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기의 소재는 자연에서 나온 누에고치로 짠 명주, 양단, 공단, 숙고사, 생고사, 항라, 갑사, 그리고 안동포, 모시, 삼베, 무명 등이다. 다양한 천들을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천연의 염료를 사용하여 염색한다. 자연으로 물들인 천은 마치 규수 같다.
천 조각을 이어 만든 조각보는 점, 선, 면, 색의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조화를 통해 일상적인 생활용품에도 아름다움을 더하고 나아가 자연미, 절제미 등 다양한 예술성을 표현할 수 있다. 자연을 보고 느끼는 조형미의 온갖 영상들이 눈앞을 스쳐간다. 수보 도안 역시 나무, 꽃, 동물 등 자연에서 나온 것으로 어수룩하고 해학적이며 순박함이 깃든 정겨움이 있다. 보자기는 이렇듯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심성과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또 우리 보자기에 달려 있는 끈을 보면 얼마나 멋이 있는가? 마치 저고리 옷고름 같기도 하고 하늘을 나는 연 꼬리 같기도 하다. 겉으로 화려함을 뽐내지 않으면서도 자기만의 멋이 있고, 보는 이를 부담스럽게 하지 않는 친근함이 있으며 보기에도 좋고 쓰기에도 좋다. 이처럼 보자기 공예는 재미있고 한계가 없으며 응용력과 감수성 또한 풍부하다.
옛 여인들은 곁에 두고 쓰는 흔하디흔한 물건 하나에도 자투리 천을 모아 꾸미고, 정성스럽게 수를 놓아 생활 속에 미를 더하고 그 안에 만든 이의 마음씨 또한 곱게 담았다. 실용적 보자기로서의 가치는 옛 유물의 재현에서 그치지 않고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한 것에 있다. 생활용품은 물론, 인테리어, 패션 등 각 분야의 디자인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다. 현대 디자인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는 보자기야말로 앞으로도 경쟁력 있는 전통 공예이다.
- ‘머리말’에서
천 조각을 마르고 꿰매어 잇는 작업은 상당히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예부터 정성을 드린 대상은 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조각보는 복을 불러들이는 매개체로 여겨졌다. 그리고 보를 만들 때 조각천 하나하나를 이어가는 것에는 장수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또 모시 조각보의 성긴 천 구멍은 악귀를 막는 그물 역할을 한다고 믿어서 액땜을 위해 조각보를 벽에 걸어 장식하기도 했다. 이렇게 만든 조각보는 몇 점을 빼놓고는 장롱 깊숙이 간직했다가 시집가는 딸
에게 혼수감으로 주거나, 며느리에게 물려주었을 것이다.
조각보를 만든 이유 중에 작업 자체의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조각보를 만드는 동안 예술가가 작품을 할 때 느끼는 몰아의 희열을 경험했을 법도 하다. 이러한 순수창작의 기쁨은 당시의 폐쇄적인 사회에서 여성이 받는 억압감을 어느 정도 해방시켜주었을 것이다.
- 1장 ‘보자기 알기’ 중에서
가방은 정말 딱딱한 상자였다. 그 쇠가죽만큼이나 굳어버린 가방은 보자기의 유연성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보자기는 책만 싸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풀밭에 앉을 때에는 깔개가 되고, 햇살이 눈부실 때에는 유리창을 가리는 가리개가 되고, 지저분하게 어질러놓은 물건을 금시 덮어버리는 덮개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예기치 않던 일이 일어날 때, 이를테면 손이 부러지거나 풀숲의 독사에게 발을 물리게 되면 보자기는 금세 응급치료의 삼각대로 변하기도 한다. 보자기는 가방처럼 어깨에만 메는 것이 아니라 옆구리에 끼기도 하고, 등에 메기도 하고, 허리에 차기도 하고, 심지어는 머리에 일 수도 있다. 가방에 붙어 다니는 동사는 ‘넣다’와 ‘메다’뿐이지만 보자기에는 이렇게 ‘싸다’, ‘메다’, ‘가리다’, ‘덮다’, ‘깔다’, ‘들다’, ‘이다’, ‘차다’와 같이 가변적이고 복합적인 무수한 동사들이 따라다닌다.
가방은 자기 시스템에 맞는 것만을 수용한다. 그러나 보자기는 반대로 어떤 형태, 어떤 시스템이라도 거기에 적응하여 받아들인다. 보자기는 둥근 것도 싸고, 네모난 것도 싼다. 긴 것, 짧은 것, 딱딱한 것, 부드러운 것 등 싸는 물건에 따라서 보따리의 형태도 달라진다. 물건을 넣거나 싸는 사소한 물건이 아니라 가방과 보자기는 서양의 근대문명과 한국의 동양문명을 상징하고 비교할 수 있는 문화 기호다.
- ‘보자기 문명론(이어령)’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