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르본대학교 문학부에서 D.S.C.F. 학위를 획득했으며 서울대학교 불문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옮긴 책으로는 알베르 카뮈의 『전락』『페스트』『안과 겉』, 로멘 롤랑의 『베토벤의 생애』,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사전꾼들』, 르 클레지오의 『홍수』 외 『카르멘』『독서론』『회색 노트』『암야의 집』 등이 있다.
4월 16일 아침, 의사 베르나르 리외는 자신의 진찰실에서 나오다가 층계참 한복판에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보았다. 그는 즉각 아무 생각 없이 그 쥐를 치워버린 다음 층계를 내려왔다. 그러나 거리에 나왔을 때 ‘쥐가 나올 곳이 못 되는데……’ 하는 생각이 떠올라서, 그 길로 발길을 돌려 수위에게 그것을 알려주었다. 늙은 미셸 씨의 반응을 보고 리외는 자신의 발견이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한층 느꼈다. 죽은 쥐가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다만 괴상해 보였지만, 수위에게는 창피한 일이었던 것이다. ---p.15
이와 같이 그들은 아무 소용도 없는 기억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모든 유형수의 깊은 고통을 맛보고 있었다. 그들이 끊임없이 되새기곤 하는 그 과거조차도 후회의 쓴맛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자기들이 기다리고 있는 그 또는 그녀와 옛날에 할 수 있을 때 하지 못해서 슬퍼하는 모든 것을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덧붙여보려 했던 것이다. 또한 감금 생활의 모든 환경에서조차도 그들은 현재 자기 곁에 없는 사람들을 한데 합치려고 했는데, 그들이 처한 환경에 그들은 만족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들의 현상에 진저리가 나고 과거로 되돌아갈 전망도 없으며 미래를 박탈당한 우리는 마치 인간적인 정의와 증오 때문에 철장 속에 갇힌 사람들 같았다. ---p.83
“용기라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지금 나는 인간이 위대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인간이 위대한 감정을 가질 수 없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흥미가 없습니다.” “인간은 모든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라고 타루가 말했다. “천만에요. 인간은 오랫동안 고통을 참거나 오랫동안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란 가치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계속 말했다. “이봐요, 타루, 당신은 사랑을 위해서 죽을 수 있나요” “모르겠어요. 그러나 아마 그럴 수는 없을 것 같군요. 지금으로서는…….” “바로 그것이죠. 그런데 당신은 하나의 관념을 위해서는 죽을 수 있습니다. 눈에 빤히 보입니다. 그런데 나는 어떤 관념 때문에 죽는 것은 지긋지긋합니다. 나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이 쉬운 일임을 알고 있으며, 그것은 파괴적인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살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죽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