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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고백과 거짓말

아주 사적인 고백과 거짓말

ROMAN COLLECTION-007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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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8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282g | 130*195*16mm
ISBN13 9791186748701
ISBN10 1186748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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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은 언제나 당신 몫이었다. 당신이 명품과 이미테이션을 밀반입하려다가 적발된 이후에 수에게 연락을 하지 말라고 당부해놓았기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걸려오는 연락에 괜한 의심을 살 수 있다는 거였다. 한국에서 살 집을 구하면 부르겠다고 해놓고 차일피일 미룬 것이 벌써 6년째였다. 비자 문제로 수가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당신의 거처는 바뀌어 있었다. 물론 수는 그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약속을 해놓고 연락이 되지 않는 바람에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만약 연인이었다면 헤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고작해야 1년도 되지 않았지만 당신은 수의 남편이었고, 수는 당신의 아내였다. ---p. 25~26

여태껏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이 당신의 목소리 때문이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당신의 손가락을 보기 전에 목소리에 반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속에 깊은 우물을 간직하고 있는지 흉부에서부터 올라오는 목소리에는 묘한 울림과 쓸쓸한 정조가 담겨 있었다. 사이렌의 노래처럼 그 목소리에 홀려서 당신이 아름답게 느껴졌을지도. 그래서였을까. 원망과 분노에 휩싸였다가도 당신이 걸어준 전화 한 통에 모든 것이 부드럽게 풀어져버렸으니까. ---p. 58

수는 멀리서도 단박에 당신을 알아보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쉽게 다가설 수가 없었다. 자석의 다른 극처럼 한 발 다가설수록 마음은 그보다 한 발 더 뒷걸음질 쳤다. 당신은 변한 것이 없는데 자신만 너무 많이 변해버린 것 같았다. 당신이 성큼성큼 다가와서 안아주지 않았다면 뒤돌아 도망쳤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는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당신이 눈물을 닦아주려고 했으나 검게 그을고 잡티가 생긴 얼굴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런데 손길이 낯설었다. 소름이 돋도록 섬뜩한 느낌이었다. ---p. 64~65

수는 말하는 동안에도 마음은 벌써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하루빨리 당신과 손깍지를 끼고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꿈꾸고 싶었다. 손가락이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던 부드러운 감촉과 체온이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수는 오른손과 왼손이 맞닿은 운명선에 순응하며 더 이상 인생에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낭만적인 이벤트를 바라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래도’가 아니라 ‘그래서’ 행복할 거라고 믿었다. 그러니 당신만 있으면 된다고. ---p. 97

수가 철문을 닫으려는데 테이블 아래에 떨어져 있는 운동화 한 짝이 보였다. 쯔메이가 신고 다니던 운동화였다. 수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두리번거리며 쯔메이를 불러보았다. 목울대가 떨려서 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이 두방망이질 쳐댔다. 그때 테이블 저편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저, 여기.” 수는 황급히 테이블을 돌아갔다. 쯔메이가 쓰러져 있었고 바닥에 점점이 피가 떨어져 있었다. ---p. 103

그런데 수는,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라신에게 의심을 품었을 때보다 두려움이 서서히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마음도 이상하리만치 차분해졌다. 그런 자신이 서름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죽이려고 했다는 고백이 죽이지 않겠다는 다짐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당신이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데 왜 슬프거나 배신감에 몸서리쳐지지 않는지가 못내 궁금했다. ---p. 143~144

그 모습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서글픔과 허무가 가슴속에서 일렁였다. 슬픔과는 또 다른, 교화될 수 없는 감정이었다. 당신에게 달려가 목을 끌어안고 싶은 욕망이 치솟았지만 그러지 못한 건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사실을 그 순간 뼛속 깊이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당신이나 수나 마찬가지였다. 유예되고 방치된 세월 속에서 서로 너무 변해버린 탓일까. 어쩌면 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도 이러한 사실을 직감해왔는지 모르겠다. ---p. 197~198

사랑은 착란이었다.
그것에서 깨어나는 순간 환각제의 약효가 다한 것처럼 비루하고 속된 현실과 마주하게 될 뿐이었다. 사랑이 주는 쾌락보다 더한 것은 없으니까. 마치 쌍생아처럼 슬픔과 고통을 수반한다 해도 그마저도 환희와 기쁨의 다른 말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독자처럼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끝없이 사랑을 그리고 또 그리워하는가 보다. ---p. 200

통화를 마치고도 수는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당신에게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줄 정도로 솔직하게 다가온 라신 앞에서 이제 수가 연기를 하고 있는 꼴이었다. 이것이 당신을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방법인지 아니면 늪과 같은 진창에서 구르다가 스스로를 파멸하게 만드는 복수가 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수는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라고 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었다. 미쳤다고 손가락질해도 상관없었다. 사랑이라는 환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생을 마감하고 싶을 뿐이었다.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p. 211

특별하고 새로운 사랑이 아닐 수 있다. 낭만과도 거리가 멀다. 다만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가만히 고개를 돌려보기를 바란다. 그곳에 아무런 흔적이 남아 있지 않더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이 멈추고 심장이 뛰었던 자리. 그곳에 누군가가 머물렀던 기억. 이제는 잃어버렸다고 혹은 오래전에 잊었다고 생각한 시간을 잠시나마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아주 사적인 고백과 거짓말을 들려준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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