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는 교장, 교사, 학생 모두를 ‘성(surname)’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고, 존댓말이 아닌 친근한 어법을 사용한다. 독일어는 한국어와 유사하게 상대방의 지위, 연령, 관계의 정도에 따라 호칭과 어법이 구분된다. 학생들이 교사를 부를 때는 남성의 경우 ‘Herr’(‘헤어’), 여성의 경우 ‘Frau’(‘프라우’)를 그들의 성 앞에 붙여서 부르는 게 상식이다. 초등학교 때에 이런 습관을 들인 아이들도 괴팅겐 통합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을 그냥 이름으로 부른다. 예를 들어 평상시 대화를 우리말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사비나, 아까 수업 시간에 내준 과제가 뭐였지?”
“아, 그건 독일의 각 주와 주도를 알아오라는 거였어.”
“그래? 고마워.”
이런 대화가 학생과 교사 사이에 오간다. 이러한 대화법은 설립 초기부터 강조한 ‘평등’의 가치를 함의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 p.27
책상그룹은 30명으로 이뤄진 한 반에서 학생들이 6명씩 그룹을 이루어 자신들의 책상을 맞붙여서 앉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6명은 학년 초에 한 달간의 실험 기간을 통해 정해지는데, 남녀 학생이 각각 3명씩으로 이루어지며, 김나지움 추천 학생 3명, 레알슐레 추천 학생 2명, 하우프트슐레 추천 학생 1명으로 구성된다. 스포츠 등의 개별 활동이 필요한 수업을 제외한 80퍼센트 이상의 수업이 이 책상그룹을 활용하여 진행된다. 같은 책상그룹에 모인 학생들은 1년간 함께 앉아서 배우고, 토론하고, 과제를 수행한다. 총 6년 동안 매년 그룹을 바꾸기 때문에 반 친구들 모두와 함께 책상그룹을 경험하게 된다.
--- p.34
“우리 학교에서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이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학교가 설립된 1975년부터 2002년까지 교장을 지낸 페터 브라머(Peter Brammer)는 배움이란 개인 맞춤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험 결과를 점수화하지 않는 만큼, 개인별 재능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각의 능력에 맞추어 진로를 선택하며, 선택한 이상 책임지는 자아로 키우는 것이 배움의 핵심이라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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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200명의 교사 및 교직원 중 팀에 속하지 않고 책임을 지며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괴팅겐 통합학교는 하나의 거대한 배움의 공동체로서, 학생이나 학부모, 교사 및 교직원 개개인이 학습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동등한 주체로 상호작용하는 문화 공간이다. 학교 구성원들은 이러한 태도가 조직체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함을 믿고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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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팅겐 통합학교에는 직업 상담사, 경찰, 재계나 대학의 협력 파트너, 대학생, 가족 상담사 등등이 정기적으로 학교에 오는 것이 제도화되어 있다. 학년 과정 중에 사회봉사나 직장 경험 등을 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이 괴팅겐 통합학교와 파트너십을 가진 회사와 기관, 단체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자리를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의 배움에 동참한다.
--- p.48
배움과 소통의 공간은 학교에서 집으로 연장된다. 책상그룹은 1년에 네 번, 즉 3개월에 한 번 저녁 시간을 이용해 한 가정에 모인다. 어느 가정이든 6년 동안에 한 번씩은 이 책상그룹 저녁 모임을 초대하게 되지만, 순전히 자발적인 초대이지 강요되지는 않는다. 이 저녁 모임의 핵심은 초대하는 아이와 그 부모가 주인이 되어 담임 선생님 두 분과 다른 다섯 가정을 맞이한다는 것이다.모임의 시작은 대개 오후 6시 이후인데, 담임교사와 개별 면담을 하고 싶은 학생과 학부모는 약속을 잡고 오후 5시에 먼저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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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팅겐 통합학교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공교육 체제 안에서 혁신을 일구어내는 힘이다. 독일은 다양한 교육의 실험장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공교육 대신 특성화된 사립학교들도 많이 있다. 발도로프와 몬테소리뿐 아니라, 국제학교와 숲속학교 등 한국에도 소개된 학교와 프로그램이 적지 않다. 그러나 괴팅겐 통합학교 관계자들은 그러한 교육운동 대신 공교육 안에서의 변화를 유도해냈고 유도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역시 교육 혜택의 범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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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파크이스트중등학교는 ‘개인의 필요에 맞춘’ 교육을 차용하고(Meier, 1995: 60), 그곳의 교육과정은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학생들의 천부적 욕구를 지속시키고 그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그들의 능력을 신뢰한다(Meier, 1995: 53-54). 경이감을 불러일으키는 학교를 위해 마이어는 학교를 배움에 대해 배우는 실험실로 만들고, 학교를 아이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교사들 사이에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창조하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Meier, 1995: 259-260).
--- p.111
이 학교가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듀이가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정치의 형태가 아니라, ‘공동생활의 형식’이자 ‘경험을 전달하고 공유하는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다(Dewey, 1916: 137). 센트럴파크이스트 중등학교가 민주적 공동체로서 공동생활의 형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학교에서 학생과 학생, 학생과 교사, 교사와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 모두는 함께 토론하고 의사결정하는 구조를 만든다(Meier & Schwarz, 1999: 34). 학교 구성원들은 누구나 결정 사항에 대해 재심과 옹호, 설명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이처럼 열려 있고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방식 속에서 교사진과 학생들은 민주주의의 복잡한 특성을 배운다(Meier & Schwarz, 1999: 44-45).
--- p.111
이 학교의 재학생 수는 450명으로 이는 정확히 학교의 강당이 수용할 수 있는 만큼의 인원수였다. 이는 학교의 최대 규모가 얼마여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 된다. 다른 유용한 기준은 전체 교직원이 모일 때 얼굴을 맞대고 둥글게 둘러앉을 수 있는지 여부였다. 그리고 팀 만들기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라 학급 인원수와 교직원 수는 각각 20명 정도를 최대치로 설정했다.
--- p.117
센트럴파크이스트 중등학교의 교육과정은 (지성적) 마음의 습관(habits of mind), 작업 습관, 감정의 습관을 그 중심에 놓은 것이 특징이다. 이는 최근 역량을 중심으로 하여 교육과정을 재편하려는 움직임과 유사해 보인다. 먼저 지성적 마음의 습관은 다음의 5가지 습관을 지칭한다.
증거에 대한 질문 즉 “우리는 우리가 안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모든 다양성 속에서 관점에 대한 질문 즉 “누가 말하고 있을까?”, 연관성과 패턴에 대한 탐구 즉 “어떤 것의 원인은 무엇일까?”, 추정하기 즉 “상황은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중 어떤 것이 중요한 이유 즉 “누가 관심이 있을까?”(Meier, 1995: 110)
센트럴파크이스트 중등학교의 모든 학생들은 이 습관들을 내면화해야 하고, 무엇을 공부하든 학교뿐 아니라 특히 학교 밖에서도 그것을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 습관들은 아이들 모두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강조된다.
--- p.120-121
센트럴파크이스트 중등학교는 제4의 길이 중시하는 민간, 교육계, 정부 간의 평등하고 상호 소통적인 파트너십 구축(Hargreaves & Shirley, 2009: 173)을 선취하고 있었다. 그 학교는 학생들, 교직원들, 학부모들, 그리고 더 큰 공동체 사이의 협력과 상호 존중을 민주적 실험의 일부로 간주한다. 본문에서 언급하지 못했지만 센트럴파크이스트 중등학교 탄생의 모태인 센트럴파크이스트 초등학교의 성공 뒤에는 당시 학교 설립을 제안했던 뉴욕 시 제4학교구 교육장 알바라도(A. Alvarado)와의 협력적 파트너십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작용했었다. 그러나 이후에 그러한 파트너십의 한부분이 깨지면서 학교의 개선(improvement)과 혁신(innovation)은 중단되고 말았다.
--- p.140
센트럴파크이스트 중등학교는 교사들이 학교 혁신의 동력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교사의 전문성과 그들 간의 ‘동료성’(collegiality)을 매우 중시한다. 이 학교는 하향식 혁신이 아닌 교사 스스로가 움직이는 상향식 혁신의 전형을 보여줌으로써 교사들에게 학교 혁신의 주도권을 주고 그들로 하여금 민주적 대화와 협력 속에서 의사결정을 해나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 p.142
센트럴파크이스트 중등학교가 성공하는 데 있어 설립자이자 공동교장의 역할을 맡았던 마이어는 몸소 그러한 분산형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남성 중심의 영웅적 리더십을 비판하면서 동료 교사들 각자가 평등하게 책임을 지고 존중하는 학교 환경을 창조하는 것으로 학교 리더로서 교장이 갖는 역할을 달리 설정했다.
--- p.143
동학년 교사들이 같은 학년 교무실에 모여 있다 보니 해당 학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학생들에 대한 정보를 보다 쉽게 공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학년부 체계로의 전환은 단순히 교사들의 자리 배치를 바꾸고 학년 교무실을 설치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학교의 운영이행정 업무 중심에서 수업 및 학생 지도 중심으로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년부가 중심이 되고 기존의 행정 업무 중심의 부서는 교무 지원부라는 체계의 하위로 들어가 수업 및 학생 지도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역할로 변화하는 것이다.
--- p.154
교육과정 재구성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각 교과의 교사들이 자신의 교과를 분석하고 이를 다른 교과와 공유하여 함께 연계하거나 융복합할 수 있는 부분을 통합하여 새로운 수업을 설계하게 된다. 여러 교사가 함께 분석하고 서로의 교과를 비교하는 등의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이를 위해 분석 틀이나 분석 방법, 통합의 방법 등을 연구, 개발하여야 한다. 이러한 것을 어느 개인이 혼자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혁신학교에서는 개인이 하기 어려운 작업을 교사 학습공동체를 통해 구성원들이 힘을 모아 해결해 나가면서 교사의 전문성을 높여가고 있다.
--- p.173
우리가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본받아 적용하고자 할 때, 두 가지 편견과 실수를 동시에 또는 각각 다르게 범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는, 극단적 배타성이다. 맥락이 다르니 우리 상황에 적용 가능하지 않다고 치부하는 태도이다. 다른 하나는 맥락의 고려 없이 차용하는 일방적 모방이다. 둘 모두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항상 범하게 되는 오류이며 그 뿌리는 하나에서 비롯된다. 바로 성과 중심적 관점 때문이다. 그것도 단기간의 성과를 중시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 p.218
두 번째 시사점도 단순하다. 바로 괴팅겐 통합학교에는 성적표가 없다는 것이다. 아직은 8학년까지만 성적표가 없지만, 점차 모든 학년의 성적표를 없앤다는 것이 목표이다. 점수로 환산된 성적표를 없애는 것은, 서열화를 통한 선별제를 거부한다는 명확한 의지의 구현이었다.
--- p.220
오늘날에도 진보주의 교육에 기초한 학교 혁신이 여전히 유의미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센트럴파크이스트 중등학교는 그러한 혁신에 주로 제기되는 학력 저하 비판에 대응하면서 마음 습관의 내면화, 박사 학위 심사 과정과 유사한 졸업사정을 통해 아이들의 사고하는 힘을 오히려 효율적으로 길러준다.
--- p.224-225
현 시기 교육 최대의 과제는 이러한 의식의 왜곡을 초래한 오감의 기능, 회로의 완전성을 회복시키는 데 있으며, 이를 통해 소통과 협력의 학교문화를 중심으로 학교 혁신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데 있다.
--- p.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