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을 달아 보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잠 21:2)
이집트의 종교 전통에 따르면 죽은 자는 신들 앞에서 최후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진리를 상징하는 깃털의 무게를 기준으로 삼아 죽은 자의 심장을 저울에 달아 보면서 죽은 자의 대답을 기록했다. 대답이 올바르고 심장이 깃털의 무게를 넘지 않을 경우, 그 영혼은 영원한 삶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요시야 왕이 성전 개혁을 하는 동안 갑자기 '율법책'이 발견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대하 34:15)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성전이나 왕궁을 건설할 때 일반적으로 주춧돌 상자를 묻었다. 여기에는 왕의 군사적, 건설적 업적을 묘사하는 왕실 비문들이 포함되곤 했다. 이러한 문서들의 목적 중 한 가지는 미래에 언젠가 그 건물을 복원할 왕에게 정보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우리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옮기시는 것을 찬양하면서 무엇을 염두에 두었을까? (시 103:12)
이집트의 아문-레(Amun-Re) 찬미에는 죄인을 심판한 신을 찬양하는 내용이 있다. 신의 결정에 따라 죄인은 동쪽으로, 의인은 서쪽으로 배정된다.
11:2 왕궁 지붕 :
예루살렘에서는 초저녁에 상쾌하게 부는 시원한 바람 때문에, 많은 사람이 밖으로 나와 교제를 나누거나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지붕 꼭대기에서 바람을 즐겼다. 왕궁의 구조는 일반 평민들의 집 구조와 비슷해서, 지붕에 커다란 거실이나 침실이 있었을 것이다.(삼상 9:25)
11:2 목욕 :
밧세바의 목욕은 아마도 월경이 끝난 후의 정결 의식 행위일 것이다(삼하 11:4을 보라). 이것은 레위기 15:19~24에 묘사된 정결의식법에 근거했을 것이다. 그녀가 지붕에서 목욕을 한 의도가 그저 바람을 이용해서 몸을 말리려고 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 기회를 이용해서 왕의 주의를 끌려고 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11:3 밧세바의 가족 :
밧세바의 아버지는 다윗의 특별 장교들인 '용사' 중 한 사람인 엘리암이며(삼하 23:34), 그렇기 때문에 영향력 있는 가문의 가장이었다. 그는 다윗이 가장 존중하던 모사 중 한 사람인 아히도벨의 아들이다(삼하 15:21; 16:23). 이러한 정보는 밧세바의 남편인 헷 사람 우리아 역시 '용사' 중 한 사람(삼하 23:39)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다윗이 자기가 누구의 집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밧세바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또다른 해석은 "이는 밧세바가 아니냐"라고 말한 사람이 다윗이라고 주장한다).
11:4 부정함을 깨끗하게 함 :
밧세바가 목욕을 했다는 것은 월경 주기 이후 칠 일 간의 부정함이 끝난 다음 정결하게 씻는 의식을 말한다(레 15:19~24를 보라). 이것은 또한 그녀가 다윗과 성관계를 가진다면 임신을 할 수 있을 만한 때(월경이 시작된지 10~14일 후)였다는 것을 확증해 준다. 그리고 이는 우리아가 밧세바가 가진 아이의 아버지일 수 없음을 의미한다. (...)
11:14~15 비운의 편지 :
우리아는 원래 군사적 상황을 직접 보고하기 위해 파송되었기 때문에, 다윗이 공식적인 급송 공문서와 명령을 내려서 그를 요압에게 돌려보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희생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사형시키라는 지시서를 전달하게 하는 이야기의 요소는 많은 문화권의 민간 전승에서 발견된다 (<일리아드>를 보면 벨레로폰은 잘못 기소를 당해서 뤼키아 왕에게 자기 자신의 사형지시서를 가지고 간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여기서만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 pp 481~482
11:2 왕궁 지붕 :
예루살렘에서는 초저녁에 상쾌하게 부는 시원한 바람 때문에, 많은 사람이 밖으로 나와 교제를 나누거나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지붕 꼭대기에서 바람을 즐겼다. 왕궁의 구조는 일반 평민들의 집 구조와 비슷해서, 지붕에 커다란 거실이나 침실이 있었을 것이다.(삼상 9:25)
11:2 목욕 :
밧세바의 목욕은 아마도 월경이 끝난 후의 정결 의식 행위일 것이다(삼하 11:4을 보라). 이것은 레위기 15:19~24에 묘사된 정결의식법에 근거했을 것이다. 그녀가 지붕에서 목욕을 한 의도가 그저 바람을 이용해서 몸을 말리려고 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 기회를 이용해서 왕의 주의를 끌려고 했던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11:3 밧세바의 가족 :
밧세바의 아버지는 다윗의 특별 장교들인 '용사' 중 한 사람인 엘리암이며(삼하 23:34), 그렇기 때문에 영향력 있는 가문의 가장이었다. 그는 다윗이 가장 존중하던 모사 중 한 사람인 아히도벨의 아들이다(삼하 15:21; 16:23). 이러한 정보는 밧세바의 남편인 헷 사람 우리아 역시 '용사' 중 한 사람(삼하 23:39)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다윗이 자기가 누구의 집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밧세바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또다른 해석은 "이는 밧세바가 아니냐"라고 말한 사람이 다윗이라고 주장한다).
11:4 부정함을 깨끗하게 함 :
밧세바가 목욕을 했다는 것은 월경 주기 이후 칠 일 간의 부정함이 끝난 다음 정결하게 씻는 의식을 말한다(레 15:19~24를 보라). 이것은 또한 그녀가 다윗과 성관계를 가진다면 임신을 할 수 있을 만한 때(월경이 시작된지 10~14일 후)였다는 것을 확증해 준다. 그리고 이는 우리아가 밧세바가 가진 아이의 아버지일 수 없음을 의미한다. (...)
11:14~15 비운의 편지 :
우리아는 원래 군사적 상황을 직접 보고하기 위해 파송되었기 때문에, 다윗이 공식적인 급송 공문서와 명령을 내려서 그를 요압에게 돌려보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희생자로 하여금 자기 자신을 사형시키라는 지시서를 전달하게 하는 이야기의 요소는 많은 문화권의 민간 전승에서 발견된다 (<일리아드>를 보면 벨레로폰은 잘못 기소를 당해서 뤼키아 왕에게 자기 자신의 사형지시서를 가지고 간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여기서만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 pp 481~4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