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종이 한 장에 서명도, 출처도 없이 ‘1990년 10월 1일까지 준비될 물건’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그 아래에 열거된 내용은 잠들지 않는 조너선의 과거에서 날아온 악마의 목록이었다.
“한 장씩 복사하면 됩니까?” 전투 중에 시각이 또렷해지듯, 위기 상황에서 유난히 가벼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녀는 팔을 배 위에 겹쳐 올리고 두 손으로 양 팔꿈치를 감싼 채 담배를 피우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솜씨가 좋군요.” 무슨 솜씨를 말하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 p.26~27
버는 다시 그 아들에게 돌아가서, 조너선이 전전했던 군 위탁가정과 민간 보육원, 도버의 듀크오프요크 군사학교의 기록을 들여다보았다. 모순되는 표현들 때문에 급속도로 답답해졌다. 소심하다. 한 서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용기 있다. 또 다른 서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외톨이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 내성적이다, 외향적이다, 타고난 리더다, 카리스마가 없다……. 마치 진자처럼 말이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뭔가 따로 떼어놓아야 할 병적인 증상처럼, 외국어에 매우 관심이 많다는 표현도 한 번 나왔다. 그러나 버를 정말 짜증 나게 한 것은 융화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 p.95
“그의 첫사랑은 무기야. 그는 장난감이라고 부르지. 권력에 맛 들인 사람이라면, 그 습관을 충족시키는 데 무기만 한 게 없어. 그저 평범한 상품이라는 둥, 서비스 산업이라는 둥 하는 헛소리는 절대 믿지 마. 무기는 마약이고, 로퍼는 중독자야. 무기의 문제는, 모두가 무기는 불황과 상관없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야. 이란-이라크전은 무기상을 위한 것이었고, 그들은 전쟁이 절대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이후 업계는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지. 지나치게 많은 군수업자들이 얼마 되지 않는 전쟁터를 쫓아다니고 있어. 뒤로 빼돌린 군수품이 지나치게 많이 시장에 나오고, 평화 논의는 많고 돈은 충분치 않아. 디키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전에도 당연하겠지만 손을 좀 댔어. 아테네를 통해 크로아티아와 거래하고, 폴란드를 통해 세르비아와 거래하고. 하지만 돈은 그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시장에 몰리는 잡배가 너무 많지.” --- p.144
어두운 북쪽 주방 창문을 통해, 조너선은 도둑들의 절도가 어디까지 진전되었는지 살폈다. 다행히 그동안 그는 처음 솟아올랐던 살인적인 분노를 억제할 수 있었다. 집중력이 개선되었고, 호흡이 안정되었고, 자제력이 조금 되돌아왔다. 한데 이 분노는 어디서 나왔을까? 그의 내면 아주 멀고 어두운 어딘가에서 분노는 점점 솟아올라 홍수처럼 넘쳐흘렀지만, 그 원천은 수수께끼였다. 그는 칼을 더욱 단단히 붙잡았다. 엄지손가락을 위로 하고, 조너선, 빵에 버터를 바를 때처럼…… 날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눈을 보라고…… 너무 낮게 꽂지 말고, 다른 손으로 상대를 좀 괴롭혀줘…….
--- p. 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