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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 2001년 제7회 21세기문학상 수상작품집

21세기문학상-01이동
공지영 등저 | 이수 | 2000년 12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7.5 리뷰 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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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12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34쪽 | 503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88047071
ISBN10 8988047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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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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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억은 사진 속에서만 선명할 뿐, 모스크바에 오기 며칠 전 바이바이를 하고 온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C의 얼굴도 B의 얼굴도...... 함께 떠났던 그 여름의 여행에서 우리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때 우리는 무슨 말을 했던가...... 이 개새끼들아아아, 라고 막막한 바다를 향해 말했던 것이 정말 C였던가...... 그 말을 한것은 혹시 내가 아니었을까......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던 C의 모습이 지워지고 그 곁에서 언제나 음울한 표정으로 서 있던 B의 모습도 지워지고 이윽고 내 모습도 지워지고 막막한 바다만 남았다...... 그 말을 했던 건 그럼 바다였던가...... 아무 잘못도 없는 바다, 섬으로 막막히 막혀버린 바다. 바람이 직선으로 불어오지 못하는 다도해의 바다. 하지만 파도가 이는 푸른색깔의 그러므로 바다.......
--- p.105
언니는 뜻밖에도 웃지 않았다. 이제 자신의 나이도 40대 중반 뭐 그런 일이 있덨다 해도 별로 놀랄 일은 아니라는 듯 태연했다. 그러니까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내게 말하는 동시에 당신이 듣고자 했던 것이며 내게 가르치면서 정작 당신이 배우고자 애쓰셨던 셈이다. 그것은 내게 보여 주셨던 또다른 교훈이며 사랑의 상징이었던 바둑둘과 바둑판으로 엿볼 수 있는 일디다. 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처음 쥐었던 바둑돌은 아버지께서 수도 없이 바닷가를 오가며 직접 하나하나 주워 오셨던 181개의 흑돌과 180개의 백돌이었다.
--- p.43, 246
나는 이제 나의 어머니를 용서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건 그러니까 엄마도 그때 자신의 삶이 힘겨웠던 거야, 내 사춘기와 엄마의 갱년기가 일치했으니까, 라는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우리 삶에서 가장 하기 힘든 일은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일이며 우리 삶의 비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시 끝없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사는 것이라고.

내 아이들이 자라나서 우리 엄마는 좋은 사람이었어. 바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를 사랑했어, 말할 거라고는 더더군다나 생각해 본 일이 없다. 솔직히 나는 우리 아이들 중 하나가 혹여라도 작가가 되어 나처럼 이런 글을 쓰게 될까 봐 두렵기만 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문구를 생각해 낸다 해도 우리 엄마는 제멋대로고, 우리 엄마는 자기만 알며, 심지어 우리 엄마는 나를 미워하지도 않았다. 관심이 없었으니까...... 한마디로 엄마 자격이 전혀 없는 여자가 하필 나의 엄마였던 것이 내 운명의 시작이었다, 정도가 아닐까......

차가 영안실 앞을 지나쳐 갈 때 잠깐 K선생 생각이 났지만, 그래도 가시는 길인데 잠깐 얼굴이라도 비추어야 하는 건 아닐까 망설임이 일었지만 나는 그대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 "죽은 자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따르라" 예수가 말했던가. 명색이 기독교 신자이면서 예수의 말을 반쪽만이라도 이렇게 충실히 지키기는 아마 이때가 처음이었다.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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