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한 개체로서 또 한 종으로서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핵심 문제에 관한 것이다. 이 책은 또한 오늘날 대부분 사회의 특징이 돼버린 무자비한 지구 위 생명 파괴와 거기에 뒤따르는 우리 자신의 내적 자아의 빈곤화와 결별하려면,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환시켜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는 법 또는 거버넌스 철학에 관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법률가를 위해 쓴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책에서 논의되는 법학은 거개의 현대 법률가에게는 낯선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일부라도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의 하위 종(sub-species)은 우리 거버넌스 시스템의 목적은 말할 것도 없고, 법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숙고하기 위해 넉넉한 시간을 들여 법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관해 조언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19
이 책 『야생의 법』은 21세기의 핵심 도전과제, 즉 복잡한 산업?소비 사회를 어떻게 재조직해 사람들이 지구 공동체를 착취, 훼손하지 않고 그 건강에 기여하면서 우리의 안녕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도전과제에 관한 것이다. 이는 법 시스템을 자연의 법(the Laws of Nature)에 맞춰 재조정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인간 존재와 우리가 만든 제도에 지구 공동체의 다른 성원들과 자연의 과정(natural process) 안에 참여해 서로와 관계를 맺을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지닌 주체로서 존중해야 법적의무를 부과할 것을 요구한다.
--- p.37
지구의 급속한 훼손은 우리 인간이 무엇인가 끔찍하게 잘못하고 있고, 인간의 자기 규율 메커니즘(가령 거버넌스 체계들)에 결함이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우리가 목격하고 관찰하는 환경 악화와 파괴가 자연 진화과정의 한 부분이고, 마지막에는 지구가 스스로를 해결할 것이므로 지나치게 우려할 것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길게 보면 그들이 맞을 수 있지만, 섬세한 생물학적 공동체 사회(생물군집)의 불필요한 파괴가 3천 년 후에야 겨우 회복될 것이라는 생각은 나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위안이다.
--- p.61
수세기 동안 우리 인간은 우주로부터 분리된, 기만적인 ‘인간 세상’을 구축하는 데 열정적으로 몰두해왔다. 우리 마음에서, 우리가 태어나 들어간 생물권(圈)을 거부한 채, 거대하고, 밀봉된 ‘인간만’의 세상을 구축해왔다. 이렇게 고안된 ‘인간권(homosphere)’ 내에서 인간의 우월성이라는 신화로 숨 쉬며 오랫동안 살아와 이제 우리에게 인간권은 지구보다 더 실재적이다. 우리 자신의 창조성에 도취되고, 우리 관념의 빈틈없음에 매료돼, 예측 불가능하고 신비스런, 창 너머 ‘자연 세계’의 아름다움을 신식하지 못했다.
--- p.89
우리가 집단학살을 인륜에 반하는 범죄로 불법화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한 반인륜적 범죄는 세계 어디서든―설령 그것이 발생한 나라의 법에서는 합법적이라 하더라도―범죄로 기소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종 내지 살아 있는 시스템을 절멸하는 것은 어떠한가? 몇몇 예외 사례를 제외하고 가장 위험하고 해로운 인간 존재의 행위, 다른 생명 형태 또는 심지어 지구 생명부양체계를 살해하거나 절멸을 위협하는 행위는 범죄로 인정되지 않는다. ‘생물학살’ 또는 ‘생태학살’이라 부를 수 있는 행위를 금지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사실, 지금 시대에서 지구 상에서 가장 강력한 인간 사회는 생명이 의지하는 기후체계를 계속해 파괴하는 권리를, 어떤 제한도 받지 않은 채 계속 누리길 바란다.
--- p.116
인간이 권리를 갖는 지구 공동체의 유일한 성원이 아니고, 그러한 권리의 원천이 인간의 법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한다. 전체로서 지구는 어떤 권리를 갖는가? 그리고 지구 공동체의 다른 성원들은 어떤 권리를 갖는가? 이러한 물음들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권리를 규정하는 의미를 갖는다.
--- p.171~172
지구 시스템 내에서 전체로서 지구의 안녕이 다른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지구 생물권의 구성요소들은 단 하나 예외 없이 지구 생태계 내에서만 생존 가능하다. 이는 지구 공동체의 성원들 저마다의 안녕이 전체로서 지구의 안녕에 의존하며, 또 이것에 우선할 수 없음을 뜻한다. 따라서 지구법학의 제1원칙은 개인이나 인간 사회의 이익보다 전체 공동체의 생존과 건강, 그리고 번영에 우선권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 p.172
나는 종국적으로 이러한 더 복잡하고 생태학적인 방식으로 지각하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후천적 본성이 되기를 바라지만, 그 순간에도 계속해 나 자신의 사고과정을 감시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안다. 이 점에서 지금까지의 삶이 나에게 가르친 몇 가지 단순한 교훈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이 도움되리라 생각한다. 첫째, 나 자신이 가진 편견을 확인, 파악하고, 겸손의 중요성을 기억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늘 제1원칙으로 되돌아가 그 단순한 진리를 깊이 되새기려 한다. 셋째, 배우는 방법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고 새로운 접근법에 열려 있어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계속 환기한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이 횡단하려는 지형에 능숙하고 지식을 가진 사람에게 귀 기울이고 그에게서 안내받는 것이 무척이나 귀중하다는 것을 안다.
--- p.210~211
재산법을 토지에까지 적용함은 인간 주체가 일방적으로 지구 공동체의 모든 다른 측면을 객체로 지배하는 것이 바르고 적절하다고 여기는 세계관을 반영한다. 지배적인 법철학은 토지를 상품으로 규정함으로써 우리가 마구잡이로 지구를 개발하는 그러한 착취관계를 정당화하고 또 촉진한다. 이러한 철학은 또한 토지 내지 지구를 존중하는 관계에 기초한 거버넌스 시스템의 개발을 방해하고, 또 이러한 존중의 관계가 내재적 지구권을 가지는 주체들 간의 호혜관계임을 인정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 철학은 자연으로부터 우리 자신의 소외를 심화한다.
--- p.243
지구법학을 표현하기 위해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지배적인 법 시스템 내에 의식적으로 열린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 법 시스템 내에서 공동체는 지구중심적 세계관의 표현을 시작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은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에 따라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권리를 지지하기, ‘승인된 품종’이 아닌 작물을 재배할 권리를 되찾기, 유전자 조작 유기체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역을 유지할 권리를 주장하기를 비롯해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 p.276
지구를 훼손시키는 과정을 중단하고 이를 되돌리고자 한다면, 우리 자신을 규율하는 방식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이 상황은 우리에게 전 세계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가 전제한 기본 신념과 신화(일부)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하고 있음에 주목한 토마스 베리와 다른 이들이 옳다. 특히, 인간이 지구에서 분리됐다는 잘못된 생각을 거부하고, 우리 안녕의 모든 측면은 지구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p.291
지구법학은 단순히 하나의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실천적인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 지구를 존중하고 경의를 표하며 감사하며, 전체와의 유대를 심화하는 데 이바지하는 작은 의례들과 실천들이 우리 삶에 다시 들어옴으로써 개인으로서 지구법학을 따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수많은 종교와 고대의 철학이 우리에게 가르친 바와 같이 준수와 존중의 작은 행위를 실천하는 것은 우리 삶에 대한 의미를 심화하고, 또 추가하는 한 방법이다.
--- p.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