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가친척 아는 친구 한 명 없이 노동변호사의 꿈을 안고 인천에 온 지 21년이 되었다. 내 나이 만50이니 인천은 제2의 고향인 셈이다.
나름대로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정치를 그만 둘까도 고민해 봤었다. 그러나 많은 지지자들의 성원과 미래의 희망을 포기 할 수 없었기에 다시 구두끈을 졸라맸다. 2008년 여름경 인천시정의 문제와 인천의 현안에 대해서 공부하고 대안을 만들어서 2010년 지방선거에 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민주당 인천시당 정책위원장으로서 2008년 가을부터 현재까지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반에 정책위원회를 열었다. 김밥을 먹으면서 인천의 현안과 난맥상에 대하여 정책 토론을 해왔다. 인천시와 현 정부는 대형 건설 사업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인천은 재정파탄, 민생파탄, 구도심파탄에 직면해 있다. 폭탄 돌리기에서 언제 폭탄이 터질지 불안한 상황이다. 이제 인천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모색할 때이다. 그 일에 나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는 각오를 다져 본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선택과 도전의 줄에 서 있다. 아직도 우리에게 기회가 남아 있다면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은 나 하나만 선택을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준비와 열정을 아끼지 않은 많은 사람들, 진심으로 인천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의 선택이다. 그들이 무대에 오르는 순간, 인천은 달라질 것이다. 나는 그들을 믿고, 신뢰하며, 또한 내 자신의 열정을 믿는다. --- '책머리에' 중에서
……나의 외가는 전남 광양이다.
나는 유년기를 외할머니 밑에서 지냈다.
외가는 부농이었다. 우수나 경칩이 되면 품꾼들을 보리밭으로 동원했다.
눈이 설핏설핏 남은 황토 위로 겨우내 제멋대로 부풀어 오른 보리순을 밟기 위해서였다.
상고머리를 한 나는 밭두렁에 앉아 일렬로 줄지어 서서 보리를 밟는 어른들을 구경하였다.
혼자 놀기에 적당히 지루해진 나는,
“할무니, 보리가 아플 텐데 왜 저렇게 꽉꽉 밟아요?”
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흙 묻은 치마로 내 얼굴을 훔치며 말씀하셨다.
“사람이고 보리고 시련을 줘야 뿌리가 더 단단해 지는 거여.”
- 과잉 사랑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날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다. 어머니가 날이면 날마다 갓 지은 밥을 날라다 주시는 것은 가족에게 따뜻한 밥을 먹여야 한다는 어머니의 원칙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당신이 원칙을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것처럼 자식에게도 원칙과 책임을 늘 강조했고, 그렇지 못할 때는 주저 없이 회초리를 드셨다.
- 정 나누며 좋은 일을 하고 넉넉한 웃음 나눠 주는 문 변호사를 알게 되어 고맙고, 내가 아는 이가 문병호라는 사람이라는 게 자랑스럽다. 문 변호사를 많은 사람에게, 특히 삶에 팍팍함을 느끼는 분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 분명 따뜻한 차 한 잔으로 그네들의 힘든 속내를 안아 주고 얼어붙으려는 마음을 녹여 줄 것이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님 곁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리라는 것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 다만 합격이 아니라 불합격이라는 멍에를 쓰고 재수를 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간다는 것이 나의 예상과 달라졌을 뿐이었다.
- 선배의 절규는 단박에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정말 무지한가. 우리의 삶을 옥죄어 들어오는 현실이란 어떤 것인가. 나에게 맡겨진 책임은 무엇인가. 약간의 오기와 호기심이 작용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별다른 갈등없이 서클 가입을 결심했고, 곧 선배를 따라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 나는 책을 읽고 학습하면서 끝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는 지식인인가? 아니면,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가?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암울한 시대에 지식인에게 맡겨진 책무는 무엇인가? 나는 책의 내용과 학습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바탕으로 대답했다. 나는 지식인이 되고자 한다. 지식인은 진실과 진리를 끝없이 탐구해 나가는 사람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인식한 것을 현실의 삶 속에서 실천해 나갈 만한 강철 같은 신념을 지닌 사람이라고. 이 암울한 시대에 지식인에게 맡겨진 책무는 우리의 삶을 속박하는 제반 모순을 앞장서서 깨뜨려 나가는 것이라고.
- 그러나 나는 보다 깊이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호흡을 나누고 싶었고, 사람들이 현실에서 느끼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데 일조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결국 이러한 고민이 대학원 진학과 함께 나로 하여금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게 만들었다.
- 주변에서는 소위 잘나간다는 변호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떠돌고 있었다. 누구는 얼마나 번다더라, 하는 치부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맛살을 찌푸리곤 했다.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싶다면 변호사가 되? 말았어야 한다. 정말 돈을 벌고 싶다면 관련 학과를 나와 창업을 하든가, 대학 따윈 작파해 버리고 사업가가 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 자본주의 논리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변호사로서 돈 있는 회사 측 변호를 포기하겠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겠다는 의미임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기뻤다. 신성한 노동을 해온 탓에 굳센 팔, 굳센 어깨로 악수를 청하며 선하게 웃기부터 하는 노동자들과의 만남은 신선했고 가슴 뿌듯했다. 나는 그들 속으로 좀 더 깊게 들어가고 싶었고, 아픔을 함께하고 고난을 함께 헤쳐 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 변호사 사무실 실무자들은 중견 건설회사를 상대로 승소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었지만 나는 내심 끓어오르는 분을 가까스로 삭여내고 있었다. 건축물 부실시공의 피해자는 힘없는 서민들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들의 가장 큰 소망은 이사 다닐 걱정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었을 터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빠듯한 생활비를 쪼개고 쪼개 한푼 두푼 저축해 온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소망을 이루었다는 기쁨과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에 집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았다. 얼마나 분통 터질 노릇인가.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 피고인이 처한 상황과 그간 진행된 일을 모두 전해 들은 나는 피고인에게 약간이나마 호감을 느꼈다. 그러나 은근히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한국 검찰이 피고인과 한 약속을 정말 지킬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어서였다. 아니, 그때 나는 의구심을 품고 있지 않았다. 의구심이란 완전히 믿지 못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조금이나마 믿는 마음이 있을 때 의구심이라는 것도 찾아드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검찰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리라는 것을.
- 나는 유언 공증을 진행하는 내내 인생의 덧없음이라는 말을 묵지근한 화두처럼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어야 했다.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을 다 쓰지도 못하고 세상에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노인의 쓸쓸한 소회가 어떠할지 미루어 짐작해 보는 것은 그리 즐거운 노릇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저승 문턱처럼 느껴지는 암병동에서 빠져나온 뒤에도 노인의 일생과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 더듬어 생각해 보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등바등 재물을 쌓아 나가는 것보다는 살아생전에 그 재물을 어떻게 잘 사용할까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일 것이다.
- 그동안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사연을 간직한 사람을 수도 없이 만나 보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할 말을 잊게 만들었던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그중에서도 나의 애간장을 다 녹여 버릴 만큼 아프고 서러웠던 사연들을 소개해 보기로 하겠다.
- 고민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즈음 나는 실상 시민운동 단체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칼자루는 제도권이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바깥에서 비판하는 것보다는 안으로 들어가서 본질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총선에 참여하라는 권유는 결코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러나 역시 변화를 선택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국회로 들어가 봐야 초선에 불과한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또 총선에 참여하면 당선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결국 시민운동 단체에서 느꼈던 현실적인 한계들을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 실현시켜 보자고 마음먹었다.
- 국회의원들의 외유 역시 지방의원들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정한 목적의 방문 외교나 국제회의 참석차 나가는 해외 활동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상임위 해외 시찰의 상당수는 관광성 외유라는 사실을 내가 이미 확인한 바 있었다.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예산 낭비를 감시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예산 낭비에 앞장서는 형국이니 말이다. 사적인 자리에서 이런 문제 제기를 하면 대부분의 의원들은 의원 외교 활동을 강화, 확대해야 한다고 역설하곤 한다. 물론 나도 찬성한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 목적 하에서 외유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국회의원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