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후 40여 년간 고도성장에 익숙해온 우리에게 저성장은 낯선 상황이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벗어나 빠르게 진행되는 저성장을 이해하고, 저성장에 적응하기 위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저성장의 징후와 양상을 파악하고, 우리보다 먼저 저성장을 경험한 외국 대도시의 경험과 교훈을 발판으로 저성장기 새로운 도시정책의 방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 p.32
생산과 소비의 핵심이 되는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사회적·경제적 측면에서 큰 위기라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제 예측 전문가 해리 덴트(Harry S. Dent)는 생애주기상 소비의 정점에 있는 45~49세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는 2018년을 우리나라의 ‘인구 절벽’ 시점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런 측면에서 35~54세의 핵심 주택수요층이 감소하는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수도권의 핵심 주택수요층은 2010년 430만 가구(52%)에서 2035년 340만 가구(31%)로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2013년 우리나라의 평균 가구자산 중 67.8%를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주택수요의 감소는 주택시장의 큰 변화를 예고한다. --- p.39~41
저성장기에는 고도성장기 도시개발 과정에서 소홀히 했던 포용적 성장, 분권, 대도시권 차원의 협치 등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성장이 둔화되고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도시공간에서도 많은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고도성장기에는 지가가 계속해서 높아졌지만 개발수요가 감소하면서 더 이상의 가파른 지가 상승은 어려울 것이다. 이에 따라 대규모 개발사업이나 주택·부동산 시장에 대한 투자수요가 줄어들고 주택시장도 실수요자 중심으로 전환될 것이다. 특히 주택수요가 점차 다양해지면서 기존 공급자 위주의 공급 방식은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될 것이다. --- p.63
2012년 런던 올림픽은 세계도시 런던의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 정부는 올림픽 유치 신청서에 ‘스포츠 강국 수립, 런던 동부 재개발, 청년·청소년층에게 영감 주기,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청사진 제시, 살기 좋고 사업하기 편하며 창조적이고 포용력 있는 영국’이라는 ‘런던 올림픽의 5대 비전’을 제시했다. 통상적으로 올림픽 같은 국제 수준의 대회를 유치하면 시간과 경비 절감을 위해 도시 외곽의 저렴한 토지에 경기장을 조성하는 데 반해, 런던은 도심의 쇠락한 지역에 경기장 및 공원, 선수촌 등을 조성함으로써 올림픽과 도시재생을 결합하고자 했다. --- p.121
일본은 1990년대 초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버블이 붕괴된 이후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저성장은 일본의 버블 붕괴와 같이 사회경제적으로 급격한 충격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 감지되는 인구, 사회, 경제, 고용 등의 변화 양상은 버블 붕괴 이후 일본과 상당히 닮아 있다. 특히 경제성장률 둔화,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구조의 변화는 일본과 20년의 차이를 두면서 ‘동조 현상’을 보이고 있다. 사회 전반의 역동성이 떨어지면서 일본과 같이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p.130
독일은 특이하게도 두 차례 저성장을 경험한 나라이다. 첫 번째 시기는 대다수 산업국가와 마찬가지로, 저출산·고령화와 함께 제조업 쇠퇴와 대량 실업 문제가 발생했던 1973~1985년까지이다. 두 번째는 준비되지 않은 통일로 인한 동독 산업의 몰락과 대량 실업으로 침체했던 1990~2005년까지이다. 특히 통일로 인한 두 번째 저성장기는 1970년대 초반에 비해 충격의 세기가 훨씬 더 강했다. 저성장의 징후가 특정 지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심각하게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기반시설에 대한 과감한 투자, 낙후지역에 대한 통합적 지원방식 도입, 지방정부가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분권의 강화, 정책 효과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등을 추진했다. --- p.190~191
최근 서울의 주택매매가격은 안정세가 유지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주택임대차시장은 전세 거래를 중심으로 가격 불안이 지속되고 있다. 매매가격의 안정화에 따른 시세차익의 감소 혹은 매매가격의 하락 가능성 등을 우려하는 매매 수요자들은 주택 구입을 유보하면서 전세 거주를 선호하는 한편, 임대인들은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기 때문에 전세주택의 수급 불균형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 p.203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경제적 상황이 앞으로 어떠한 모습으로 변하게 될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서울의 경제성장 추세와 이미 저성장을 경험한 일본 등 외국의 동향을 살펴보건대, 저성장을 위기이자 기회로 보고, 암울한 미래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공공의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도성장기 서울의 주거지는 도시의 성장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변화했다. 저성장기에는 여기에 적합한 속도로 숨 고르기를 함으로써 고도성장기에 만들어진 여러 가지 부작용을 되짚어보고, 재도약을 위한 시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p.262~263
1960~1990년대 고도성장기에 공급된 도로·산업단지 등 공공 인프라의 노후화 문제는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서울은 고도성장기 이후 점진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기존 공공 인프라를 유지·관리하는 데 필요한 재정적 여력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복지 관련 예산이 증가하고 있는 시점에서 공공 인프라의 유지·관리 예산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며, 실제 예산 비중도 줄어들고 있다. 고도성장기에 공급된 공공 인프라의 안전문제와 시설관리의 어려움으로 인해 공공 인프라 정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 p.276
되돌아보면, 1990년대 초반은 서울의 변화에서 중요한 변곡점이었다. 1기 신도시 입주가 시작되었으며, 서울의 인구가 증가에서 감소세로 돌아섰다. 제조업 비중이 감소하기 시작했고, 강남권의 사무실 연면적이 도심권을 능가했다. 이후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저성장시대의 도래가 예견되었지만, 저성장시대에 무엇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충분히 살펴보기도 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치밀하게 준비하기도 전에, 저성장은 우리 코앞까지 성큼 다가왔다. 아니, 우리는 이미 저성장시대에 접어들었는지도 모른다. --- p.306~307
저성장은 고도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계층과 지역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성장 속도가 느려지면서 고도성장 과정에서 소외되었던 저소득층, 고령자,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지역을 되돌아보게 한다.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저성장으로 인한 소득 감소와 고용 불안은 이들에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심각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저성장은 계층 간 소득격차와 지역격차를 완화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과 공간적 복지망을 구축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 p.342
저성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자 예견된 미래이다. 한국 사회에서의 저성장은 고령화, 노후화, 양극화와 함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고도성장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저성장은 위기이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보다 먼저 저성장을 겪었던 런던, 도쿄, 베를린 등 외국 대도시들은 두 가지 차원의 대응전략을 구사했다. 하나는 지역격차를 완화하면서 시민 생활의 질 향상에 힘썼고, 다른 하나는 대도시권 차원에서 경쟁력을 강화한 것이다. 전자가 저성장에 적응하는 전략이라면, 후자는 저성장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고도성장기에 만들어진 우리의 도시정책과 제도를 저성장기에 맞게 연착륙시키면서 다양한 극복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 p.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