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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사

고대 그리스사

: 선사시대에서 헬레니즘 시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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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0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488쪽 | 723g | 152*225*25mm
ISBN13 9791186293324
ISBN10 1186293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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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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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토머스 R. 마틴 Thomas R. Martin
홀리크로스대학의 고전학 교수. 저서로 《고대 그리스사: 선사시대에서 헬레니즘 시대까지 Ancient Greece:
Prehistoric to Hellenistic Times》, 《고대 로마사: 로물루스에서 유스티니아누스까지 Ancient Rome: From Romulus to Justinian》, 《헤로도토스와 사마천: 그리스와 중국의 첫 위대한 역사가들 Herodotus and Sima Qian: The First Great Historians of Greece and China》이 있으며, 린 헌트(Lynn Hunt)와 함께 저술한 《서구의 형성: 사람과 문화 The Making of the West: Peoples and Cultures》 I·II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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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는 명확하게 구분되는 영토적·국가적 실체라기보다는 일련의 사상과 실천을 공유하는 공동체들의 집합이었다. 이런 그리스 문화의 정체성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것이 여러 세기 동안 어떻게 유지되었는가 하는 것은 아주 까다로운 문제지만, 반드시 유의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리스의 산악 지형이 그리스의 정치적 분화에 기여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p.33「1장 고대 그리스사의 배경」중에서

전파 이론으로만 유럽의 기술 발전을 설명하던 때에 비하여, 선사시대 유럽의 중요한 기술 변화를 설명하는 작업은 이제 한결 복잡해졌다. 이제 유럽의 신석기시대 주민들이 혁신적 기술(거석 기념물과 야금술 등)과 관련하여 전적으로 근동에 신세를 졌다는 이론은 통하지 않게 되었다(물론 농업은 근동에서 들어온 것임이 틀림없다). 유럽의 이웃 주민들과 마찬 가지로, 선사시대의 그리스 주민들은 전파와 독립적 발명의 복잡한 과정에 참여했다. 이 시기에 그들은 아주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혹은 현지의 독립적인 혁신을 통해 놀라운 기술적·사회적 변화를 성취했다. --- p.45「1장 고대 그리스사의 배경」중에서

그리스인들이 근동과 이집트에서 여러 가지를 배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시켰다. 한 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은 이렇게 해서 형성되는 것이지, 무심한 모방이나 수동적 수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인들은 무엇보다도 공유된 종교적 실천과 공통 언어를 바탕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구축했다. 또한 그들이 남들에 게 배워온 문화의 여러 측면에 그들의 흔적을 새겨 넣었다. 그런 정체성 을 구축하는 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런 복잡한 과정의 기점(起點)을 역사의 어느 특정 시점(時點)에다 고정하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있지도 않은 단 하나의 그리스 정체성의 근원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그리스 문화에 유입된 문화적 영향의 다양한 근원을 밝혀내는 편이 더 현명할 것이다. --- p.55「2장 인도-유럽인에서 미케네인으로」중에서

기원전 1200년 이후 미케네 그리스의 재분배 경제가 붕괴되면서 발생한 사회적 피해가 회복되는 데에는 여러 세기가 걸렸다. 전면적인 재앙을 피한 지역은 오로지 아테네뿐인 듯하다. … 화려한 보석류, 황금으로 상감된 칼, 붙박이 욕조 등 미케네 문명의 사치품들은 사라졌다. 외부인이 볼 때, 미케네 시대 말기의 그리스 사회는 회복 불능의 경제적·사회적 후퇴를 겪다가 종당에는 영원히 잊히고 말 것 같았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듯이, 그때 이미 위대한 변화가 생성되고 있었고, 그것은 마침내 오늘날 우리가 ‘그리스의 황금시대’라고 부르는 문명과 과학적 성취를 창조하게 된다. --- p.80「2장 인도-유럽인에서 미케네인으로」중에서

어떤 가문이 사회의 엘리트로 인정받아서 그런 부와 지위를 후손에게 물려준 다양한 방식에 대해 우리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암흑시대의 어떤 가문은 미케네 문명 당시의 유수한 가문으로서 그 시대의 혼란상에서 살아남아, 초기 암흑시대에 재산이나 토지를 그대로 유지하여 엘리트 가문이 되었을 수도 있다. 어떤 가문은 암흑시대에 착실히 재산을 모으거나 불운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많이 주어 엘리트 가문으로 진입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가문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종교적 의례를 독점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엘리트 가문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런 사회적 엘리트들의 사상과 전통은 새로이 태동하는 그리스 정치 형태의 기본 요소가 되었다. 암흑시대 엘리트들의 사회적 가치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야기의 뼈대를 이룬다. --- p.94「3장 암흑시대」중에서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기원전 8세기에 일상생활의 여러 문제들을 놓고 정의를 집행할 때 지도자와 농부들 사이에 상당한 긴장감이 조성되었다. 당시 농부들은 조그마한 농장을 소유한 자유인이었다. 그들은 노예 한두 명, 밭을 갈 황소, 기타 값나가는 동산(動産) 등을 갖고 있었다. 농부들은 재산을 소유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강력한 집단을 형성했다. (…) 분쟁의 해결과 관련하여 부당한 대접을 받고 분노를 느낀 농부들은 새로운 형태의 정치 조직(도시국가)을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운동을 지원하는 또 다른 세력이 되었다. --- p.106「3장 암흑시대」중에서

아르카이크 시대의 경제적 부흥과 그에 따른 인구 증가는 도시국가 형성 과정에 추진력이 되었다. 농업과 상업의 성공으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사람들은 이제 사회의 엘리트들에게 참정권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엘리트들은 부와 위신을 바탕으로 하여 우월한 정치적 지위를 차지해왔고 또 그런 것들이 없을 경우에는 가문의 영광을 내세우면서 현상을 계속 유지하려 했다. --- p.127「4장 아르카이크 시대」중에서

이러한 맥락에 입각해볼 때 고대 그리스 정치의 본질에 전례 없는 변화가 발생한 것은, 헤시오도스의 시에서 표현되었듯, 정의와 평등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남들이 그들에게 사전 동의 없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보면 그들은 동등한 사람이고 공동체에 기여한 바가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동체의 운영과 관련하여 자신들도 동등하고 유사한 발언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것 이다. 공동체 내에서 발견되는 이런 정치적 평등주의를 지역의 수준에서 보면 올림피아 제전을 출현시킨 범그리스주의와 일치한다. 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총사령관 아가멤논을 공개 비판한 테르시테스를 오디세우스가 구타한 태도를 결연히 거부한 일과도 상통한다. --- p.137「4장 아르카이크 시대」중에서

아테네인들은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민주제를 확립했고, 그리하여 시민 개인의 자유가 고대 세계와 그 이후에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으로까지 신장되었다. 이런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발달의 경로는 그리스인들이 아르카이크 시대에 새로운 생활 방식을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했음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또한 농업과 무역으로 증가한 인구를 지원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 체제를 다시 발명했다. 이러한 분투 과정에서 그들은 현실 세계, 사람과 세계의 관계, 인간들 사이의 관계 등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형성하게 된다. 그들이 철학과 자연과학에서 새로운 사상을 발전시킨 것도 새로운 정치 제도의 발달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 p.150「5장 과두제, 참주제, 민주제」중에서

놀랍게도 아테네 민회는 페르시아와의 거래를 거부했다. 아무리 많은 황금 덩어리를 안겨주고 아무리 아름다운 영토를 준다고 해도, 동료 그리스인들에게 ‘노예제’를 가져오는 일과 연관된 페르시아의 뇌물은 받아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우리는 그런 짓은 할 수가 없다.” 아테네인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신상과 신전을 불태운 적들로부터 배상금을 받아낼 때까지 철저히 싸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들은 그리스 정신에 입각하여 그런 유혹을 물리치겠노라고 맹세했다. --- p.220「6장 페르시아 전쟁에서 아테네 제국까지」중에서

비극 작품은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공연되는 예술 형태로 공개적 지원이 이루어졌는데, 그 주제는 개인과 공동체 생활의 난처한 윤리적 관심 사였다. 또한 기원전 5세기에는 공직에 야망을 둔 부유한 청년들을 위한 새롭지만 당황스러운(적어도 전통주의자들에게는) 교육 형태가 생겨났다. 상류 계급 여성들은 공공 생활에서 예절이라는 제약을 받았으며, 또 남편들에게는 생활의 젖줄이었던 정치적 활동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 그러나 가난한 계급의 여성들은 대중적인 남자들의 세계와 접촉이 빈번했다. 자기 가정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계승과 변화의 상호작용은 긴장을 불러일으켰으나 어느 정도 참을 만한 것이었는데,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발생한 스파르타와의 갈등으로 아테네 사회의 긴장은 파열점에 도달하고 말았다. --- p.259「7장 아테네 고전시대의 문화와 사회」중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의 국고를 탕진시켰고, 정치적 조화를 깨뜨렸으며, 그 군사력도 파괴시켰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근 30년 동안 지속된 전쟁은 아테네 사람들의 가정생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도시와 시골의 많은 사람들은 전쟁이 초래한 경제 위기 때문에 생계가 위협받는다고 생각했다. 배우자나 남자 친척들이 전쟁에서 사망한, 가난한 여자들은 특히 어려움이 컸다. 그들은 자기 자신과 아이들을 부양하기 위하여 가정 밖에서 일자리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은 전에 그 들이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 p.336「8장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그 여파」중에서

아테네의 법적 절차에 따라 소크라테스는 자기 자신을 직접 변호하게 되었다. 플라톤의 묘사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변론에서 기소자들의 비난을 모두 부인하고 배심원들의 동정을 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료 시민들에게 자극을 주어 기존의 전제 조건들을 진지하게 검토하게 하려 했다는 평소의 소신을 힘주어 강조했다. 그는 반성하지 않는 생활은 영위할 가치가 없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짜증이 날 정도로 끊임없이 질문하는 방식은 동료 시민들이 탁월한 삶을 살아가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고, 자신은 이런 행위의 결과로 어떤 처벌을 받는다 해도 결코 멈추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더욱이 아테네 시민들은 물질적 소유에 신경 쓰지 말고 그들의 진정한 자아(영혼)를 가능한 한 선량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 p.356「8장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그 여파」중에서

알렉산드로스의 희망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무적의 아킬레우스처럼 영광스러운 전사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베개 밑에다 《일리아스》 한 권과 단검을 늘 놓아두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의 야망은 호메로스가 제시한 영광스러운 정복 전사의 세계관을 잘 드러낸다. 그는 “언제나 최선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뛰어난 업적이 가져다주는 불멸의 명성을 얻으려고 애썼다. --- p.397 - 9장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중에서

그리스 문화가 전파된 이 방대한 세계에서 이러한 발전들이 이루어지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위한 일상생활의 기본적 특징(육체적 노동, 가난, 노예제, 물질적·사회적 출세의 제한된 기회 등)은 긴 역사를 거쳐오는 내내 그러했듯이 별로 변하지 않았다. 그들의 선조가 그러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판, 포도원, 목초지, 공작소, 시장 등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힘들게 일했다. 이것이 고대 그리스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지속적인 현상이다. 이것이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루어낸 엄청난 업적과 쌍을 이루는 사실임을 명심해야 한다. 고대 그리스를 전반적으로 평가하려면 스토리의 이런 측면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 p.451「10장 헬레니즘 시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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