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토크만은 불이 꺼진 담뱃재를 파이프에서 떨어냈다. 사팔뜨기인 루케시카네 셋방에서는 오랫동안 고르고 고른 끝에 열 명쯤 되는 카자흐 중심인물이 조직되었다. 슈토크만은 그 중심이 되어 자기만 알고 있는 목적을 향해 줄기차게 이끌어 갔다. 벌레가 나무를 파먹어 들어가듯 소박한 사고방식이며 습관을 무너뜨리고, 현존하는 제도에 대한 반감과 증오를 불어넣었다. 처음에는 차가운 불신의 철벽에 부딪쳤으나 굽히지 않고 물고늘어졌다. 이리하여 불만의 씨가 뿌려졌다. 이 씨가 4년 뒤 낡고 약한 껍질을 깨뜨리고, 강하고 싱싱한 싹을 틔우게 되리라고 어느 누가 짐작이나 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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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고 맥 빠진 듯한 생활이 흘러갔다. 일에서 떠난 젊은 카자흐들은 처음에는 지겹고 답답해서 그저 여러 가지 쓸데없는 이야기로 마음을 달랬다. 중대는 별채인 커다란 기와집에 자리를 잡았고, 밤이 되면 창틀에 판자를 얹은 급조된 침상에서 잤다. 창문에 문풍지를 붙인 종이 한쪽이 떨어져 밤마다 멀리서 목동이 피리를 부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리는 갖가지 코 고는 소리 속에 몸을 누이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온몸이 허전한 애수에 여위어 감을 느꼈다. 종이가 떨리는 그 가냘픈 소리는 마치 핀셋 같은 것으로 심장의 아랫부분을 꽉 집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면 그는 당장 일어나 마구간으로 가서 밤색 말에 안장을 얹고 올라타서는, 단숨에 집으로 달려가고 싶어서 못 견딜 지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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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고 단조로운 일과는 생기를 빼앗아 갔다. 해 질 무렵 나팔수가 ‘훈련의 끝’을 알리는 나팔을 불기까지는 도보 훈련이나 승마 훈련에 쫓기고, 그다음엔 안장을 내려 말을 손질하고, 여물통에 모인 말들에게 사료를 주고, 바보 같은 근무수칙을 외고, 그리고 10시가 되어서야 점호가 끝나고 보초 배정이 끝나면 취침 전의 기도가 시작되었다. 상사가 송아지 같은 동그란 눈으로 대열을 쓱 둘러보고는, 그 굵고 탁한 목소리를 높여서 주기도문을 선창했다. 이튿날 아침이 되면 같은 일이 되풀이되었다. 이렇게 해서 날짜는 바뀌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쌍둥이처럼 꼭 같은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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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렌넨칸프 장군은 아스타호프가 죽인 독일 장교에게서 벗겨온 군복을 커다란 합판에 핀으로 고정시켜서, 그것을 받쳐 든 부관과 크루치코프를 자동차에 동승시키고는 전장으로 막 나가는 군대의 대열 앞을 지나가며 불을 토하는 듯한 격려 연설을 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떠했던가?―자신과 같은 인간인 적병들을 냉혹하게 쓰러뜨려 죽일 줄 모르는 자들이 죽음의 전쟁터에서 맞부딪치고, 서로가 동물적인 공포에 싸인 채 서로 베고, 무턱대고 서로 때려서 자신도 다치고 말도 쓰러지고, 그리고 누군가를 쏘아죽인 총소리에 놀라서 이리저리 도망치고, 정신적으로 일그러져 서로 흩어져 갔던 것이다. 그것이 위대한 훈공이라고 불려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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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강은 강바닥을 떠나면 여러 지류(支流)로 갈라지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변덕스럽고 바로잡기 어려운 걸음을 어느 쪽으로 옮길지를 미리 알기는 어렵다. 오늘은 마치 얕은 여울에서 바닥의 모래가 보일 정도로 수량이 줄어 있더라도 내일은 다시 수량이 불어서 풍부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
--- p.436
하지만 밤이 되면 산울림이 일고, 까마귀들이 광장에서 소란을 피우고, 멜레호프 집 옆을 프리스토냐네 집 돼지가 한 움큼 가량의 짚을 입에 물고 달려서 지나갔다. 판텔레이 프로코피예비치는 ‘계절이 시샘을 하여 때를 어기고 온 봄을 쫓아내고 있으니, 내일은 틀림없이 추위가 대단할 것이다’ 생각했다. 밤사이에 바람은 동풍으로 바뀌었다. 가벼운 추위는 진눈깨비로 생겼던 웅덩이에 얇은 얼음을 얼렸다. 새벽녘이 되자 모스크바 바람이 불어닥쳐서 추위가 혹심해졌다. 다시 겨울이 들어섰다. 다만 돈의 중류에서는 부서진 얼음덩어리가 크고 흰 나뭇잎같이 되어 흐르고, 또한 구릉 위에서는 녹았던 지면이 한기로 부옇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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