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야기, 야구 이야기, 직장인이 야구하는 이야기
--- 김병희(http://blog.yes24.com/cbang36)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직장인에 대한 소설이다. 아니지, 야구에 대한 소설이다. 그렇군, 야구 하는 직장인에 대한 소설이다. 소설 속 직장인들이 야구를 하는 데다가, 프로야구 선수 역시 어느 모로 보나, 직장인이다. 그들은 모두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서,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고, 한 달에 한 번쯤 성과에 따라 오르내리는 월급을 받는다. 그리고, 가끔 잘리기도 한다. 그들은 '프로'라고 불리며, 팀에 소속되어 있다.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냉큼 해태 타이거즈 팬클럽에 이름을 올렸던 나는 삼미 슈퍼스타즈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프로야구 원년엔 김성한 아저씨도 10승대 투수였다는 것, 해태 타이거즈 등록 선수가 20명이 채 안 됐다는 것 정도가 원년의 낭만일 따름이다. 해태 타이거즈에 대해서는 원년의 낭만보다 중요하고도 또렷한 추억들이 많다.
무등산 폭격기가 메이저리그 가겠다고 버티다가 테러 위협에 시달려 국내 프로야구에 주저앉고, 바람의 아들은 '광주 물가가 서울 물가랑 같냐?'는 한 마디에 LG 선수들보다 턱없이 부족한 금액에 계약서 도장을 찍으면서, 삼손 이호성이 '야구는 돈 가지고 하는 게 아니란 걸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며 이룬 V9의 신화가 그것이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이 행복한 기억에 생뚱맞게 끼어있다. 아무래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처구니를 한참 상실한, 슈퍼맨 판타롱에 방망이를 든 마스코트 때문인 듯 하다. 결국은 당나귀로 교체된 그 슈퍼맨 말이다. 소설 속에서 박민규는 조세희가 난쏘공에 도표 끼워넣듯, 삼미 슈퍼스타즈의 기록과 자료를 모아 보여주는 데에 열중한다.
한 시즌 승률 1할 2푼 5리, 특정 팀 상대 전패, 한 시즌 최소 승수 등 불멸의 기록으로 명명해 가며 몇 장에 걸쳐 연재하고, 후속편으로 한 시즌 400이닝 이상을 던져 30승을 거두고도 다음 시즌 태업을 일삼은 장명부, 그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희한한 투수 얘기 역시 빼놓지 않는다. 이 말은 꼭 하고 싶은데, 전쟁이 나지 않는 한, 장명부 같은 투수는 앞으로 절대 없을 것이다.
해태 타이거즈 등 뭇 야구팀들이 프로페셔널의 멍에를 지고 힘겨운 싸움을 죽자고 하고 있을 때, 삼미 슈퍼스타즈는 잘 할 때나 못 할 때나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야구를 펼쳤다는 것이 박민규의 주장이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받기 힘든 공은 받지 않는' 야구를 위해, 마치 일부러 뽑은 듯 선수 이름도 그 모양이었다는 대목을 읽은 곳이 마침 지하철이었다는 게 나는 못내 아쉽다. 감사용, 정구왕, 김바위, 금광옥 등은 과연 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입 안이 얼얼한 이름들이다.
짧았던 삼미의 역사가 끝이 나면서, 직장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체 왜 유니셰프는 구호해줄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모를' 유년기를 보낸 주인공은 다시는 삼미 슈퍼스타즈 소속으로 살지 않으리라 결심한다. 1위 팀을 골라 응원해야 하는 것처럼 학교, 회사 모두 1위여야 한다는 굳은 신념은 과연 쓰라린 패배를 맛본 사람만이 굳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삼미를 떠난 그는 행복했느냐고? 과연 그는 그의 그 생각대로 살았지만 결국 자유 계약, 혹은 웨이버 공시, 정확하게 퇴출되는 운명을 맞는다. 82년 요란하게 시작했던 프로페셔널의 세계는 음모로 밝혀진다.
어느 팀 팬인지는 모르겠지만, 회사를 그만두는 동료에게 '뭐, 누구는 한 10년 회사 다니나?'라고 뱉었지만, 그렇게 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가지 않는 난 사실 할 말이 없다. 덕아웃에서 선수들끼리 그렇듯, '파이팅'이나 한 번 외치기로 한다. 박민규가 말한 것처럼, 인생의 즐거움에 관한 한 프로페셔널 프랜차이즈란 쥐약이기 때문이다. 덩달아, 회사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한 번 써본 사직서가 들어있는 책상 서랍 맨 아래 칸이 마치 내 허벅지라도 된 것처럼 근질근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