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작을 일으키든 돌연사를 일으키든, 허파를 점진적으로 손상하든 노화를 유발하든, 어쨌거나 산소가 작용하는 방법은 항상 똑같다. 모든 형태의 산소 독성은 산소에서 자유라디칼이 형성되어 일어난다. 16세기의 위대한 연금술사 파라셀수스도 말한 바 있듯이, 모든 약에는 독성이 있다. 발작은 뇌에 작용하는 자유라디칼이 대량으로 넘쳐서 생기며, 허파 손상은 허파에 작용하는 자유라디칼이 그보다 좀 덜한 수준으로 과다해져 일어난다. 그러나 자유라디칼이 단순히 독성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자유라디칼이 없으면 연소가 일어나지 않는다. 광합성이나 호흡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산소를 이용해 음식에서 에너지를 얻으려면 중간 생성물로 자유라디칼을 생산해야만 한다. --- p.29
화성이나 금성처럼 불모의 땅이 될 운명에서 지구를 구해낸 것은 생물이었다. 생물이 광합성으로 산소를 더 만들어냈기 때문에 육지와 바다를 통틀어 산소와 반응할 것이 모자라게 되었고, 결국 대기 중에 자유 산소가 축적된 것이다. 자유 산소가 존재하게 되면 물의 손실은 중단된다. 이 산소가 물에서 쪼개져 나온 수소 대부분과 반응하여 다시 물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지구에 바다가 보존된 것이다. 가이아 이론의 창시자인 제임스 러브록이 오늘날 공기 중의 산소량을 이용해 추정한 바에 따르면, 수소는 1년에 약 30만 톤씩 우주로 날아간다. 지구가 매년 약 300만 톤의 물을 잃는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양만 놓고 보면 뭔가 불안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러브록의 계산에 따르면 이런 속도로 지구의 바다가 딱 1퍼센트 손실되는 데에만도 45억 년이나 걸린다. 바로 광합성 덕분이다. --- pp.48-49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세포들은 서로 뭉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거기서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 시스템이 발달했다. 한 세포 안에 무수히 많은 미토콘드리아가 살면서 생물에게 에너지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최초의 다세포 생물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세포들이 산소의 독성을 피하기 위해 떼 지어 모인 것이 다세포 생물의 진화를 촉진했다고 할 수 있다. 확실히 다세포 생물은 모두 미토콘드리아를 가지고 있다. 미토콘드리아가 없는 단순한 진핵생물이 1000종 정도 되는데, 이 중 다세포 생물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인간은 세포들끼리 모이고 또 그 세포 안에 작은 세포들이 모인 공동체인 셈이다. --- p.82
산소를 이용하는 호흡은 에너지 대사효율이 40퍼센트나 된다. 그래서 먹이사슬이 여섯 단계를 지나야 에너지 한계치 1퍼센트에 도달한다. 육식 먹이사슬이 이득이 되고 따라서 포식자가 등장한다. 현대 생태계에서는 포식자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는 산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캄브리아기 동물들이 지구 최초의 진짜 포식자였다는 사실은 그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단 포식이라는 행동이 일어나게 되면 잡아먹는 쪽이나 잡아먹히는 쪽이나 몸이 더 커지게 된다. 포식자는 더 큰 먹이를 구하기 위해서이고, 먹이는 잡아먹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몸 크기가 커지려면 그 몸을 구조적으로 지탱할 것이 필요하다. 식물과 동물의 몸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각각 리그닌과 콜라겐인데, 이 물질들을 합성하려면 산소가 필요하다. --- pp.108-109
미국 텍사스 대학의 생리학자 로버트 더들리에 따르면, 공기 중 산소 함유량이 35퍼센트로 늘어나면 산소의 확산속도는 대략 67퍼센트 빨라진다. 이렇게 되면 산소가 더 긴 거리를 확산해갈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산소를 더 많이 포함한 공기에서는 곤충이 호흡을 덜해도 산소가 기관을 따라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되면 비행에 사용하는 근육이 산소를 많이 얻어 조직이 두꺼워지고, 곤충의 몸집은 더 커진다. 포식 같은 다른 선택압력은 실제 경향을 몸이 더 커지는 쪽으로 이끄는 반면, 산소 농도가 높아지면 몸이 커질 수 있는 한계가 생리적으로 높아지는 것이다. --- pp.141-142
방사성이 생물에게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은 산소 중독의 효과와 매우 비슷하다. 산소와 물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반응이 차례로 일어나는데, 그 메커니즘은 바로 이 반응에 따른 것이다. 이 반응에서 방사선 중독이나 산소 중독 양쪽 모두, 아주 똑같은 중간 생성물을 거친다. 이 중간 생성물들은 산소에서도 생길 수 있고 물에서도 생길 수 있다 ([그림 7]). 방사선 중독에서는 중간 생성물이 물에서 생기고 산소 중독에서는 산소에서 생긴다. 그러나 정상적인 호흡 과정에서도 똑같이 반응성이 높은 중간 생성물이 산소에서 생긴다. 따라서 호흡은 아주 느린 형태의 산소 중독이라고 볼 수 있다. 잠시 후에 이야기하겠지만, 노화와 노인병 양쪽 모두 본질적으로는 느린 산소 중독으로 인해 일어난다. --- p.159
산화성 스트레스는 감염에 대한 우리 몸의 저항을 이끈다. 이 저항은 적극적인 염증 공격으로 나타나며(침입자를 제거한다) 스트레스 반응을 동반한다 (공격에 대항해 우리 세포들을 지킨다). 이런 메커니즘은 어린 시절에 감염병에 걸리더라도 회복해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생식이 성공할 가능성을 매우 높이며, 불리한 점이 존재하지만 그 작용은 늙을 때까지 뒤로 미뤄지기 때문에 생식에는 거의 영향이 없다. 나이가 들면 미토콘드리아에서 세포로 자유라디칼이 새어나오면서 산화성 스트레스가 높아진다. 우리 몸은 이를 위협으로 감지하고 그에 따라 반응한다. 하지만 감염의 경우와는 달리 이 새로운 위협은 끝날 수가 없다. 망가진 미토콘드리아를 고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만성적인 염증반응은 끝없이 계속되고 결국 우리의 신체적·정신적 죽음의 원인이 된다. --- p.443
생물은 무수한 적응을 통해 산소에 대항하는 법을 익혔다. 행동부터 몸 크기와 생식까지 전부 적응의 결과다. 어떻게 해서 두 가지 성별이 진화하게 되었는지, 또 왜 난포 안에서 난자가 발생하는지 생각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진화적 시각의 타당성을 증명하게 된다. 복제 실험의 실패나 노인병에 대한 말라리아의 영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산소는 진화와 생명의 엔진일 뿐 아니라 노화와 노인병의 가장 중요하고도 유일한 원인이 된다. 이러한 시각은 자연에서 우리 인간의 자리를 돌아보는 데에 도움이 된다. 노화가 미리 정해진 것도 아니고 피할 수 없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비록 쉽게 노화를 미루지는 못하더라도 희망을 가질 수는 있다.
--- pp.463-4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