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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마지막 그림

내 생애 마지막 그림

: 화가들이 남긴 최후의 걸작으로 읽는 명화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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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6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84쪽 | 484g | 152*210*20mm
ISBN13 9791130608488
ISBN10 1130608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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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누드가 갑자기 변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사보나롤라를 알기 전의 보티첼리라면 이 정도로 시시한 여체는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모습은 조개껍데기를 타고 서풍에 날려 키프로스 섬으로 떠내려 온 비너스와 비슷하나 그 매력의 차이는 1,000만 광년쯤은 떨어져 있어 안쓰러울 지경이다. 어떻게 하면 보는 사람의 관능을 일깨울 수 있는지 아는 자는 어떻게 하면 관능을 지울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확신범이다. 보티첼리의 인기는 빠르게 식었다. 풍성한 이야기가 무미건조한 교과서로 변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보나롤라를 추종하고 그의 부활을 믿었다고 하니 본인은 불행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보나롤라가 처형되고 12년 후에 보티첼리는 가난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중에서

엘 그레코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그림은 처음이자 마지막 신화화인 〈라오콘〉이다. 트로이전쟁의 유명한 일화 ‘트로이 목마’가 주제다. (……) 주제를 신화로 바꾸어도 그의 개성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엘 그레코는 세상을 떠난 뒤 서서히 잊혔다. 두 세기가 지나 1819년에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이 개관했을 때 그의 작품은 단 한 점도 걸리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엘 그레코를 재발견한 사람은 놀랍게도 20세기의 표현주의 화가들이었다. 피카소도 자신의 ‘청색시대’ 인물 묘사는 엘 그레코의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그 그리스인’의 감성이 참으로 새로웠다는, 아니 지나치게 새로웠다는 증거다. ---「엘 그레코의 〈라오콘〉」중에서

평범한 사람의 10배, 20배 농축된 인생을 살았던 이 천재는 여든을 넘긴 말년에 검정 콩테로 일종의 자화상을 남겼다. 텁수룩한 머리카락과 긴 수염이 모두 하얗게 센 노인이 등을 구부린 채 양손에 지팡이 두 개를 짚고 간신히 서 있다. 배경은 어둡고 깜깜하지만 두 눈은 아직 번뜩이고 있다. 이 그림의 제목은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 고야, 만세. ---「프란시스코 고야의 〈나는 아직 배우고 있다〉」중에서

〈비너스와 삼미신에게 무장해제되는 마르스〉를 보면 보잘것없어진 그림 실력에 놀란다. 이 작품은 그의 최전성기 작품의 서투른 모사에 지나지 않는다. 신고전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아카데미 작품이 빠지기 쉬운 함정, 즉 형식에만 급급하고 영혼은 담지 않은 그림이 되어버린 것이다. 원래 다비드의 작품은 권위주의를 회화로 표현한 듯한 면이 있어서 호불호가 갈리기보다 잘 그린 그림의 교과서처럼 보였다. 그래도 나폴레옹을 그렸을 때는 나폴레옹이라는 인물 자체의 뜨거운 피가 전달되었다. 하지만 거기서 나폴레옹과 그의 지위를 빼자 그림은 빈껍데기만 남았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비너스와 삼미신에게 무장해제되는 마르스〉」중에서

당시에는 드물게 여든일곱 살까지 장수한 비제 르브룅은 남편과 딸을 저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만년을 다소 쓸쓸하게 지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붓은 버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다운 초상화를 원했고 그 요구에 따라 그녀는 계속 그림을 그렸다. 말년에 가까운 일흔여섯 살 때의 작품이 남아 있다. 러시아풍 헤어스타일을 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성의 초상화인데, 생기 있는 터치가 화가의 나이를 짐작하지 못하게 한다. 훌륭한 작품으로 명성을 떨친 18세기 최고의 프로페셔널 여성 화가는 자신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듯하다.
---「비제 르브룅의 〈부인의 초상〉」중에서

그러나 육체는 그를 배신했다. 죽기 10년쯤 전부터 때때로 심한 두통에 시달렸으며 자리에 자주 누우면서 서서히 몸이 쇠약해졌다. 그래도 붓은 놓지 않았다. 병상에서 끝까지 계속 손을 보았던 마지막 작품 〈야간의 새 사냥〉은 기묘한 박력이 넘쳐 그린 이가 자기 죽음을 의식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인생의 맨 마지막에 왜 밀레는 이 광경을 그린 것일까? 소년이었던 밀레를 들비둘기 사냥에 데려간 사람은 아버지였을까? 아버지도 몽둥이를 휘둘렀을까? 갖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노동의 성스러움을 줄곧 그려온 화가는 가축을 도축하는 것과는 다른 사냥의 한 측면도 그림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것일까? 이 또한 농촌 생활의 현실이다라고…….
---「장 프랑수아 밀레의 〈야간의 새 사냥〉」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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