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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좋아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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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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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7년 03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29쪽 | 408g | 132*193*30mm
ISBN13 9788972882985
ISBN10 8972882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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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젊은 날의 추억, '좋아했던 것'
--- 강현정 (jude55@yes24.com)
2009-12-16
좋아하는 것과 좋아했던 것. 좋아하는 것이 '여전히'와 어울린다면, 좋아했던 것은 '한 때'와 어울린다.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면 약간은 두근거리고 설레이기도 하지만, 좋아했던 것에는 아련함이 있다. 아마도 '했던'이라는 과거형이 전하는 특별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잊고 있던 기억 속 한 조각이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오랜만에 책상을 정리하다가 초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친구와 주고받았던 교환일기장을 마주했을 때 그랬고, 테이프가 다 늘어지도록 감아서 듣고 또 들었던 노래가 버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을 때 그랬다. 지금은 돌아갈 수 없고, 다시 겪을 수도 없는, 추억하면 희미한 웃음을 짓게 되는, '좋아했던 것'.

누구나 좋아했던 것에 대한 추억이 있을텐데, 주인공 ‘요시’에게는 특별했던 2년 동안의 기억이 있다. 장난삼아 응모한 공단주택 추첨에 ‘칠십 육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환상의 나비를 좇는 카메라맨 친구 '당나귀'와 함께 술집을 찾았고, 그 곳에서 우연히 마주한 '아이코'와 '요코' 와 함께 아무런 준비 없이 동거생활을 하게 된다.

동거를 시작하고 나서야 자기소개를 할 만큼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지만, 넷은 서로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요시는 난해한 전문서적을 즐겨 읽을 정도로 똑똑하지만 혼자 지하철도 못 타는 신경불안증을 앓고 있는 아이코에게, 당나귀는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헤어디자이너 요코에게 호감을 느낀다. 네 사람은 어쩌다 보니 만났고 동거까지 하게 된 이상하고도 특별한 사이지만, 어느 새 서로에게 닥친 어려움을 사랑과 이해로 보살핀다. 아이코가 의대에 진학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학비를 모으고, 당나귀가 신비의 나비를 찾을 수 있도록 경비를 마련한다.

그들은 타인의 인생에 서로 깊이 관여하게 되었고, 가족 이상으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네 사람의 관계에는 중요한 무엇인가가 부족했다. 곤란에 빠진 남을 못 본 척 할 수 없는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었던 덕분에 관계가 시작된 것일 뿐, 그 관계를 단단하게 이어줄 접착제가 약했던 것. 당나귀는 옛 남자 때문에 새로운 사랑인 자신을 아프게 하는 요코를 조용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요시 역시 아이코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이미 다른 사람이 그녀의 마음에 들어온 이상,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요시는 얕은 꿈속에서 새벽녘의 빗소리를 들으며 지난 2년간의 기억을 회상한다. 커다란 아픔도 있었지만 아무런 계산 없이 무모할 수 있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지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누군가를 위해 살고, 모든 것을 줄 수 있었던 순수했던 2년 동안의 기억. 소중한 젊은 날의 추억도 그 순간을 ‘좋아했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떠올리면 마음 한 구석이 저려오지만, 그 시간을 추억하며 행복할 수 있는 것도 ‘좋아했던 것’을 가져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요시는 아이코와 함께 누웠고 몸을 섞었던 침대를 이야기하면서도 죽을 정도로 아프지는 않다. 그들의 이야기에 나왔듯, 시간은 망각의 힘과 뭔가를 해결하는 힘도 가지고 있는 게 확실한 모양이다. 아마 죽을 듯한 실연의 고통을 겪고,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아픔이 지나간 자리에 가득 차 있는 기억은 아름다움으로 추억된다. 그만큼 ‘우리가 좋아했던 것’을 위해 순수하고 열정적인 마음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그것은 또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숨을 쉬고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오늘이 경칩이야. 경칩, 알지? 겨울이지만 흙속에선 벌레들이 꿈틀대기 시작하는 날. 네게는 지금이 바로 경칩이야. 그리고 내 몸은, 반은 한여름이고, 나머지 반은 한겨울.”


“말도 안 돼. 마음 놓고 방귀도 뀔 수 없고, 목욕하고 팬티 차림으로 맥주도 못 마셔. 절대로 그렇게 피곤하게는 못 살아.”
“너무 이상하지 않니? 남자 둘에 여자 둘이 같은 집에서 지내는 거?”
“물론 이상하지, 이상하지만 나, 이런 생활 동경했어. 잘만 되면 얼마나 즐겁겠어?”
“너 같은 놈을 뭐라고 해야 할까? 낙천가? 아니면 천하태평?”
“유리창으로 돌격하는 벌, 아니면 장애물을 피하지 않는 쇠똥구리.”


“사랑하는 연인들이 한곳에 오래 있으면서도 권태를 느끼지 않는 것은, 날이 새고 저물어도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칠십육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공단주택 아파트에 당첨된 조명 디자이너 요시는 네팔에만 사는 희귀한 나비를 좇는 카메라맨 친구 '당나귀'와 함께 살기로 한다. 들뜬 기분으로 술집에 간 이들은 우연히 두 여성과 동석하게 되고 함께 어울리다가 모두 아파트로 몰려가 2차까지 마시고 헤어진다. 며칠 후 두 남자의 이삿날, 짐을 가득 실은 트럭과 함께 두 여자가 들이닥친다. 남자들은 당황하지만, 술자리에서 함께 살기로 선언식까지 했다는 여자들의 말 때문에 내치지도 못하고 집으로 들이고 만다.

그리고 그날부터 이 네 사람의 공동생활이 시작된다. 요시는 불안신경증을 앓는 회사원 아이코에게 호감을 느끼고, 온순한 당나귀는 매사에 자신만만한 헤어디자이너 요코의 매력에 빠져든다.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면서 행복했던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엇갈리는 사랑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한다.

연인 아이코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걸 느끼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요시. 옛 남자 때문에 새로운 사랑인 당나귀를 아프게 하는 요코. 그들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자신의 에고 사이에서 흔들리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통의 터널을 지나면서 길고 지루한 장마 같은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기도한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떠나거나, 아니면 다시 돌아온다.

긴 장마 후의 햇살. 그렇게 이 년은 흘러갔다. 이 년 후 그들은 빗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의 꿈과 행복을 위해, 우정을 위해, 소중한 젊은 날의 그 무엇을 위해 무모하게 순수하고도 뜨거웠던 그 시절을 각자의 자리에서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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