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 곳곳에 웅크린 검은 개처럼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혼자 남겨진 사흘 동안, 나는 어둠의 품에 안겨 먹고 자고 칭얼거리며 버텨냈다. 내 숨결과 체취가 섞여 있을 검은 개는 두려워하기엔 너무나 익숙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나는 삼촌의 충고대로 놈에게서 눈을 피하지 않았다. --- p.11~12
경찰서를 거쳐 아동일시보호소로 오면서 나는 삼촌이 전화를 받고 사라진 날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셨단 걸 알게 되었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오면 안 될 누군가가 찾아왔고, 그 때문에 부모님은 말다툼을 벌였다고 했다. 장례식장 옥상에서 엄마를 무참히 살해한 건 아빠. 아빠를 살해한 건 아빠 자신이라고 했다. 치정에 의한 살인과 자살. --- p.12
“사람은 죽으면 살면서 부딪치고 다쳐서 멍들었던 상처가 순식간에 올라와. 그래서 울긋불긋하고 시커멓게 변하지. 영화처럼 새하얗고 창백한 시체는 없어. 그러니까 이 손은 가짜야.” --- p.27
“신기하다. 내가 아는 삼촌은 창고와 집, 우체국만 오가는 히키코모리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과 엮여 있었어. 게다가 모두 삼촌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고. 꼭 꿈을 꾸는 거 같아.” --- p.33
“얘, 넌 왜 울지를 않니? 삼촌이랑 사이가 별로였어?” 상용 아저씨가 소주와 맥주를 섞어 한입에 털어 넣은 뒤 물었다. 조문객들의 시선이 일순 내게로 향했다. “그러네. 혈육이라곤 진만이밖에 없잖아.” 그의 아내가 진미채를 질겅이며 거들었다. “괘씸…… 하잖아요.” --- p.39
“소규모 잡화상치고 보안이 너무 철저하다는 생각 안 들어? 모든 문마다 자물통과 최첨단 도도어록이 설치돼 있잖아. 사실 창고 안이 궁금해서 보여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는데 단칼에 거절하셨어.” --- p.57
“좀 어지럽고 미식거리지만 참을 만해. 아까 두 사람 대화 다 들었어. 블랙 코드는 그 살인자들, 레드 코드는 킬러, 퍼플은 정보원, 그리고 너는…… 그린 코드. 코드가 없는 사람이 제일 위험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