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문화의 족장사회에서는 조상숭배에서 효도의 가르침이 발전했다. 조상 제사를 지내는 문화적 민족에게는 오늘날도 여전히 효도가 뛰어난 덕행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때 효도를 영어에서의 일반적 의미―양친에 대한 자식의 헌신―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 효도(pietas)라는 말은 고대 로마에서의 의무와 같은 고전적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즉, 가족의 의무와 같은 종교적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죽은 자에 대한 존숭 및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의무감, 부모에게 바치는 자식의 애정, 자식에 대한 부모의 애정, 부부 상호 간의 의무, 마찬가지로 사위(양자)와 며느리(양녀)가 한 무리로서 가족 전체에 대해 수행하는 의무, 고용주에 대한 사용인의 의무, 그리고 부양가족에 대한 가장의 의무, 이런 모든 것이 효도라는 말 속에 포함되어 있다. --- p.45
이론적으로 가장의 권력은 지금도 한 가문에서 최고이며, 전원이 가장에게 복종해야만 한다. 나아가 여성은 남성에게, 부인은 남편에게, 한 집안의 연소자는 연장자에게 복종해야 한다. 아이들은 양친이나 조부모의 말을 들어야 할 뿐 아니라 그들 간에도 가정 내의 장유 순서를 지켜야 한다. 이런 까닭에 동생은 형을 따르고 여동생은 언니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자리 순서 규칙도 부드럽게 시행되어 어떤 이유에서도 모두 즐겁게 이를 지켰다. 예를 들면 식사 때 장남 밥을 가장 먼저 담고 그다음에 차남 등의 순서대로 담는다. 그 순서를 기다리지 못할 것 같은 아주 어린 아기의 경우는 예외다. 차남을 놀리는 ‘찬밥 신세’라는 말은 이러한 풍습에 대한 설명이 될 것이다. 즉, 차남은 유아나 연장자의 밥을 담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그의 몫이 올 무렵에는 아무리 원해도 따뜻한 밥이 될 수 없는 것이다. --- p.55
허버트 스펜서에 따르면 종교적 왕조에는 그 수명의 영속성에 이상한 힘이 있다. 그것은 왕조가 변혁성에 대해 이상한 저항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무력에 의한 왕조는 그 영속성이 군주된 자의 개인적 성격에 의존하기 때문에 특히 분해·붕괴되기 쉽다고 한다. 이 가르침은 단순한 무력 지배를 대표하는 잡다한 쇼군직 및 셋슈직의 역사와 일본 천황의 연면한 무궁함을 대비해볼 때 가장 현저하게 드러난다. -- pp.219-220
일본에서 인기 있는 비극의 대부분은 주군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죽인 이들의 희생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의 대부분은 봉건시대에 있었던 사실이다. 연극 작품이기 때문에 과장됐을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물론 그러한 사건은 연극적인 요소에 적합하도록 재구성되거나 확대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구성된 고대사회의 모습은 아마도 흘러가버린 과거의 현실보다는 침울한 기분이 희박할 것이다. 일본인은 지금도 여전히 그런 비극을 애호한다. 극문학을 다루는 외국 비평가들은 이런 비극의 피비린내 나는 장면만을 지적한다. 그리고 대중이 유혈이 잔혹한 정경을 좋아하며, 이는 이 인종의 핏속에 어딘지 불령(좋지 못한)한 잔인성이 숨겨져 있는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종래의 비극에 대한 애호심은 오히려 외국 비평가들이 항상 무시하려고 노력해온 것, 즉 이 국민의 매우 깊은 종교적 성격의 증거일 것이다. 이런 연극은 즐거움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이런 연극이 항상 기쁘지 않은 것은 공포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도덕적 교훈 때문이다. 희생과 용기의 본분, 즉 충의의 종교가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극은 봉건사회의 순난을 최고 지순한 이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 p.227
30년 전 쯤, 아직 표면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던 시절에 이 경이로운 요정의 나라에 발을 디뎌 이곳의 생활을 접하는 특권을 누린 사람들은 정말 매우 행복했을 것이다. 어디에서든지 사람들은 누구나 우아하며 미소를 머금고 있고 조용하다. 그들은 강한 인내심으로 묵묵하게 일하고 거리에는 비참함도 싸움질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외국의 영향에 별로 물들지 않은 머나먼 시골에 가면 오래전 옛날 생활의 아름다움이 숨 쉬고 있어 놀라게 된다. 그런데 보통 여행자들은 이러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다. …… 그러나 수련을 거듭한 사회학자에게 이것은 어딘가 특이하고 기분 나쁘며 무서운 것을 암시할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이 사회가 더할 나위 없는 강압 아래 특정 형태에 맞추어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그런 강압이 몇천 년 동안이나 특별히 방해받지 않고 지속되어왔음이 실증될 것이다. 그리하여 도덕과 관습이 여전히 분리되지 못하고 있으며 각 개인의 행위가 타인의 의지에 따라 제약되는 것을 매우 간단히 인정할 것이다. 그는 이런 사회 환경에서 개성은 발달할 수 없다는 것, 즉 어떤 개성도 그 우수성을 주장할 수 없으며 어떤 경쟁도 허락되지 않음을 안다. 또 이러한 생활의 외관적 미 ―그 자체의 부드러움, 꿈속의 세계에서나 나올 법한 침묵의 미소―는 모두 사자의 지배를 의미한다.
-- pp.299-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