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논의한 대로 창세기 1:1을 독립절로서 창조 기사 전체의 제목으로 이해한다면, 창조 이야기 자체는 1:2에 나타나는 깊음, 어두움, 심연의 바다로부터 시작하며, 창조 행위가 시작되면서 점차 그 요소들이 제거된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날의 궁창은 하늘과 땅의 분리에 상응한다고 여겨지는데, 이는 셋째 날에 물에서 뭍이 드러나 동식물이 살아갈 땅이 되기 위한 공간을 미리 확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3층으로 구성된 세계가 형성된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의 창조 기사가 진술되는 방식의 근간을 형성하는 고대 근동의 특정한 기본 패턴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고대 근동 지역의 한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이 이해할 수 있도록 창조 기사를 허락해주셨다. ---「1장_ 문학적으로 본 “날”, 상호텍스트성과 배경」중에서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도 창세기 1-2장을 비슷하게 이해하는 부분이 나타난다. 에베소서 5:31에서 바울은 결혼에 대해 말하는데, 한 육체로의 연합을 언급하면서 창세기 2:24(“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을 권위 있는 지지 본문으로 인용한다. 성적 부도덕에 대한 논쟁이 담긴 고린도전서 6:16에서 바울은 한 육체로의 연합을 강조하면서 다시 한 번 창세기 2:24을 그의 논의를 뒷받침하는 구절로 인용한다. 더욱이 남성의 권위를 언급하는 고린도전서 11:7-12에서 바울은 두 번이나 창세기 2장의 창조 기사로 거슬러 올라가 여자는 남자에게서 창조되었다고 강조한다(고전 11:8, 12). 그러므로 바울이 창조를 개념이나 관념으로만 다루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자는 남자의 창조 이후 남자의 몸에서 나왔다는) 창조 기사의 구체적 세부 사항을 바울이 인용하기 때문이다. ---「2장_ 문자적 해석」중에서
이 모든 관찰과 결론은 창세기 2:5-7이 상황을 나타내는 방식과 잘 결합된다. 레반트(Levant) 서부 지역의 강우 주기는,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을 때 왜 그 땅이 건기의 끝자락에서 메마른 상태였는지를 설명해줄 뿐 아니라 비구름이 막 떠오르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강우 주기뿐 아니라 “땅을 경작할” 인간이 부재했다는 사실은 그 땅에 식물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를 보여준다. 즉 창세기 2장은 창세기 1장의 “셋째 날”과 혼동이 없다. 오히려 본문은 여섯째 “날”에 건기가 끝나고 우기가 시작되면서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음”을 보여준다(2:7). 더욱이 2:18의 “좋지 아니하니”라는 표현은 1:31의 “매우 좋았더라”라는 표현을 반영하며 우리가 아직 여섯째 날의 마지막에 이르지 못했음을 일깨워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속해서 여자를 “만드시며”(2:22),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2:23, 표준새번역)이라는 남자의 고백을 이끌어내시고, 그들의 벌거벗음이 지극히 복된 순결함임을 보여주신다(2:25). 이제야말로 우리가 “매우 좋았더라”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3장_ 문맥에 따른 해석: 유비적 “날들」중에서
성서의 창조 기사는 동시대에 존재했던, 창조에 대한 다른 개념들의 배경에 저항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성서에는 우주와 인간을 창조한 신은 다른 신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라는 사실을 선포해주는 언어와 개념들이 사용되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변증을 목적으로 창조를 묘사하는 이러한 방식은 구약 다른 부분에 나타나는 창조 관련 텍스트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창세기 1-2장을 읽는 현대인들에게는 이 창조 기사가 다윈설을 신봉하는 사람들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바빌로니아, 가나안, 이집트인들의 주장에 맞선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성서가 창조를 묘사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방식을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신이 아닌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4장_ 창세기 1-2장이 주는 교훈[혹은 교훈이 아닌 것]」중에서
나는 창세기 1장의 첫 3일에 관한 기사가 시간, 날씨, 음식이라는 기능의 기반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가 고대 근동 문서들에서도 동일하게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추론해도 전혀 놀랍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바빌로니아 서사시 「에누마 엘리쉬」 5번째 석판은 우주를 형성하는 마르두크에 관한 기사를 포함하는데, 1-46째 줄은 천구(天球)와 밤낮의 형성과 관련되며 마르두크가 시간을 만드는 모습을 자세히 보여준다. 47-52째 줄은 구름, 바람, 비, 안개, 즉 날씨라는 기능에 대해 마르두크가 행사하는 지배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53-58째 줄에서 티아마트가 관장하는 물은 농업을 위한 물 공급에 이용되며, 따라서 음식의 생산을 위한 것이다. ---「5장_ 고대 우주론을 반영하는 창세기 1장」중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이런 익숙한 경험을 우리와 공유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질문을 제기하고 소중히 간직해온 관점의 대안이 되는 해석을 제공하는 일은 용기를 잃게 만드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 중 다수는 철저하게 규격화되고 변증적 측면으로 치우친 창조관을 부모나 출석하는 교회로부터 물려받았다. 더욱이 창세기 1장의 “문자적” 해석이란 주제에 대해 대다수 사람이 알고 있거나 신경 쓰는 내용은 이렇다. 그들에게 “문자적” 해석이란 지구의 나이에 관해 “분명한” 결론(즉 지구의 나이는 젊다)을 내려주는 모든 견해이며, 하나님의 창조 과정을 설명해주는 모든 내용(즉 진화가 틀렸다)이다. 이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태도는 성서를 배신하고 이를 문화라는 가치에 “팔아넘기는” 행위다. ---「6장_ 기독교 대학에서 창세기 1장 가르치기」중에서
나는 다수의 복음주의 구약 학자들이 발전시킨 최근의 논의, 즉 과학과 성서라는 이율배반에 대한 해결책보다 더 좋은 해답이 있으리라 믿는다. 이런 믿음은 나 개인의 견해일 뿐 브라이언 칼리지나 브라이언 재단의 공식 견해는 아니다. 내 견해는 “집안 내” 논의에서 나타나는 많은 견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성숙한 논의를 보여주는 한 가지 지표는 난제들을 다룰 때 솔직하게 견해를 밝히는 태도다. 나는 이 책이야말로 그런 성숙한 논의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창세기의 앞 장을 둘러싼 해석 문제가 포함된 주제들을 다루는 시도로서, 건전하고 굳건하며 철저한 연구를 보여준다.
---「7장_ 풀리지 않는 주요 질문들: 복음주의자들과 창세기 1-2장」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