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산업 사회, 탈근대 사회로의 전환은 사회적으로, 정책적으로 좋은 사회, 좋은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을 재점검하는 데 일조했다. 물질적인 부가 좋은 삶과 좋은 사회를 가져오는가에 대한 문제 제기로부터 출발하여 ‘더 많이(more)’가 ‘더 좋은(better)’ 것은 아니라는 데 대한 성찰은, ‘좋은’의 구성 요인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양(quantity)적인 것에서 질(quality)적인 것, 물질적인 것에서 비물질적인 것으로 돌려놓았다(Noll, 2004: 153). --- p.19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2005: 23)는 사회통합을 “모든 시민의 장기적 안녕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의 능력으로, 이때 장기적 안녕은 가용한 자원에의 공평한 접근, 다양성을 존중함으로써 인간 존엄성의 존중, 개인적·집합적 자율성, 책임감 있는 참여를 의미”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 p.98
‘사회의 질’의 이론적 정의에 비추어 사회적 응집성 수준을 살펴볼 때, 한국의 사회적 응집의 수준은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상당히 낮은 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가 ‘사회통합’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적 포용성이 낮은 상황에서는 사회적 응집성의 수준이 높게 나타나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다. 실제로 국가 간 비교에서 경제적 불평등은 신뢰수준을 예측할 수 있는 강력한 요인이다(Uslaner, 2002: 236).1) 소득불평등도가 높은 사회에서는 부자와 빈자 간의 정치적 갈등을 예상할 수 있으며, 이런 사회에서 높은 신뢰수준을 기대하는 것은 힘들다. 그러나 사회적 응집성은 사회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동력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응집성이 낮은 사회에서 전체 사회적 발전을 모색하는 것도 힘들다. --- p.121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사회의 질이라는 개념은 ‘발전’ 또는 ‘좋은 사회’를 설명하려는 일련의 시도로서, 포괄적으로 사회의 성격을 가늠하는 접근법이다(Yee and Chang, 2011; Walker, 2009; Wallace and Abbott, 2007). 사회의 질에 대한 관심은 신자유주의가 날로 확산되어가고 있던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조되었다. 공적 복지 체계를 갖춘 서구 국가들에서 막대한 복지 비용 지출에 따른 재정 악화와 비효율적인 행정 체계로 인해 복지병의 문제에 직면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이 잇달아 등장했다. 이후 복지예산의 지출이 삭감되었고, 정부의 개입보다 시장의 메커니즘을 강조하는 정책들이 도입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시장에서의 경쟁이 강조되고 효율성과 같은 경제적 가치가 우세해지면서 실업, 빈곤, 양극화, 소외 등이 심각해졌다. 이러한 현상에 직면하여 사회통합이 절실해진 유럽에서 1997년 지식인을 중심으로 한 암스테르담 선언, 즉 사회의 질 선언(Declaration for Social Quality)을 하게 되었다. --- p.128
살기 좋은 사회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떠한 삶의 공간을 추구하려고 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누군가가 하게 된다면, 당장 돌아오는 답변이 당신이 왜 그런 고민을 하느냐는 응답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고민을 우리의 몫이나 책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개인과 지역사회를 분리시켰고, 따라서 지역사회 역량에 대해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얼마나 더 성장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회이다. 이 물음은 필연적으로 성장 이후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사회 구성원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생각을 논의한 적도 없고 그것을 구현하는 행위를 해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이것은 바로 사회의 질이 무엇이며 그것을 달성하는 것이 우리가 행복해지는 길이 아닐까 하는 고민과 다르지 않다. --- p.214~215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어떠한 방식의 복지를 추구하건 간에 재정적으로 지속가능한 공정 복지의 기본 원칙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안상훈, 2011a). 조세저항에 관한 비교에서 어느 정도 시사하고 있듯이, 복지수준에 걸맞은 방식으로 복지 비용을 적절하고 공정하게 분담하는 일이 중요하다. 전 국민이 어떤 방식으로건 복지를 위해 필요한 부담에의 기여에 동참하도록,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분담되도록 부담에 관한 제도를 개혁하는 것, 그리고 그러한 부담의 약속이 잘 지켜지도록 하는 것에서 좋은 복지국가의 첫걸음이 시작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지속가능한 복지는 기본적인 권리와 의무를 조화롭게 구성해낼 경우에만 주어지는 ‘합리성의 선물’이라 할 수 있다.
--- p.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