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께서 일흔두 살이 되실 때 사촌동생이자 제자였던 제바달다는 붓다에게 음식에 대해 한 가지 건의를 하며, 승단에서 그것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 내용은 ‘승려는 언제나 탁발만 하며, 육식과 생선을 금지하고, 우유와 유제품도 먹지 말자.’는 것이다. 지금의 불교 상식으로 보면 이 주장이 바로 불교가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붓다의 대답은 달랐다. 그렇게 하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해도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개인의 자율적 판단에 맡길 문제이지 승단의 규칙으로 정할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수행하느냐가 중요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또 당시 사찰에서는 음식을 조리하지 않고 주로 탁발에 의존했는데, 승려는 탁발을 할 때 음식을 선택할 수 없었다. 즉 주는 대로 먹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음식을 선택하자는 주장은 당시의 수행 문화와 맞지 않았을 뿐더러 제도적으로 여러 문제점을 수반한다. 이것이 붓다가 제바달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은 이유다.
---「스님의 의식주」중에서
사찰의 하루는 새벽 3시에 시작된다. 붓다는 밤 9시에 잠자리에 들어 3때, 즉 세 시간을 주무셨다고 한다. 예전에 12지를 시간으로 사용할 때를 기준으로 하면, 과거의 한 시간은 지금 시간으로 두 시간이 된다. 이렇게 계산해 보면 9시를 기준으로 하는 3때, 즉 세 시간은 지금으로 치면 여섯 시간이 되므로 새벽 3시에 일어난 셈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 스님은 『대당서역기』 권2에서 인도의 한 시간은 현재의 두 시간이 아니라 세 시간이었다고 기록했다. 즉 인도는 12지 같은 시간 체계를 가진 것이 아니라, 주간 네 시간 야간 네 시간으로 돼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붓다는 밤 9시에 주무셔서 새벽 3시에 기상한 것이 아니라 오전 6시에 기상했던 것이다.
(중략)
결론적으로 사찰의 하루가 새벽 3시에 시작된 것은 오해가 파생한 결과일 뿐이다. 현장 스님은 이것을 정확히 인지했고, 귀국 후 당나라 불교의 제일인자가 되었음에도 이것을 시정하지 않았다. 자신 역시 새벽 3시를 기준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추운 기후에 속하며, 농경 문화가 발달한 동아시아에는 인도와 달리 동트기 직전에 일어나는 부지런한 풍속이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현장은 모범이 되어야 할 종교인이 농부보다 늦게 일어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찰 생활을 새벽 3시에 시작하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동아시아의 문화 전통을 고려해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산사의 하루」중에서
불교와 유교의 의례 중 일반적으로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이 제와 재를 구분하는 법이다. 이 두 글자는 한글과 한자가 모두 다르지만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예전에 유교의 제는 ‘좨’로 발음했다. 그래서 지금도 잘 관찰해 보면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은 제사 주관자를 제주라고 가볍게 발음하지 않고 ‘좨주’라고 무겁게 발음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제와 좨의 중간으로 발음한다고 보면 되겠다. 물론 현재로는 이 발음을 효율적으로 전수할 수 없기 때문에 제로 통일된 상황이다. 이렇게 되자 발음만으로는 제와 재, 양자를 구분할 수 없게 됐다.
우리가 제사라고 할 때의 제는 망자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주된 의식이다. 많은 육류를 진설하고, 이것을 망자가 드신 후에 상물림해 다시금 후손들이 먹음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제사이다. 제사에 좋은 음식을 차린다는 것은 ‘제삿날 잘 먹으려고 열흘을 굶는다.’,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 ‘먹지도 못하는 제사에 절만 죽도록 한다.’, ‘제사를 도와준 자는 맛보고 싸움을 도와준 자는 상한다.’, ‘공연한 제사 지내고 어물 값에 쪼들린다.’, ‘제사 덕에 이밥(쌀밥)이다.’ 같은 속담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불교의 재는 음식 제공이 핵심이 아니다. 가르침을 통한 관점의 전환과 공덕을 쌓는 것이 핵심이다. 재의 인도 말은 우포사타upo?adha인데 이는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목욕재계에서와 같은 의미로, 몸과 마음가짐을 올바로 한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그러므로 재 의식에는 『금강경』을 독송하거나 큰스님 법문 등이 포함되는 것이다.
---「산사의 하루」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