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남편이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어! 하느님 맙소사, 넌 이해 못 하는구나. 얼마나 위독한 상태였는지 그이에게 알릴 수도 없었어. 의사가 나에게 와서 그 사람 목숨이 위험하다는 거야. 남쪽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는 길만이 살길이라고. 처음에는 나도 그이를 설득하려고 했지. 다른 젊은 아내들처럼 외국 여행을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애원하고, 울기도 했어. 내가 처한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내 뜻대로 하자고 했어. 돈을 빌리는 방법에 관해서도 이야기했지. 그이는 펄쩍 뛰더군, 크리스티네. 그 사람이 말하길, 내가 경솔하다는 거야. 줏대 없이 흔들리고 변덕이 심하다나. 날 그렇게 봤던 거야. 내 줏대 없음과 변덕을 들어주지 않는 게 남편의 의무라고 하더군. 그래, 난 어떻게 해서든 남편을 구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 목숨을 살려야 하니까. 그때 어떤 계획이 떠올랐지.
린데 부인:남편은 네가 마련한 돈이 아버지로부터 얻은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어?
노라:몰랐지, 아빠는 곧바로 돌아가셨으니까. 난 남편에겐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어. 그 사람은 병들어 누워 있었으니까. 그리고 곧 설명할 필요조차 없어졌지.
린데 부인:그래서 남편한테 여태껏 털어놓지 않았어?
노라:그럼, 말도 안 되지. 그런 생각을 어떻게 하니? 그 사람은 그런 일에 아주 엄격해. 게다가 만일 자기가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걸 알면,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여길 거야. 어쩌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관계도 엉망진창이 돼버릴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우리들의 아름다운 생활도, 행복한 가정도 다 끝나 버리고 말겠지.
린데 부인:그래서 넌 절대 털어놓지 않을 작정이야?
노라:(생각에 잠긴 듯이 미소 지으며) 그래, 언젠가 내 모습이 더 이상 눈 뜨고 못 볼 지경이 되면 모를까. 웃지 마! 내 말은 지금처럼 토르발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쯤……. 내가 그 사람을 위해 춤추고 옷을 차려입고 노래해도 그 사람이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그때는 현명하게 과거를 되돌아볼 수 있겠지. 적당한 때가 될 거야. (잠시 멈추었다가) 입, 입, 입을 다물어야지!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야. 크리스티네, 내 비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 pp.28-29, 「인형의 집」 중에서
헬메르:노라……. 이건 말도 안 되는 얘기야. 게다가 은혜를 모르는 일이고! 나와 지내는 동안 행복하지 않았어?
노라:아뇨, 절대로.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지, 사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헬메르:아니라고……. 행복하지 않았다고!
노라:단지 재미있었을 뿐이죠. 당신은 언제나 나에게 잘해 줬어요. 하지만 이 집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가두어 두는 놀이터에 불과할 뿐이에요. 여기 있는 나는 당신의 아내라는 인형이죠. 아빠가 날 어린 인형으로 취급했던 것처럼요. 바꿔 말하면, 내 아이들 역시 내 인형이죠. 아이들과 놀면 재미있듯이 당신이 나에게 와서 놀아 주면 즐거웠던, 그게 우리들 결혼 생활이었어요, 토르발 (……)
노라:당신은 진실을 말했어요. 난 아이들을 키울 수 없어요. 그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요. 나 자신을 가르치는 일이죠. 당신은 도움이 안 돼요. 나 혼자 할 거예요. 그래서, 난 당신을 떠날 거예요.
헬메르:(펄쩍 뛰듯 일어서며) 지금 뭐라고 했어?
노라:나 자신과 세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 난 완전히 독립해야 해요.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당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거예요. --- 122-123, 「인형의 집」 중에서
그녀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반쯤 열린 식당 문을 노려본다. 오스왈드가 헛기침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포도주 병 코르크를 따는 소리.
만데르스:(흥분해서)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왜 그러세요, 부인?
알빙 부인:(쉰 목소리로) 유령이야! 온실에 있던 두 사람이 다시 여기 나타났어…….
만데르스:무슨 소리예요! 레지네가……. 레지네가……?
알빙 부인:그래요, 이제 갑시다.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그녀는 만데르스 목사의 팔을 꽉 쥐고 비틀거리며 식당을 향해 간다. --- p.178, 「유령」 중에서
알빙 부인:그래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바로 그런 결합으로 태어나지 않았나요? 그런 식으로 이 세상을 만든 사람이 누구죠, 목사님?
만데르스:그런 질문에 관해서는 부인과 토론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부인은 완전히 잘못 알고 계시는 것 같으니까요. 그러니까 이런 태도를 비겁하다고 말하는 거죠!
알빙 부인:내 생각을 말씀 드리죠. 잘 들어 보세요! 날 떠나지 않는 유령 같은 것이 내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난 언제나 공포에 떨어야 하고 소심해질 수밖에 없어요.
만데르스:뭐라고 하셨죠?
알빙 부인:유령 같은 거라고 했어요. 오스왈드와 레지네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난 내 앞에 유령이 나타난 것 같았어요. 그리고 목사풴, 곧이어 우리 모두가 유령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들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질뿐 아니라 모든 낡은 이론, 낡은 신념, 낡은 사물들이 우릴 따라다녀요. 살아 있는 건 아니지만, 떠나지 않고 우리 몸에 박혀 있지요. 손에 신문을 들고 읽으려고 하면, 유령들이 활자들 사이에서 꾸물거리며 다니는 것 같아요. 이 나라 전체에 유령들이 사는 것 같아요. 너무 많아서 바닷가의 모래처럼 깔려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불쌍하게도 빛을 싫어하죠. (……) 목사님이 내게 의무와 책임을 따르라고 강요하실 때, 그리고 내가 역겨운 기분으로 반항하고 있던 것을 권리와 진실이라고 찬미하실 때였어요. 바로 그 순간, 난 목사님의 설교를 되짚어 볼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단 한 가닥만 풀어 보려고 했는데, 모든 것이 풀리는 것 같더군요. 하나를 풀어내니 전체가 다 찢어져 버린 거죠. 그래서 난 알게 됐죠. 모든 것이 다 재봉틀로 박음질해 놓은 거였구나!
--- 187~189, 「유령」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