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의 남성 고객을 잘 아시죠, 경위님?”
리버스가 침실 문을 열었다. 대체 안에 뭐가 있길래? 지하 감옥처럼 꾸며놓은 방? 알몸으로 형틀에 묶여 있는 고객? 농장 안마당처럼 꾸미려고 풀어놓은 닭 몇 마리와 양? 남성 고객. 어쩌면 크로프트 부인은 그들의 사진을 자신의 침실 벽에 줄줄이 걸어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건 73년에 잡은 거예요. 사력을 다해 저항했지만 기어이 낚아 올리는 데 성공했었죠……
하지만 아니었다. 그런 것들보다 훨씬 심각했다. 아주 엄청나게. 평범해 보이는 침실에는 빨간 전구 램프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평범해 보이는 침대에는 평범해 보이는 여자가 누워 있었다. 한쪽 팔꿈치로 베개를 딛고 누운 그녀는 꼭 쥐어진 주먹에 머리를 얹어놓은 상태였다. 그녀 옆에는 옷을 다 갖춰 입은 남자가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리버스의 눈에 많이 익은 얼굴. 노스와 사우스 에스크를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이었다. ---p.24
심호흡. 머릿속 비우기. 누군가가 그레고르 잭을 함정에 빠뜨린 건 아닐까? 그렇다면 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스캔들이겠지. 보나마나. 정치 스캔들. 제1면에 실릴 만한 스캔들. 하지만 잭의 집안 분위기는 좀 이상했다. 부자연스러움. 차갑고 불안한 기운도 감돌았다. 마치 최악의 상황이 곧 닥칠 것처럼.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 그녀 또한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배경. 그는 배경을 좀 더 깊숙이 파헤쳐볼 필요가 있었다. 일을 벌이기 전에 모든 걸 확실히 파악해두어야만 했다. 리버스의 머릿속에는 별장 주소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일요일에 하일랜드 경찰서로 연락하는 것은 별로 현명한 일이 아니었다. 배경. 그는 크리스 켐프 기자를 떠올렸다. 그래, 안 될 거 없잖아. 깨어나라, 팔들아. 깨어나라, 가슴과 목과 머리야. 일요일은 늘어져서 쉬는 날이 아니었다. 어떤 이들에게 일요일은 그저 일하는 날일 뿐이었다. ---p.73
“사모님께선 지금 별장에 계신가요?”
“그렇습니다. 거기서 일주일 푹 쉬다 오라고 했습니다. 괜히 이런 상황에 휘말리게 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조만간 사그라들겠죠. 제 변호사가……”
“저희가 디어 로지에 가봤습니다, 잭 씨.”
잠시 침묵한 뒤 그가 말했다. “네?”
“사모님께선 거기 안 계시더군요. 아무도 없었습니다.”
리버스의 셔츠 깃 밑으로 땀이 흘러내렸다. 물론 난방 장치를 탓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원인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체 난 뭘 얻으려고 이러는 거지? 이렇게 막 들이대도 되는 건가?
“아……” 이번에는 기가 꺾인 톤이었다. “그렇군요.”
“잭 씨, 혹시 제게 뭐 숨기는 거 있으십니까?”
“실은, 그렇습니다.” ---p.106
집 뒤편 조명은 아주 환했다. 우거진 철쭉 옆으로 튼튼해 보이는 검은색 플라스틱 쓰레기통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쓰레기통에는 검은 쓰레기봉지가 씌워져 있었다. 홈스가 왼쪽 쓰레기통의 뚜껑을 들자 리버스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에 납작하게 눌린 콘플레이크 상자와 비스킷 포장지가 들어왔다.
“그 밑에요.” 홈스가 말했다. 리버스는 콘플레이크 상자를 살짝 들춰보았다. 그제야 밑에 감춰져 있던 작은 보물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디오카세트 두 개. 케이스는 부서져 있었고, 테이프는 길게 뽑혀져 나온 상태였다. 사진이 담긴 봉투, 금색을 띤 작은 바이브레이터 두 개, 조잡해 보이는 수갑 두 개, 그리고 옷, 보디 스타킹, 지퍼 달린 속바지. 기자들이 먼저 발견했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는데. 리버스는 생각했다.
“저게 다 뭔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잭이 당혹스러워하며 말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의원님. 저희가 참견할 문제가 아니니까요.” 리버스가 말했다. 물론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는 명확했다. 저희가 참견할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설명은 들어야겠습니다. ---p.118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커트가 말했다. “시체의 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사후에 그렇게 됐는지 생전에 그랬던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만. 아, 저번 딘 브리지 익사 사건 말인데요.”
“네.”
“최근에 성관계를 가진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질에서 정액이 검출됐어요. 곧 DNA 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자, 다 왔습니다.”
시체는 커다란 비닐 위에 누워 있었다. 정말 잘 차려입었군. 여름에 어울리는 독특한 스타일. 비록 지금은 갈가리 찢기고 진흙에 뒤덮여졌지만. 얼굴에도 진흙이 잔뜩 묻어 있고 베어지고 붓고…… 머리에선 두개골이 살짝…… 리버스는 마른침을 한 번 삼켰다. 예상 가능한 일이었나? 잘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해. 바로 그 여자야.
“이 여자를 알아요.” 그가 말했다. ---p.159
“잠시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어…….” 그녀의 얼굴이 금세 공포로 뒤덮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리버스가 아니었다. 오히려 의욕이 더 샘솟았다. 그는 그녀의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토끼장과 돼지우리 쪽으로 걸어나갔다. 그곳을 찬찬히 둘러본 후에는 닭과 흥분한 오리들을 지나 외양간으로 들어갔다. 바닥에는 밀짚이 깔려 있었고, 사방에서 소 냄새가 진동했다. 콘크리트 칸막이, 돌돌 감아놓은 호스, 그리고 물이 새는 수도꼭지. 리버스의 발밑에는 물이 흥건했다. 병든 것 같아 보이는 암소 한 마리가 눈을 천천히 끔뻑이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관심은 오로지 구석의 방수포에만 쏠려있었다.
“저 밑엔 뭐가 있습니까, 코르비 부인?”
“저건 알렉의 물건이에요!” 그녀가 빽 소리쳤다. “만지지 말아요! 그건 당신과 아무 상관이……”
하지만 그는 이미 방수포를 걷어낸 후였다. 무엇이 숨겨져 있을 거라 예상했지?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엘리자베스 잭의 검은 BMW 3시리즈였다. 이제는 리버스가 혀를 찰 차례였다. 그는 환희의 함성이 터져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아냈다.
“코르비 부인,” 그가 말했다. “제가 찾던 차가 바로 여기 숨어 있었네요.” ---p.211
“절더러 그 문제 관련해서 캠페인을 벌여달라고 했습니다.” 잭이 웅얼거렸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습니다. 왜 갑자기 이런 운동을 벌이신 겁니까, 잭 씨? 옛 친구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옛 친구라면 정확히 누굴 말씀하시는 겁니까, 잭 씨? 자기 아내의 목을 자른 친구입니다. 자, 질문은 여기까지만 받겠습니다. 오, 다음 선거에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가 통곡에 가까운 웃음을 터뜨렸다. 꼭 조울증 환자를 보는 듯했다. 웃음은 이내 울음으로 바뀌었고, 강줄기처럼 흘러내린 눈물은 그가 쥐고 있는 잔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레고르.” 리버스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는 그 이름을 몇 번 반복해 불렀다. 잭이 코를 훌쩍거리며 흐릿해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레고르.” 리버스가 말했다. “아내분을 살해하신 겁니까?”
잭이 셔츠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아니에요. 난 아내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p.266
“그가 뭘 묻던가요?”
“그녀 머리를(head) 어떻게 처리했는지 묻더군요.”
리버스가 마른침을 삼켰다. 포스터는 입술을 핥고 있었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셨죠, 맥?”
“사실대로 대답했습니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이죠.” 그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손끝을 입술에 갖다 댔다. 이내 그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수이 소식, 사실인가요?”
“어떤 소식 말씀입니까, 맥?”
“그가 이민을 갔다는 소식 말입니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소식.”
“베거가 그러던가요?”
맥밀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눈을 뜨고 리버스를 쳐다보았다. “그 친구가 그랬습니다. 수이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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