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봉사, 그는 누구인가? 복사빛 도는 복사골 도화동에 눈먼 사람이 살았다고 하니 이상하다. 도화동은 중국에서 「도화원기桃花園記」라는 글이 나온 이래 중국과 조선인의 이상향이 아니었던가. 그런 곳에 눈먼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극락과 천국에 눈먼 사람이 있다는 말만큼이나 이상한 소리다. 물론 현실적으로 보면 어디엔들 소경이 없겠는가마는, 서경敍景과 서정抒情의 하나됨을 꿈꾸던 것이 조선 문학의 특징이고 보면, 이상향과 눈먼 사람은 영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 p.19
“□여기서 젖동냥의 역사는 끝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냥젖으로 키운 자식들이 잘 자라나 어른이 되고, 그의 몸에서 다른 사람의 생명과 정신을 키우는 젖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젖이 나오지 않아 굶주리는 다른 민족에게 우리도 젖을 나눠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날은 거저 올 리 없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역사의 발자취를 살피고 또 살펴, 거기서 참되고 아름다운 것을 고르고 가려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거기에 새것을 덧붙여 그 둘이 하나가 되고, 하나가 된 그것에서 빛이 나오고 젖이 나올 때에야 비로소 그날은 우리 곁에 다가올 것입니다. 옛일을 되돌아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 p.32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도덕과 윤리가 천덕꾸러기처럼 여겨져서도 안 될 것입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한다 하더라도, 교육은 인문人文을 밝히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제 인격을 닦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도덕적이고 인문적인 길을 밝히되 훈계와 설교, 도덕 덕목의 나열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문학·자연과학·수학?예술 수업 중에 학생들 몸에 스며들고 배어들어 향기를 풍길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합니다. ……
우리가 해야 할 교육은, 삶의 둘레와 복판에 놓인 또는 있어야 할 길들을 찾을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고, 그 길들이 서로 이어져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 pp.48-49
“막힌 옛 샘을 그대로 다시 팔 수도 없습니다. 그 샘은 □그때 사람들□의 목마름을 가시게 해줄 수는 있었겠지만, □지금 사람들□의 목마름을 적셔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목마를 때마다 미국으로 유럽으로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자기 몸에 알맞은 샘을 파는데, 거기서 나온 샘물이 어떻게 우리의 목마름을 없애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도 마을 마을마다에서 우리 몸에 좋은 샘을 파야 할 것입니다. 음악 동네에서도 미술 동네에서도 철학 동네에서도 종교 동네에서도 과학 동네에서도 의학 동네에서도 교육 동네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샘 파기는 좋은 뜻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거기에 쓰일 연장과 그 연장을 다룰 재주와 힘이 있어야 하기에, 오랜 시간의 공과 품을 들여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pp.56-57
“낱말들이 모여 이룬 것 즉 한 구절을 말할 때는 어떤 낱말을 세게 하고 어떤 낱말을 약하게 할 것인지, 그 속에 들어 있는 리듬은 어떤 것인지를 몸으로 느끼는 수업이어야 합니다. 주제와 뜻 위주의 시詩 공부가 아니라, 소리 위주의 시 공부라고 여기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 p.64
“□외국어를 왜 배워야 하는가□? 여행을 가기 위해, 외국인 친구를 사귀기 위해, 장사를 하기 위해, 또는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교양인이 되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사로움에 뿌리를 둔 관심이 아니라, 공공적인 것에 닿아 있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 낯선 것 특히 낯선 사람을 만나 그를 이해하려면, 나는 □내 언어로 표현되는 나□를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심지어는 잠깐 동안이라도 나를, 즉 내 언어를 한 켠으로 밀어놓기까지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낯선 사람 즉 외국어를 배울 수 없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외국어를 잘 배우는 까닭도 여기, 즉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 pp.65-66
“간추려보면, 나를 아집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는 데에 낯선 외국어 공부가 아주 좋은 길이라는 점, 그 언어 속에 들어있는 보편정신 그리고 그 언어를 통해 다른 언어를 만나기가 쉽다는 점이 영어를 공부하는 까닭입니다. 이제, 이런 것들을 이루기 위해선 어떤 식의 영어 교육이어야 하는가를 말해야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 pp.69-70
“한 번 둘러보아라. 한 개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릇 하나. 책 하나. 사과 하나 ……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크기도 모양도 다 다르다. 그런데도 모두 하나라고 한다. 사과가 하나라면, 그것과 모양과 크기가 다른□책□은 하나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 이러니 헷갈리지 않을 수 없다. 헷갈리니 캐물을 수밖에. □하나□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 물음에 말을 내놓으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다. 그러다가 드디어 □아, 눈에 보이는 것 말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구나. 그것이 똑같기에 그릇도 하나라 하고 책도 하나라 하는구나.□ 이렇게 해서 우리는 감각을 벗어나서 □감각 너머에 있는 존재□에 다가간다는 소리입니다. 이렇게 하여 □혼의 전환□ 즉 감각적인 것만을 바라보고 있던 혼이, 정신적이고 비물질적인 것으로 눈길을 돌린다는 얘기지요.” --- p.104
“수학공부를 이야기하면서 플라톤의 철인왕哲人王을 제가 끌어들인 까닭이 이제 밝혀졌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학공부는 올바른 통치자를 기르는 한 가지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여태까지 밝힌 것을 좀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플라톤과 그의 학파에 있어서 수학공부는 다름 아닌 세속적인 욕망과 집착을 싹둑 잘라내 자비심을 가지려 하는 참선이었고, 수기안인修己安人 즉 자신을 잘 닦아 다른 사람들을 편안히 해주려는 □수양의 길□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p.106
“우선 과학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의 있음새 즉 그것들이 뿔뿔이 있지 않고, 이리저리 엮여 있을 뿐 아니라 그것들이 똑같은 원리와 법칙에 따르고 있음을 알려준다는 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주의 기적이고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입니다. 물리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 놀라움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개체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화학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같은 바탕 위에 있되, 제 색깔 제 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게 제 색깔, 제 꼴을 지닌 것들이 다른 색깔 다른 꼴을 지닌 것과 동아리를 짓되, 제 색깔을 다른 색깔과 버무려, 새로운 색과 새로운 꼴을 이루어냄을 화학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물리가 같음을 말한다면, 화학은 다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물리의 길과 화학의 길은 사람의 길에서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아니 물리와 화학의 길은 사람의 있음새와 있어야 할 꼴을 눈짓해줍니다. 물리에서 우리는 모든 존재의 평등함을 배우고, 화학에서는 각각의 것들이 제 색깔을 가진 개성적 존재임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삶의 길은 희뿌옇고 과학의 길은 뚜렷하니, 뚜렷한 과학의 길을 통해 희뿌연 삶의 길을 가늠하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이 과학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 pp.122-123
“사람은 왜 음악을 하는가? 이 말을 몇 마디 말로 끝낼 헤아림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본디 꼴이 음악적이기 때문이다’라고는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생명은, 이제나 저제나 똑같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들쭉날쭉 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뀌되 바뀌는 흐름이 있고, 흐름이기에 속속들이는 아니지만 거기에는 알아볼 만하고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냥 흘러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세참과 약함이 번갈아 자리합니다. 이리하여 흐름이 묶일 수 있고 그렇게 묶인 흐름끼리는 닮은 데가 있습니다. 생명이, 맺고 풀면서 흘러가는 자연을 닮아서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꼴은 영락없이 음악의 꼴이기도 합니다. 머물러 있지 않은 게 음악이고 생명이지만, 영 엉뚱한 게 튀어나와도 편치 않기는 삶이나 음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 바뀌되 바뀌는 흐름을 알아볼만한 게 음악이고 생명인 것입니다.” --- p.141
“합창이란, 한 사람이 한 길을 가되 그 길을 가는 다른 사람(같은 파트의 사람)과 하나의 꼴을 이루고, 다른 파트의 사람들이 다른 길을 가서 이루어낸 꼴과 만나 하나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여럿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여럿인 셈이지요.” --- p.147
“삶과 생명에 대한 이러저러한 느낌들이 쌓이고 쌓인 어느 날, ‘내가 기르고 키운 것을 먹어야만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어찌할 수 없는 삶의 비극이 소스라치게 가슴에 내리꽂힐 때, 그는 이미 어린이를 지나 어른, 그것도 참된 종교인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수많은 삶을 먹어야 제 목숨이 버텨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고, 거기에서 ‘권력의지’가 아니라 ‘삶의 죄스러움’을 깨닫는 데서 종교가 꼴을 갖추어가기 시작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 p.174
“학생들의 손놀림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뜨개질부터 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긴 줄, 인형싸개, 공주머니 그리고 모자를 뜨면서 학생들은 손과 손가락을 섬세하게 쓰는 것과 한 코 한 코를 뜰 때마다 들쭉날쭉이 아니라 똑같은 크기의 힘을 쓰는 것을 익힙니다. 힘이 많다고 막무가내로 뜨개실을 당기면 볼품없게 된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나면, 아름다움은 있는 힘껏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을 알맞게 쓰는 데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을 하건 우리 학생들은 거기에서 '알맞음'을 물을 테니, 이것이야말로 중용의 길을 몸에 닦는 것이라 해야겠지요.” --- pp.184-186
“□그가 하늘에 앞서면 하늘이 그를 거스르지 않고, 하늘에 뒤서면 그는 하늘의 때를 본받는다. 그런 사람은 하늘조차도 거스르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이 거스르겠는가? 귀신이 거스르겠는가□?(주역 건괘) 우리 옛 선비들이 생각한 교육은 이렇게 큰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경쟁력이 좋니 나쁘니 하는 오종종하고 잔챙이 같은 소리가 끼여들 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경쟁을 한다면, 하늘과 할 것이며, 땅과 할 것이며, 해와 달과 할 일이지요.” --- p.221
“이런 까닭에 학부모님들이 수업료를 어떤 방식으로 내는가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문제인 것입니다. 학생들은 보고 배워야 합니다. 돈과 능력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를. 그리고 빈부의 차이를 뛰어 넘어서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는 길이 무엇인지를.……… 그러니 학부모님들은 깊이 새겨야 합니다. 돈과 능력에 따른 차등수업료제도야말로, 돈과 능력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교육의 마당이란 것을.” --- p.194
“국제중학교를 설립할 때 생기는 가장 큰 문제점은 사교육비의 엄청난 증가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어린이들이 받게 될 크나큰 상처가 더 큰 문제입니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이갈이도 못 끝낸 나이부터 몇 년 동안 국제중학교 입학에, 그야말로 모든 것을 걸겠지만 거기에는 떨어진 사람과 붙은 사람이 여지없이 생겨납니다. 떨어진 사람의 절망감과 붙은 사람들의 오만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
--- p.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