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무신론자였을 때는 '인류 대다수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 관해 언제나 잘못 생각해 왔다'고 스스로에게 애써 확신시켜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자, 전보다 개방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에서 기독교는 옳고 다른 종교들은 틀렸다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산수를 할 때 그렇듯이, 맞는 답은 하나이며 나머지는 다 틀린 답입니다. 그러나 틀린 답들 중에도 비교적 정답에 근접한 답이 있는 법입니다.
인류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다수와 믿지 않는 소수로 크게 나뉠 수 있습니다. 이 기준에서 볼 때 기독교는 고대 그리스인과 로마인, 현대의 미개인들, 스토아학파, 플라톤주의자, 힌두교도, 회교도 등과 더불어 다수파에 속하며, 현대 서구 유럽의 유물론자들은 소수파에 속합니다. 이들을 다시 크게 분류해 봅시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하나님을 믿느냐에 따라 한 번 더 나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크게 다른 두 입장이 있지요. 그 중에 하나는 하나님을 선악의 구분 너머에 있는 존재로 보는 입장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어떤 것은 선하다고 하고 어떤 것은 악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입장에 따르면 그것은 인간적인 관점에 불과합니다. 즉 인간은 현명해질수록 사물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지 않게 되며, 모든 것은 어떤 점에서는 선하고 어떤 점에서는 악하다는 사실과 그 어떤 것도 서로 다를 수 없다는 사실을 더 밝히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우리가 신적 관점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면 이런 구분들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암이 사람을 죽이므로 악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훌륭한 의사도 암을 죽이므로 악하다고 해야 합니다. 이처럼 모든 것은 관점에 달린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되는 또 하나의 생각은, 하나님의 분명히 '선한' 존재 내지는 '의로운' 존재로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가지고 있으며, 사랑을 사랑하고 미움을 미워하며, 우리가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기를 원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앞서의 관점-하나님을 선악의 구분 너머의 존재로 보는 관점-을 우리는 '범신론(Pantheism)'이라고 부릅니다. 제가 이해하는 대로라면 프로이센 사람인 위대한 철학자 헤겔(G.W.Friedrich Hegel)과 힌두교도들이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은 유대인과 회교도와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범신론과 그리스도인의 고나점 사이에는 이런 큰 차이 외에 한 가지 차이가 더 있습니다. 대개 범신론자는 인간이 제 몸을 움직이듯이 우주를 움직이는 존재가 바로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즉 우주 자체를 하나님과 거의 동일시하면서, 우주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하나님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우주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나님의 일부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개념은 전혀 다릅니다. 그들은 사람이 그림을 그리고 작곡을 하듯이 하나님이 우주를 창안하고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화가와 그림은 별개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림이 파괴되어도 화가는 죽지 않습니다. "화가가 그림 속에 자신을 쏟아 부었다"고 말할 수 는 있지만, 그것은 그 그림의 아름다움과 감흥이 모두 화가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뜻에 지나지 않습니다. 화가의 기교는 원래 그의 머리에 있는 것으로서 간혹 "그 손에 있다"고 표현할 수는 있어도 "그 그림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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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실재란 대개 여러분이 짐작할 수 없는 어떤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기독교를 믿는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기독교는 여러분이 짐작할 수 없는 종교입니다. 만일 기독교가 우리가 늘 예상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우주를 제시한다면, 저는 기독교를 인간이 만들어 낸 종교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기독교는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부류의 것이 아닙니다. 실재하는 것들이 다 그렇듯이 기독교에도 우리의 예상과 맞지 않는 기묘한 비틀림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미숙한 철학들-지나치게 단순한 답들-은 다 제쳐두기로 합시다. 문제 자체가 단순하지 않고, 따라서 답 또한 단순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 문제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우주에는 분명히 나쁜 것들과 명백히 무의미한 것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우리 인간들처럼 그것이 나쁘고 무의미하다는 점을 아는 생물도 존재합니다. 이 모든 사실들을 정면으로 다루는 관점은 단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기독교적 관점으로서, 세상은 원래 좋았는데 나빠졌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야 할 원래 모습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또 다른 관점은 '이원론(Dualism)'이라는 것입니다. 이원론은 모든 것의 배후에 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동등하며 독립적인 힘이 있으며, 우주는 그 두 힘이 끝없이 싸우는 전쟁터라고 믿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나온 이론 중에서는 이 이원론이 기독교 다음으로 가장 남성적이고 분별력 있는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이원론이 따르면 그 두 힘 내지는 두 영(靈), 또는 두 신- 하나는 선하고 하나는 악한-은 아주 독립적인 존재입니다. 그 두 힘은 모두 영원 전부터 존재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만든 것도 아니고, 하나님으로 자처할 수 있는 권리를 더 가진 것도 아닙니다. 아마 두 힘은 각각 자기가 선하며 상대방이 악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둘 중에 하나는 미움과 잔인성을 좋아하고 다른 하나는 사랑과 자비를 좋아하는데, 두 힘 모두 자기가 선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어떤 뜻에서 하나는 '선한 힘'이라고 부르고 하나는 '악한 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까?
단순히 어쩌다 보니 하나를 다른 것보다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 사과주보다 맥주를 더 좋아하듯이-뜻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든지, 아니면 그 두 힘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와 상관없이, 두 힘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선하게 여기는 것은 사실상 틀린 생각이고 잘못된 생각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만일 어쩌다 보니 선한 힘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뜻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면, 선과 악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선이란 '어쩌다 보니 그 순간에 더 좋아하게 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더 좋아해야만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선하다'는 것이 단지 별 이유없이 마음이 끌리는 편에 합세하는 것을 뜻한다면, 그 때의 선은 선이라고 불릴 가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를 '선하다'고 부르고 다른 하나를 '악하다'고 부르는 데에는, 두 힘 가운데 하나는 실제로 그르며 하나는 실제로 옳다는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는 순간, 이 두 힘을 제외한 제3의 존재, 즉 두 힘 중에 하나는 거기에 부합되지만 다른 하나는 부합되지 않는 어떤 법칙 내지는 기준, 또는 규칙을 우주에 끌어들이는 셈이 됩니다. 이처럼 그 기준에 따라 두 힘을 판단하게 되는 것을 볼 때, 그 기준 내지 그 기준을 만든 '존재'는 그 두 힘보다 더 오래 전부터 있었을 것이고, 더 높은 곳에 있을 것이며, 그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일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를 선하다고 부르고 다른 하나를 악하다고 부르는 것은, 사실상 하나는 진정한 궁극적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그릇된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인 것입니다. (...)
그러나 하나님을 시간의 흐름 밖, 그 위에 계신 분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그는 우리가 '내일'이라고 부르는 날도 '오늘'처럼 보실 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모든 날이 '지금'입니다. 그는 여러분이 어제한 일을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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