 꿀 덩어리에 구멍을 뻥 뚫어서 이것을 여러분 머리카락보다 가늘게 만들어요. 꿀 덩이가 두 가닥이 됐네요. 2 더하기 2는 4, 4 더하기 4는 8, 8 더하기 8은 16이지요. 그다음에는 32가 됩니다. 학생도 잘 봐요. 32에 2를 더하면 64, ……1,024가닥, 얍, 짠 여기 보세요. 야! 멋있지요. 2,048가닥, 4,096가닥, 8,192가닥, 이제 마지막이요. 16,384가닥이 아자 자자 짠 와, 손뼉을 쳐요, 박수! 우 후후후. 꿀실에 고명을 넣었는데 그냥 먹어도 되는 검은깨 호두 초콜릿을 넣어서. 둘둘둘 말아요. 영어로 롤링롤링 짠 짜잔 먹고 싶은 꿀 타래가 되었어요. 신기했죠. 사바라바라 맛도 끝내줘요. 인사동에서만 먹어 볼 수 있는 명물입니다. 예, 꿀 타래 쇼였습니다. 짝짝짝~~~”
꿀 타래 달인 삼총사의 즐거운 쇼를 보면서, 이제는 어디서도 불 수 없지만 어린 시절 시골 장터에서 재미나게 듣던 뱀 장사 아저씨의 구수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냐. 그렇다고 달이면 달마다 오는 것이냐. 기회는 딱 한 번, 지금 뿐이여. 아주머니, 아저씨, 시집 못 간 처녀 아가씨 부끄러워하지 말고 다들 이리 가까이 와 봐! 자, 비암이요, 비암~ 독이 많아 독사~ 살살 문다 살무사~ 나도 몰라 감탄사~
예, 아침에 일어나면 아랫도리가 축축하신 분들 잡숴 봐. 끝내줘. 이걸 먹고 전봇대에 오줌 누지 마. 어제 전봇대 세 개 넘어졌어. 큰일 나요. 침대에서 밤일하다가 허리가 뚝~ 부러진 아저씨. 한 번 잡숴 봐. 허리 대신 침대가 부러져. 갱년기에 남편이 귀찮고 재미없는 아주머니. 남편이 만날 밖으로만 돌아다녀, 한 번 잡숴 봐. 옹달샘처럼 항상 촉촉해지고, 재미가 새록새록 생겨나. 바람피우던 남편 집으로 당장 돌아와 부러. 뭐라고? 난 마누라한테 잘해 주냐고? 그런 거 묻는 거 아냐. 자, 비암이 왔어요. 비암!”
자함은 인사동에서 본 쇼 덕분에 한층 즐거운 마음이 되살아나 창덕궁으로 향했다.
때마침 자유 관람이 허용된 목요일이었다,
창덕궁은 과연 이곳이 서울 한복판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사방이 고요하고 숲이 울창해서 마치 먼 과거에 온 듯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궁궐에 있는 나무들은 다들 우람하고 기품과 위엄이 서려 있었다. 게다가 늦가을 고운 단풍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후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떨어진 단풍잎은 하늘을 태우다 모자라서 길바닥 위에서 뒹굴며 타오르고 있었다.
후원의 백미인 부용지에 이르자, 선경(仙境)에 이른 듯 고요한 데 부용정을 휘감고 늘어뜨린 단풍이 절경이었다. 자함은 가을에 함빡 취해 있었다.
“오 마이 갓!”
“오 노!”
“원더풀, 원더풀!”
외국인 관광객 한 사람이 사진을 찍으면서 거의 반은 넋 빠진 사람처럼 온갖 감탄사를 홀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함도 영화당, 애련지, 반도지, 존덕정의 가을에 발목이 잡혀 해가 저물 때까지 머물렀다.
“선생님, 어서 오세요!”
자함이 식당에 들어서자 여주인 장주희와 직원들이 일제히 반겼다.
“선생님, 선전을 좀 했어요. 호호호”
자함이 안내된 별실에는 직원들 외에도 새로운 얼굴들이 눈에 띄었다.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드릴까요?”
저녁을 먹고 나서 자함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음, 우리가 보통 사주팔자니, 음양오행이니 하는데 도대체 사주팔자는 뭐고 음양오행이 뭐예요? 그걸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요, 저를 포함해서. 좀 알기 쉽게 가르쳐주시면 안 될까요, 선생님!”
슬슬 옆 사람 눈치를 살피던 마흔 살쯤 돼 보이는 호떡같이 생긴 여자가 말했다.
“다른 질문은 없으세요?”
“예!”
모두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자, 그러면 먼저 사주팔자에 관해서 알아볼까요?
‘사주’는 한자로 쓰면 넉 사(四), 기둥 주(柱) 즉, 네 개의 기둥이란 뜻입니다.
네 개의 기둥은 무엇일까요?
눈치 빠른 분은 벌써 아! 하실 겁니다.
사주, 네 개의 기둥이 뭔지 맞추면 눈치 엄청나게 빠른 사람입니다.
못 맞추면 눈치 느린 사람이 되느냐?
아니죠, 눈치 없는 사람이 됩니다.
네, 바로 그렇습니다. 네 개의 기둥은 사람이 태어난 년(年), 월(月), 일(日), 시(時)가 되겠지요. 사주에서는 사람을 집에 비유해서 생년, 생월, 생일, 생시를 집의 네(四) 기둥(柱)으로 본 것입니다. 이걸 사주 용어로 년주, 월주, 일주, 시주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사주 전문용어 네 개를 아셨습니다.
년주(年柱), 월주(月柱), 일주(日柱), 시주(時柱).
그러면, ‘팔자’란 무엇일까요?
한자로는 八字(팔자)라고 씁니다.
사주는 네 개의 기둥이라고 했지요. 그 네 개의 기둥은 여덟 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팔자입니다. 여덟 글자라는 말입니다. 요렇게 말로만 해서는 사주가 왜 네 개의 기둥이고, 여덟 자인지 이해가 잘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현장으로 가서 왜 네 개의 기둥이 여덟 자가 되는지 알아볼까요? 그 주인공으로 제가 잘 아는 사람을 모델로 해서, 그분의 생년, 월, 일, 시로 사주의 네 기둥을 세워 보겠습니다.”
---「사주팔자와 음양의 이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