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수업모임에서의 수업 참관은 마치 실험처럼 진행되는 구조이다. 사전에 수업을 같이 설계할 때, 우리는 학생들의 반응 및 수행 과정을 예측한다. 그리고 참관을 하며 우리의 예측이 얼마나 잘 맞아떨어졌는지를 확인하고, 예측대로 되지 않았다면 그 원인을 찾아 활동지나 발문, 진행 과정을 수정한 뒤 다시 참관하기를 반복한다. 수정이 작고 소소한 것들일지라도 이를 통해 아이들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하며 또다시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한다.
--- p. 17
범교과 수업모임에서 공개수업을 구성할 때 학습목표를 탐색하고 나면, 이를 구현하기 위해 활동지에 명시하지는 않지만 ‘개인별 활동’, ‘모둠 활동’, ‘전체 공유’로 디자인한다. 각 과정은 독립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서로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 p. 19
범교과 수업모임에서의 논의는 크게 활동지 과제 수정과 수업 운영 방법 검토로 구분된다. 수업모임 초반에는 주로 활동지 과제 수정에 집중하다가 공개수업이 가까워지는 후반에는 사전 수업을 참관하면서 과제 수정과 더불어 수업 운영 방법으로 논의가 옮겨간다.
--- p. 30
‘위에 쓴 기술들 중에서 내가 직접 경험한 기술의 발달이 내 생활에 준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을 써보자.’라는 2번 과제에 대한 참관 발언이 있었다.
전경아(과학): 자신이 직접 경험한 기술을 쓰게 하는 과제 제시가 장단점이 있어 보였어요. 생생한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아이들이 경험이 많지 않아서 못 쓰게 된다는 단점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이런 대화를 나누었어요. “네가 총 쏴봤어”, “교통사고 나봤어”, “네가 담배 피워봤어” 등과 같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면 못 쓰는 경우가 1모둠에서 보였어요. 간접 경험을 써도 된다는 제시가 있으면 어떨까요?
--- p. 54-55
다른 선생님들의 의견을 듣고 나니 그분들이 왜 판 경계가 아니라 다른 것에 관심을 보이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애초부터 판구조론을 가르치기 위해 지도를 준비했고, 지도를 찾기 전부터 줄곧 판구조론을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날 처음 지도를 본 선생님들은 지도를 통해 다른 무엇을 알아낸다기보다는 지도 자체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가 더 큰 과제라고 느꼈을 것이다. 결국 사회 과목 선생님조차 지도에 그려진 격자선이 위도와 경도를 나타내는 선인지 못 알아봤다고 하는 순간, 지도를 대대적으로 보정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털어버리고 낯설게 바라볼 수 있어야 아이들이 스스로 배워가는 수업을 준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을뿐더러 그래야 한다는 것조차 종종 잊어버린다. 다행히 아이들만큼이나 낯선 눈길로 과학을 바라보는 다른 교과 선생님들 덕분에 내 머릿속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사고의 틀을 깨고 아이들 눈높이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었다.
p--- p. 84-85
여기까지 썼을 때 모둠으로 모여서 이야기해보라고 했잖아요. 3모둠은 말이 없이 계속해서 각자 쓰다가 채원이가 성종이 것을 받아서 읽어보았어요. 그때 모둠 칠판 가져다 쓰라고 하자 성종이가 처음으로 말을 했어요.
성종: 내 걸 쓰자. 채원이 네 것은 너무 말이 안 돼.
채원: 니껀 맞춤법이 너무 심해! 정원이 네 것 좀 보자.
정원: 아직 다 안 썼어.
성종: 종찬아, 넌 내 걸로 할래
종찬: 아무거나 해.
성종이가 자기가 쓴 것을 모둠 칠판에 쓰고 싶어 해서 종찬이한테 지원 요청까지 하는 모습이 의외였어요. 그리고 채원이보다 성종이의 글이 더 생생한 것도 의외였고요. 망설이던 채원이가 큰 반발 없이 모둠 칠판에 성종이 것을 그대로 쓰기 시작하자 정원이는 세 줄 정도 써가던 자신의 활동지를 덮었어요.
--- p. 156-157
그런데 무강이네 모둠을 관찰한 선생님은 이 모둠에서 결론을 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처음에는 학생들이 그냥 10,000원이라고 썼어요. 그런 다음에 이유를 뭐라고 써야 하나 생각을 한 거지, 처음부터 이유를 생각 하고 고른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무강이가 1학년 전체 그래프를 보자, 거기는 전체에서 65%가 6,000원 이상을 받아, 갑자기 이런 거죠. 그때 소미가 그랬어요. 엄마랑 딜을 해야지 무조건 갑자기 많이 올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 그런데 서윤이는 그 말이 이상한 거예요. 수학 시간이니까 그래프 보고 답을 해야지 왜 딜을 해? 그런데 발표할 시간이 돼서 이 모둠은 5,000원이 된 거죠.”
--- p. 203
모둠 활동을 할 때도 아이들이 달랐다. 해석을 잘하던 아이가 문장 끊기를 못하자 비로소 서로 논의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문장을 해석할 때도 일방적이던 모습이 바뀌었다. 다른 모둠에서도 비슷했다. 병우가 ‘some gestures’를 보면서 “약간의 몸짓들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라고 하자, 다은이가 지호를 향해 “넌” 했고, 지호는 “어떤 몸짓들”이라며 받았다. 이런 모습을 얘기하면서 참관 교사들은 어제와 오늘이 확 달랐다고 했다.
--- p. 233
수업 교사의 발문 형식은 묻고자 하는 내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교사의 마음속에 충분한 내용과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질문이 주어지느냐에 따라 반응은 다양하게 드러나고, 경우에 따라서는 교사의 의도와는 완전히 빗나간 방향에서 답들이 나오게 된다. 교사가 하고 싶은 말을 줄이고 질문의 형식으로 던지는 것이 마치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무늬만 상호작용으로 남고 실제로는 수습이 안 되는 혼란의 지경에 도달할 수도 있다.
--- p. 272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모둠 칠판 여섯 개가 칠판에 붙었을 때에는 더욱 당황스러웠다. 우리가 의도한 ‘알갱이들이 섞일 때 서로 사이로 끼어 들어가서’라는 응답은 두 개 모둠뿐이었고, 나머지 네 개 모둠은 모두 ‘에탄올의 증발’로 설명하고 있었다.
--- p. 302
수업 혁신은 교사들의 마음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 학교의 경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2014년 늦가을, 교무실에서 혁신학교 공모에 지원하는 문제를 두고 전 교사의 투표가 있었다. 투표에 앞서 한 교사가 ‘수업 혁신 중점 혁신학교’를 제안했다. 범교과 수업모임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면서 일상의 수업을 학생들의 배움 중심 수업으로 바꾸어가자는 내용이었다. 다행히 우리 학교 교사들에게는 그런 방식의 수업 혁신이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그전 2년 동안 범교과 수업모임을 소규모로 진행하면서 1년에 5회씩 공개수업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런 경험이 교사들에게 ‘수업을 잘해보자는 것이니 힘을 실어주자!’라는 판단을 하도록 했던 것 같다.
--- p. 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