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감, 그것은 왜 그토록 변덕스러운가? 왜 그것은 그토록 맹목적으로 사실들과 맞서는가? 평생 동안 우리는 그것을 구축하려고, 그것을 확보하고 고정시키려고 애써왔으며, 그것을 값진 자산이자 행복을 위한 거부할 수 없는 요소로 알아왔다. 그때 갑자기 음험하게 소리도 없이 바닥의 뚜껑이 열리고, 우리는 그 끝 모를 곳으로 추락한다. 그리고 있었던 모든 사실들이 신기루로 변해버린다. --- p.53
“커다란 불안은 결코 없어지지 않고, 단지 무대 뒤로 사라졌다가 나중에 다시 등장하게 되는 걸까요? 그 위력이 가시지 않은 채로요. 당신에게도 그런가요? 그런데 왜 기쁨, 희망, 행운 같은 것은 다르죠? 왜 어둠이 빛보다 훨씬 더 위력이 센 걸까요? 빌어먹을, 그 이유를 나한테 설명해줄 수 있어요?” --- p.165
“나중에 내가 딸을 더 알게 되었을 때 이따금 생각했어요. 그녀는 음으로 상상 속의 성당을 짓듯이 연주했다고. 자기 삶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가 오면, 그 안에 들어가 숨 쉴 수 있도록. 특히 크레모나에서 그 생각을 했어요. 그곳 대성당이 마치 레아가 상상 속에서 지은 성당인 양 그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 나는 그렇게 가끔 내 내면의 은밀하게 닫힌 방 안에서, 모든 관습과 이성을 벗어 던진 레아의 고집을 부러워했습니다.” --- p.168
“제삼자를 위한 사랑, 갇혀 있는 고독감에서 나온 사랑이었어요. 또한 이별의 고통에 맞서는 보루였어요. 사랑, 사실상 달리 표현할 수는 없네요. 나로서는 구 년 동안이나 주저하며 간직해왔던 사랑이었습니다. 그 주저함의 그늘 속에서 감정은 서서히 퇴색해갔지만요. 마리에게 나는 무엇이었을까요? 자신과 레아를 이어주는 끈에 불과했을까요? 레아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보증해주는 존재였을까요?” --- pp.186~187
“내심 레아가 그런 내 신호들을 해석하리라 기대했지만, 그녀는 아무 반응도 없었습니다. 정작 그녀가 깨닫지 못한다면 나의 그 모든 가장이 무슨 소용이었겠습니까. 스스로를 파괴함으로써 내 고통의 주인이 되려 했던 위장들이요. 내가 속수무책인 채로 스스로 만들어낸 내 모습을 파괴하며―왜냐하면 스스로 만들어내는 정신적 고통이, 우연히 다가오는 고통보다는 견디기 쉬우므로― 살 수밖에 없다는 걸 그녀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 p.191
나는 나중에 도끼로 그 야등을 깨버렸다. 잡동사니로 가득한 지하실 상자를 뒤져 기어코 찾아낸 그것을 통나무 위에 놓고 도끼로 내리쳤다. 둔탁하게 탁 으깨지는 소리와 함께 수천 개의 파편들로 갈라졌다. 처형이었다. 어머니에 대해서가 아니었다. 나 자신의 맹목적인 신뢰에 대한 처형이었다. 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들에 걸었던 내 신뢰에 대한 처형이었다. --- p.199
사실 근본적인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는 낯선 시선을, 폭로하는 듯한 타인의 시선을 원치 않았다. 그는 그런 시선을 파괴적인 것으로, 레아와 자신을 파괴하는 것으로 느꼈을 것이다. --- p.236~237
“나중에 제정신이 들었을 때, 내 정신도 일그러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주 이상하더군요. 지독한 공포에 사로잡힐 줄 알았거든요. 미치고 말 거라는 불안감에요. 그런데 괜찮았어요. 행복감은 아니었지만 일종의 만족감 같은 게 느껴졌어요. (…) 사람은 자발적으로, 복종하면서, 또 어딘지 만족한 채, 심연이 다가오는 걸 기다리는 때도 있어요.” --- p.245
나는 눈을 감고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생각한다. 그래, 마틴. 자네는 그렇게 느끼고 행동했어야만 했네. 바로 그렇게. 그게 자네 영혼의 리듬이었으니까. 물론 세상에는 다른 바이올린도 많고, 그중 어떤 것이 레아의 손안에 들어갔더라도 고상하게 울렸을 거네. 다른 악기였다면 자네를 그런 대담무쌍하고 어처구니없는 도박판으로 인도하지 않았을 거네. 하지만 자네는 그럴 수 없었네. 꼭 과르네리 델 제수이어야만 했네. --- p.250
“마치 박쥐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우리는 서로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고, 그냥 서로 듣고 느끼기만 했어요.” 내 생각에 그가 즐긴 것은 그 절대적이고도 유령처럼 섬뜩한 낯설음이었다. 분명 기분 좋은 것을 느낄 때와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칠흑 같고 절망적인 추측이 진실과 일치한다는 것이 드러났을 때, 그 위로 달려들어 그걸 꽉 움켜쥐는 감정과 같은 것이었다..”
--- p.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