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그레이엄은 기업의 이익 증가나 손실에 대한 추정치는 시장이 짐작하는 방향성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경기가 초호황일 때 특정 기업의 실적이 50% 악화될 가능성은 기업 내부의 문제일 뿐 대개의 기업은 실적이 증가한다. 이때 악화될 수 있는 소수의 기업은 기업평가를 통해 걸러내면 그만이다. 다만 이때 이 기업이 얼마나 좋아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주관의 영역이고 여기서 가격의 거품이 발생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매겨진 주가수익배율이 6배라면 돌발사건이나 급격한 침체로 기업 실적이 예상과 달리 움직이더라도, 그렇게 싸게 매겨진 주식은 충분히 하락을 감내할 수 있다. 그러나 15배로 값이 매겨진 주식은 그야말로 견딜 수 없는 수준의 하락을 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이에 대해 모멘텀 투자자들은 이렇게 반박한다.
“결국 시장 가격이 현재 가격이다. 시장이 가격을 그렇게 매겼다면 그것이 적정가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3년 후의 순이익 증가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해도 예리한 통찰이나 직관으로 향후 3년 혹은 10년 후 순이익이 100배 증가할 수 있는 기업을 찾는 일이다. 그리고 시장이 그에 동조하는 강도가 클수록 주가는 비싸게 매겨질 것이며, 주가가 싸게 매겨진 기업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하지만 벤저민 그레이엄이 말하는 가치투자 논리는 바로 이 점에서 궤를 달리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투자자들이 말하는 가치투자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증권 분석에 따른 방식이 아니라 기업 실적의 미래가치에 주목한 것이다. 벤저민 그레이엄이 들으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 pp.33~34
시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다. 시간의 관점에서 단기ㆍ중기ㆍ장기 투자자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가치의 관점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견해가 충돌한다. 또한 이동평균선을 보고 매매하는 사람, 보조지표를 보고 투자하는 사람, 일목균형표가 비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경로로 판단하고 매매한다. 이 모든 판단들은 기준이 다르고 근거가 다르다. 때문에 특정 기준에서의 판단이 시장에서 가장 우월한 기준이 될 수 없는 구조다.
시장은 절대강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100미터 단거리 선수, 200미터 단거리 선수, 마라톤 선수, 멀리뛰기 선수가 특정 구간에서 달리는 속도는 그의 능력이 아닌 판단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초기 10미터 구간에서는 100미터 선수 중의 하위그룹도 1등일 수 있고, 이봉주 선수도 꼴등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느 한 구간의 달리는 양상을 두고 어떤 선수의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의 구간에서 승패를 가르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어떤 구간에서는 100미터 선수가 가장 우수해 보이고, 어떤 구간에서는 마라톤 선수가 가장 우수해 보인다. 만일 보폭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멀리뛰기 선수가 가장 우월할 것이다. 투자 역시 그렇다. 세상에 가장 훌륭한 투자법이란 없다. 그렇다면 워렌 버핏은 어떤 투자법으로 그렇게 엄청난 부를 축적했을까? --- p.58
어떤 차트 분석가는 간혹 주가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매수해야 합니다.”라는 말을 한다. 심지어 차트를 180도 뒤집어놓고 설명하기도 한다. “뒤집어놓으면 주가가 어떻게 됩니까? 이런 주가가 되겠죠. 이 종목이 상승했다고 가정합시다. 이제부터는 조정받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그러면 떨어지는 주가가 여기서는 반등하는 것이 맞죠.” 자칭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 심지어는 차트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사람마저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과연 맞는 말일까?
미안한 말이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시장에서 몸으로 부딪쳐 다치고 나면 생각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위로 밀어올리는 것과 아래로 굴려내리는 것은 다르다. 주가가 오르는 것은 바위를 산 위로 밀어올리듯 더디고, 떨어지는 것은 히말라야 눈사태처럼 한순간이다. 주가의 바닥은 음봉이 점점 길어져 마지막에 길게 푹 떨어질 때다. 반면 상승하는 종목은 양봉이 점점 작아지며 그 폭이 아주 좁아지면 그때가 천장이다. 주가 형성 과정에서 패턴이나 추세 못지않게 심리적 영향도 굉장히 크지만, 심리적 영향은 체계화·계량화할 수 없다. 따라서 봉과 봉 사이 거래량, 각종 차트의 지표 속에서 특정한 요소들을 스스로 읽어내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한 것이다. 결국 기술적 분석의 맹점은 지나고 나면 무수한 변형과 눈속임으로 자신을 괴롭힌다는 점이다. --- pp.70~71
기술적 분석가들이 약세장에서 지는 이유를 야구에 빗대어 생각해보자. 공이 직구로 들어오고 있었는데 바로 눈앞에서 공이 꺾였다. 또는 야구공이 커브볼로 보였는데 눈앞에서 포크볼로 바뀌었다. 이런 식으로 항상 방망이를 휘두르려 하기 직전까지는 공이 눈에 보인?. 그러나 마지막에 공을 쳐올리는 것은 타자의 감각이지 그 공이 포크볼인지, 싱커볼인지, 커브볼인지를 보는 눈이 아니라는 뜻이다. 공이 어떤 공인지 볼 수 있는 기본적인 눈만 기르면 무위자재하게 공을 쳐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대박주를 찾는 것이 기술적 분석일까? 혹은 급등주를 찾는 것이 기술적 분석일까? 이는 홈런 치는 법을 찾는 것과 같다. 공이 날아왔을 때 홈런을 치기 위해 무조건 방망이를 휘두르면 스트라이크나 삼진아웃으로 죽는다. 때문에 야구에서 3할 타자 정도면 훌륭한 것이다. 그저 갖다 맞히는 기분으로 공을 치면 허리가 유연해지고, 몸이 무위자재해졌을 때 공은 펜스를 넘어가게 되어 있다. 처음부터 펜스를 넘기기 위해서 공을 치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버리고 공에 갖다 맞히는 연습을 하며 자연스럽게 방망이를 휘두르는 사람만이 홈런을 칠 수 있다. --- pp.76~77
왜 우리는 우리나라 자체의 거시지표보다 미국의 지표에 더 큰 영향을 받을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짐작하다시피 미국 투자자들이 우리시장을 일정 부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은 여전히 내수보다는 수출 비중이 크며, 역시 우리나라의 대표기업들은 수출 주도형이어서 미국의 경기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중국으로 넘어가면 더욱 심각해진다. 미국 경기가 기침을 하면 우리는 감기에 걸리는 반면, 중국은 독감에 걸리는데, 이런 현상은 시차를 두고 발생하게 된다. 미국 경기가 둔화되면 몇 개월 후 한국에 그 영향이 나타나고 미국과 한국의 경기가 둔화되면 몇 개월 후 중국에 그 영향이 나타난다. 주식시장이 하락기에 접어들던 2007년부터 미국과 한국의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일부 전문가들이 미국의 침체를 중국이 보상할 것이라는 황당한 논리를 내세운 것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결론을 내리면 경기 회복 역시 마찬가지 움직임을 보인다. 미국 경기가 먼저 회복하면, 시차를 두고 한국이, 다시 시차를 두고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가 반응한다. 변동성 역시 미국이 10%면, 한국이 20%, 중국은 50% 이상의 효과를 나타낸다. --- pp.115~116
투자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중 기회비용의 손실이다. 기회비용의 손실은 시장에 참여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꼭 투자해야 할 종목에 투자하지 않아서 발생한다. 가치투자에서는 시장 참여 자체에 대한 압력이 없다. 시장에 참여하지 않아야 할 경우는 모든 종목이 비싸게 거래될 때다. 상대적으로 싼 주식들이 널려 있다고 해서 참여하는 게 아니다. 절대적으로 싼 주식을 놓치는 것이 기회비용의 손실이다. 거래 손실이나 기타 손실들은 이를 바로잡음으로써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 때문에 투자의 우선순위는 “무엇을 살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사지 않을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당신이 공개된 시장 자료를 통해(증권가의 분석을 통해) 대강의 후보군들을 리스트업했다면 그 다음에 할 일은 무엇을 살 것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사지 말아야 할지를 판단하는 작업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재무제표를 통해 기업을 파악하는 이유다. --- p.136
이동평균선은 강우량과 같다. 지금까지 비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일 비올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동전 던지기를 해서 앞면이 11번 나왔다고 해서 12번째에는 뒷면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배팅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듯 이동평균선은 주가 예측이나 주식 거래의 기준선이 될 수 없다. 이 부분을 명확하게 머리에 새겨두고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이동평균선은 주식투자의 기술적 분석에서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도구”라는 말은 맞다. 이동평균선은 현재까지의 시세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하지만 그것이 이 순간 이후의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눈곱만큼도 없다. 이동평균선을 잘 이용하고 반죽하면 우리는 대응의 기준을 마련할 수 있다. 앞으로 이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술적 분석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 p. 296
나는 단순히 추세선을 긋고 보조지표를 보고 매매신호를 포착하는 식으로 기술적 분석에 접근하려는 것이 아니다. 금융시장에서 확인은 되었지만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 즉 변동성 집중화 현상을 알아보려고 한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2년 중에 불과 15일을 보유하지 않았다면 수익의 80%를 고스란히 날려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에 역발상으로 접근하려는 것이다.
혹자는 금융시장에서도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이 적용된다고 말한다. 전체 기간의 80%는 비추세 국면이고, 불과 20%의 기간 동안 상승의 80%를 이루어낸다는 것이다. 이것은 피터 린치가 주식을 장기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고, 버핏이 결국은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항상 주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 상승의 혜택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주가가 삿를 때 사고 내릴 때 파는, 혹은 그 반대로 투자하는 사람들은 주가가 상승할 때는 이익의 일부만 취하고 하락할 때는 고스란히 손실을 떠안는다. 그러면서도 긍정적 접근이 기술적 분석의 핵심이라 여긴다. 때문에 내가 말하고자 하는 기술적 분석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 기술적 분석이라기보다는 ‘변동성 분석’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 p.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