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 탓에 나뭇잎들이 얼어서 걸을 때마다 바스락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좋았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는 특히 더. 그래서 나는 풀숲만 찾아 걸었다.
길거리든 남의 집 담벼락이든, 내 마음에 들면 마냥 좋았다. 이곳은 별로다 싶으면 바로 발걸음을 옮겼고, 생각보다 너무 좋은 곳을 갈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어둑해질 즈음 숙소로 돌아가곤 했다. 시간과 계획의 틀을 버리니 여행은 좀 더 나다워졌다. 이번 여행의 계획은 딱 하나였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좋아하는 곳을 찾는 것.
세상에 빈틈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아. 마치 제주의 돌담처럼.
멀리서 보았을 땐 내가 저 나무보다 키가 클 줄 알았지. 타이머를 꾹 누르고 나무 옆으로 뛰어가는데 생각보다 나무가 훨씬 큰 거 있지?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버렸어. 그러면 저 꼭대기에 손은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말이야. 하지만 택도 없었지. 원래는 나무와 어깨동무를 하려 했는데, 어쩐지 열매마냥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 돼버렸지 뭐야.
여행은 마음이 울컥하는 거예요. 바로 옆 동네일지라도 그곳이 당신의 가슴을 뛰게 했다면, 그것은 여행이에요.
10대에는 10대만이 느끼고 경험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인생에 한 번뿐인 나의 열여덟을 추억할 때, 독서실에 처박혀 의미 없이 샤프를 돌리는 나보단 오늘의 나를 떠올리고 싶었다.
삶이 사막이라면 여행은 우물을 찾는 과정이 되겠지.
제주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깨끗한 푸른색과 따뜻한 녹색쯤이 좋겠다.
넓디넓은 세상에 비하면 우리의 인생은 한없이 짧다. 우리는 부지런히 걷고, 경험하고, 또 행복해야 한다.
삶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하기 때문에 삶이 여유로운 것이다. 여행은 사치가 아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파란 도화지 같은 하늘은 무엇을 그려도 작품이 될 것만 같았고, 그래서 나는 나를 그렸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억새풀을 휴지통에 버렸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걸 버린 게 참 아쉽더라. 그 순간의 억새는 딱 그거 하나뿐인데, 말려둘 걸. 코팅이라도 해서 꼭 간직해둘 걸. 그래서 가끔 열여덟의 내가 생각날 때, 꺼내어 볼 걸.
엄마, 저는요. 혼자 돌아다니며 세상의 따뜻함을 느꼈고, 그만큼 앞으로 나는 무수히 많은 슬픔을 겪게 될 거라는 걸 알았어요. 하지만 잘 이겨낼 수 있다고, 슬픔보다 따뜻함이 더 많은 세상이라는 것도 알아요. 엄마, 저는 이런 여행을 하고 있어요.
10초의 타이머 앞에서 모델이라도 된 양 한껏 포즈와 표정을 짓다가, 찰칵 소리와 함께 다시 수줍은 여고생으로 돌아온다. 나는 그 10초 사이의 슬구가 좋다. 그 10초를 만드는 카메라가 좋다.
인생이 딱 한 번뿐인 항해라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 아주 튼튼한 돛을 만들고 있는 거야. 어떤 돛을 만드느냐에 따라서 평생의 항해는 달라지지. 아주 튼튼한 돛을 만들기 위해선 찢어지는 방법도, 구겨지는 방법도 알아야 해. 그래야 어떤 폭풍우를 만나도 끄덕 없는 돛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살면서 딱 하나 헤퍼도 좋은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웃음이 아닐까?
그래서 나도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 진짜 행복한 일이 많아지길 바라면서.
사막 한가운데 숨겨진 오아시스처럼, 소복이 쌓인 눈에서 피어나는 야생화처럼. 우리는 마음속에 작은 낭만을 품어야 한다. 낭만이 없는 삶은 메마른 사막, 생기 없는 겨울이다.
여행을 다녀와서 망설였던 걸 시도하기도 하고,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에게 용기 내 메시지를 남겨보기도 한다. 나는 그날 밤의 천장을 기억한다. 생각에 잠겨 몇 시간을 껌뻑거리며 바라보았던 이층침대의 나뭇결을 기억한다.
여행을 마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난 다시 치열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여행은 뜻밖의 모습으로 내게 스며들어 있다. 난 좀 더 진실 된 미소를 지을 수 있고, 인내할 수 있으며, 따뜻한 소통을 할 수 있다. 여행은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날 성장시킨다.
자신 있게 걸어가세요. 이 길이 아니다 싶으면 다시 되돌아오면 되니까. 대신 조급함은 잠시 내려두기. 지름길엔 없는 뜻밖의 풍경을 마주칠지 누가 알겠어요?
‘넌 어떤 사람이니?’ 그 답을 찾기 위해 나는 또 여행을 한다.
등에 멘 가방이 마치 쌀가마니처럼 느껴질 때,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찬 것 같을 때. 그때가 되면 어느덧 나는 집 앞에 와있다. 가장 지치고 힘겨운 발걸음으로 4층을 낑낑 올라가면 날 기다리는 고양이 칸쵸와 동생 탱구가 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그 둘을 향해 몸을 던진다. 칸쵸는 도망치고 탱구는 무겁다며 짜증을 내지만 반가움을 주체할 수 없는데 어찌할까! 역시 집이 최고야.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포근함이다.
당장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건가요?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것. 그걸 하면 되는 거예요.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