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사례는 “도시라는 공간 내에서 나타나는 공동체 중 도시의 특정한 지역사회가 구성원들의 생활 터전이 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공동체”라는 도시 지역공동체에 대한 우리 연구의 개념 정의와도 잘 부합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유의할 점은 이러한 언어 사용이 ‘○○ 공동체’로 불리는 곳에서는 지역사회의 모든 주민이 공동체 지향적 실천들에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외부인의 눈에 비치게 하는 일종의 착시현상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심지어 오늘날 전국적 명성을 누리는 사례에서조차 해당 지역사회의 전체 주민 중 공동체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은 일부분, 아니 상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물론 이들 지역공동체 운동이 그간에 이루어 낸 성과를 ‘극소수 주민만의 관심사’라고 폄하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운동조직체들은 처음에는 너무나 미미한 존재였던 데서 출발하여 현재는 해당 지역사회 전체와 등치되는 착시현상을 유발시키기까지 할 만큼 괄목할 정도의 성장과 발전을 이루어 낸 것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 p.58-59
하지만 운동은 분명한 지향과 가치를 가진 주체들의 목적의식적인 노력을 통한 변화 만들기다. 이 점에서 현재 도시에서 불고 있는 공동체 바람은 ‘운동’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특히 서울과 원주의 도시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은 도시공동체 운동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주고 있다. 자율과 자립, 자치의 가치를 가지고 아래로부터 상호협력 체계를 만들어 온 사례 지역들의 경험과 문제의식에 주목해야 할 때다. 대표적인 도시공동체 사례로 평가받고 있는 서울의 성미산 마을공동체 경우 민간 주체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자신들의 공동의 필요들을 해결하면서 공동육아, 생활협동조합, 대안학교, 마을카페, 마을극장, 의료생협 등 공동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조직체를 단계별로 만들어 냈다. 원주의 경우 행정의 지원 없이 민간 차원에서 지역 내 다양한 협동조직체들이 긴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사회의 공동체성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해 오고 있다. --- p.129
‘행복한 시루봉’과 ‘노인생협’은 처음 결성의 의사를 천명하고 참여자와 자본을 모을 때, 그동안 공동체 운동의 가치를 확산하고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축적되어 온 인맥과 조직 간 협력의 관행을 십분 활용했다. 이러한 사람의 관계와 상호협력의 전통을 한 활동가는 ‘협연(協緣)’이라고 표현했다. 혈연, 지연, 학연과 더불어 원주에는 협동조합운동으로 생겨난 연줄로서 ‘협연’이라는 게 존재하고 이것이 여타 지역과 다른 원주 지역만의 특징이라고 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원리를 넘어서고자 하는 사회적경제 조직들 혹은 그 조직의 구성원들이 공유하고 있는 철학과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호혜와 협력의 관성이다. 그리고 이것은 무형의 믿음이나 이념체계에 머물지 않고, 수익을 발생시키는 사회적 자본이나 구체적인 화폐 형태의 자본(출자금)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 p.180
마을만들기를 하는 동안 공동체는 그들만의 역량이나 합의로는 실현 불가능한 과제들을 만나게 되고, 공동체만의 역량으로 가능한 일들도 지속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역량이 필요하게 된다. 그럴 때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지역주민, 행정이나 전문가, 중간지원조직을 포함한 NPO와 함께 네트워크를 조직해 과제를 극복하는 경험을 가질 수 있다. 마을만들기 과정을 통해 형성되는 공동체가 주민공동체에서 벗어나 지역주민, 행정, NPO 등과 다양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며 도시 지역공동체, 협력 거버넌스로 성장하는 것이다. 게다가 공동체는 마을만들기의 결과인 마을시설과 공간, 프로그램, 일자리 등을 지역과 공유한다. 순서는 바뀔 수 있지만, 문제가 있거나 활력이 떨어진 공간 혹은 숨겨진 공간을 발굴 개선하고, 생각과 놀이, 세대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또한 공간과 프로그램을 운영 지속할 수 있는 재원을 협동조합 방식을 통한 마을기업--- p.사회적기업) 등으로 마련하여 공간과 프로그램, 일자리가 서로 융합되며, 지역공동체와 그들이 속한 지역에 활력을 만들고 있다. --- p.256
칠보산 공동체와 성미산 마을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가장 성공한 도시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성미산 마을과의 비교, 검토를 통해 칠보산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가늠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성미산 마을은 육아/교육 공동체로 시작해서 마포두레생협의 설립으로 경제적 분야로 활동영역을 넓히기 시작하고 공동체 바깥의 주민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성미산 지키기 투쟁을 통해서 내부적 역량이 결집되고 주민과 결속하며 외부로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이 성미산 마을로 이주하게 되었다. 다양한 동아리 활동과 마을기업의 운영으로 내부적으로 성원들 사이의 관계가 긴밀해지고 지속가능한 마을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마을축제, 마포FM, 마을극장, 복지 분야의 활동을 통해 주민과의 소통을 확대하고 강화하여 성미산 마을의 가치를 확산시키고 경계를 넓히고 있다. 어린이집, 방과후, 그리고 대안학교를 아우르는 육아 및 교육 단체들은 여전히 마을활동가를 충원하고 훈련시키는 ‘사관학교’의 역할을 하고 있다.
--- p.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