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예언서는 폭력을 행하는 자에게는 심판이, 악으로부터 돌이키는 자에게는 회복과 긍휼의 은혜가 주어짐
을 명확히 증언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요구되는 것은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는 것이다(욘 3:8). 오늘 우리 교회에 요구되는 것도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더욱 강하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하던 악에서 떠나는 것이다.
---「들어가는 말」중에서
한 가지 더 놀라운 것은, 요나의 말을 들었음에도 사공들이 여전히 나에게 모든 책임을 물으며 위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대적인 신앙에 사로잡혀 있었다면, 그들이 할 다음 수순은 당연히 신의 진노를 불러일으킨 사람을 묶어 신에게 바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배의 사공들은 요나에게 달려들지 않으며 위협하지 않는다. 요나는 이방 니느웨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싫어하여 도망가지만, 이방인 사공들은 요나의 목숨을 결코 함부로 다루지 않는다.
---「하나님, 요나, 그리고 사공들(요나 1:1-16)」중에서
우상숭배가 문제라면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만 경배하라는 권면이 이어져야 하지만, 미가서에서 그런 권면은 찾아볼 수 없다. 도리어 미가는 줄기차고도 일관되게 권력층에 의해 자행되는 불의와 억압을 고발하며(3:1-12; 6:10-12; 7:2-4),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을 권면한다(6:8). 그러므로 우상숭배가 가져오는 실질적인 결과는 사회적 불의와 억압의 증대라고 말할 수 있다. 우상숭배로 대표되는 헛된 것을 경배하는 세상은 필연적으로 이웃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이웃에게 일어나는 재난에 무관심하고 정의를 저버린 세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우상숭배의 반대말은 그저 ‘여호와를 섬기기’가 아니라, ‘정의와 인자를 행하며 하나님과 동행하기’라고 할 수 있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과 애곡(미가 1:2-16)」중에서
나훔서는 용서와 인자하심에 방점이 찍혀 있는 출애굽기 구절을 활용하여, 반드시 임할 진노와 분노, 심판을 강력하게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출애굽기 34:6-7은 요나서(4:2)와 미가서(7:18)에도 쓰였고, 나훔서 첫머리에도 쓰였다. 그 점에서 히브리어 성경 배열에 따를 경우 나란히 놓인 이 세 책은 모두 출애굽기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 나름대로 주석하고 적용했다고 볼 수 있다. 요나는 이 구절로 인해 하나님이 니느웨에 은혜 베푸실 것을 두려워했으나, 미가는 이 구절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에 베푸실 은혜를 기대했으며, 이제 나훔은 이 구절을 조금 바꾸어 표현하면서 니느웨에 임할 심판을 기대한다. 요나가 두려워했던 니느웨의 회복은 니느웨 백성들이 왕부터 가축에 이르기까지 베옷을 두르고 그 악한 행실을 고쳤기 때문이며, 미가 역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합당한 삶으로의 돌이킴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다. 이렇게 볼 때, 나훔이 선포하는 니느웨에 임할 재앙과 심판은 그들이 결국 그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훔서 3장은 니느웨에 가득한 죄악상을 상징하는 말로 니느웨를 일러 “피의 성”이라 부른다(나 3:1).
---「복수하시는 하나님(나훔 1장)」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끝’을 향한 것, 성취를 향한 것이다. 하박국의 진술은 구약이 말하는 ‘종말’을 도드라지게 보여 준다. 종말은 단순히 세상의 끝, 이 땅 역사의 끝이 아니다. 종말은 시간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이 되는 순간, 하나님이 그 약속하신 것을 마침내 이루시어 그 땅의 역사 속에 현실이 되게 하시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종말은 역사 바깥의 어떤 시간이나 이 땅에서의 삶 너머의 어떤 시간이 아니다. 종말을 기다리는 것은 ‘내세’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종말을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며, 그 하신 말씀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거짓되지 않음을 굳게 붙잡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신약 시대에 이르러 ‘내세’와 부활을 기다리는 신앙의 정수(精髓)라고 해야 할 것이다. 죽은 다음의 세계를 믿는 것이 부활 신앙의 정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이 부활 신앙의 정수라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땅에서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이루시는 분(렘 9:24)임을 굳게 믿고, 불의와 폭력 가득한 세상에서 그 정의와 공의를 사모하고 확신하고 기대하며 실천하는 삶이야말로 ‘종말’을 기다리는 신앙이라 할 것이다.
---「악인이 의인을 삼키는 세상(하박국 1장)」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