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알렉산드르 블로크와 19세기 러시아 낭만주의 시인들?기억과 암시의 시학」으로 러시아 학술원 러시아문학 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상명대학교 러시아어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 논문으로「파우스트적 세계지각과 반(反)휴머니즘」「황홀경과 낭만주의적 혁명의 구조」「인텔리겐치아와 그리스도」등이 있다.
그가 돌아섰다. 그리고 나는 그의 등에 총을 쏘았다. 나는 여러 가지 것들을 기억한다. 허공에 걸려 있다가 투명한 주름을 펼치며 흩어지던 한 줄기 연기. 펠릭스가 쓰러지던 모습. 그는 곧장 쓰러지지 않았다. 그는 먼저 삶과 관계되어 있는 움직임을 끝냈다. 그건 바로 한 바퀴 가까이 빙글 도는 것이었다. 거울 앞에서처럼 내 앞에서 재미 삼아 몸을 빙글 돌려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제 관성에 따라 이 보잘것없는 장난을 끝내며, 그는 이미 구멍이 뚫린 몸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서서히 팔을 벌렸다. 묻는 듯했다. “이게 뭐죠?”그리고 답을 얻지 못한 채, 천천히 뒤로 쓰러졌다. 그래, 이 모든 것을 나는 기억한다. ---p.190
그래요, 난 전부 의심하게 되었소. 핵심을 의심하게 된 거요. 그리고 길지 않은 여생을 온전히 단 하나, 이 의심과의 헛된 싸움에만 쏟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소. 나는 사형수의 미소를 지었소. 그리고 고통스러워 비명을 질러대는 뭉툭한 연필로 첫 페이지에 재빨리 그리고 단호하게‘절망’이라는 단어를 썼소. 이보다 나은 제목은 찾을 수 없소. ---p.226
『절망』의 주인공 게르만과 『롤리타』의 주인공 험버트는 닮았다. 하지만 둘의 닮음은 한 화가가 삶의 다른 시기에 그린 용 두 마리가 닮은 경우와 같다. 둘 다 제정신이 아닌 악당이다. 그렇지만 험버트에게는 일 년에 한 번 땅거미가 질 무렵 거닐도록 허락된 낙원으로 가는 푸른 오솔길이 있다. 반면 게르만은 보석금을 얼마를 내든 결코 잠시라도 지옥에서 풀려날 수 없을 것이다.
초콜릿 사업을 하는 독일계 망명 러시아인 게르만 카를로비치는 1920년대 중엽 베를린에서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산다. 어느 날 출장 중에 한가로이 교외를 거닐던 게르만은 풀밭에서 잠들어 있는 부랑자 펠릭스와 마주친다. 그는 자신을 완벽하게 닮은 부랑자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자신의 분신을 만난 게르만은 천재적인 범죄를 계획하고, 그는 그것을 완벽한 예술로 간주한다. 게르만은 보험금을 탈 목적으로 완전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다음 세상에 자신의 천재성을 알리기 위해 사건을 기록한다. 자신이 쓴 이야기를 다시 읽던 주인공은 자신의 기발한 계획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음을 발견하고 충격과 공포에 사로잡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