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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기념관

찔레꽃 기념관

: 2003 제4회 이효석문학상 수상 작품집

이효석 문학상-04이동
윤대녕,김영하,성석제,김훈 저 / 천운영 등저 외 1명 | 해토 | 2003년 09월 0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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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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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3년 09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375쪽 | 564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5400043
ISBN10 899540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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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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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다닐 때 술만 들어가면 <찔레꽃>을 부르는 작자가 있었다. 지금 그녀가 부르고 있는 찔레꽃이 아닌 백난아의 <찔레꽃>이었다. 아직도 나는 그 가사를 기억하고 있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 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흘리며,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사라아아암아.
아무튼 술만 들어갔다 하면 이 노래르 부르는 작자가 있었다. 스무 살 문턱을 겨우 넘어온 자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유행했던 노래를 부르곤 하는 것이었다. 그 시절 술자리에서는 화투 치는 방향으로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제 차례가 오면 그 작자는 빈 소주병을 들고 일어나 여지없이 백난아의 <찔레꽃>을 불렀다. 그러다 술에 취하면 차례가 오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다시 <찔레꽃>을 불렀다. 주위에서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옆에서 바지춤을 잡고 끌어내려도 마침내 바지춤이 흘러내리는 것도 모른 채 그 자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처음엔 사람들이 감동하는 척했고 차츰 지겨워했고 급기야는 욕을 해대며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다고 다들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술자리에서 쫓아내지는 않았다. 그게 그래도 그 시절 인심이었다.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그 자는 고장난 카세트처럼 <찔레꽃>만 되풀이하다 이윽고 술상에 코를 박고 잠이 들곤 했다. 그리고 모두들 돌아간 새벽에 빈 술병 같은 얼굴로 깨어나 자취방으로 비틀거리며 돌아갔다. 그 암울하던 시대에 그는 시인 지망생이었다. 시대와 자신이 추구하는 감성이 들어맞지 않아 늘 몸부림치며 혼자 괴로워했다.
--- pp. 33∼34
"나는 시인이 되고 싶었단다. 하지만 시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고 그만두었다. 총칼 앞에서 시가 얼마나 무력한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시인이 되기를 포기했다. 시는 또 밀가루처럼 사람을 먹여살리지도 못하지. 그것은 그저 어두운 처마 밑에 홀로 피어 있는 들꽃 같은 거야."
찔레꽃 냄새가 이발소 안으로 분분히 날려들어오고 있었다. 마당의 창창한 햇빛 속을 가로질러 들어오는 그 냄새는 아지랑잋럼 눈에 잡힐 듯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이발사에게 물었다.
"시인이 뭔데요?"
그가 잠깐 나를 흘겨보더니 거울 위에 붙어 있는 푸슈킨의 시를 가리켰다.
"비록 이발소에 걸려 있지만 저건 아주 위대한 시란다. 아니, 그만큼 위대한 시라서 이발소에도 걸려 있는 거겠지. 시인이란 그러니까......"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음인지 나는 그의 말을 툭 가로채며 끼어들었다.
"시인이란 그러니까 위대한 이발사 같은 거로군요."
그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더니 곧 단념한 투로 웃어버렸다.
"여기 이렇게 숨어 책이나 뒤적이며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그래, 네 말대로 이발사가 곧 타락한 시인인지도 모르겠구나."
그해 가을 나는 부모를 따라 고향을 떠났다. 그러고 나서 몇 년인가 뒤에 우연히 이발사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내가 떠난 이듬해 봄, 뾰족 구두에 분홍색 양장을 차려입은 웬 여자가 이발소로 그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뒤 새벽에 둘이 함께 사라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발사가 떠난 뒤에 기와집은 뜯겨지고 그 자리에 새마을회관이 들어섰다. 그후 나도 고향에 가본 일이 없어서 아직도 그 주위에 봄이 되면 찔레꽃이 피는지 어떤지 모르겠다.
--- pp.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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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의 '찔레꽃 기념관'은 기왕의 그가 천착해 온 세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한층 깊고 따뜻해진 슬픔의 문을 열어보이며 낮고 누추해진 우리의 삶을 위무한다.

환상을 부리는 윤대녕의 능력은 탁월하다. 그가 불러내는, 쓸쓸하고 일견 황량하기까지 한 환상은 삶과 문학이란 무엇이며 우리를 견디게 하는 것, 살아가게 하는 것들은 과연 무엇인가 라는 본질적 물음과 닿아 있다. 이 소설 전편을 감싸고 있는 찔레꽃 향기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는 사원이자 근원적 향수이면서 또한 자신의 꿈을 서서히 낮춰가는 자의 수치심과 절망감, 삶의 남루함을 비춰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가 불러온 찔레꽃 향기로 인해 불화하는 삶과 문학은 비로소 형태를 갖추고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며 빛을 뿜는다. 아름다운 문학적 공간과 서술이라는, 그의 문학적 세계를 여전히 옹글게 견지하면서 한 걸음 성큼 내딛은 이 작가의 변화의 의미를 반갑게 받아들이며 수상작으로 결정한다.
--- 심사평(김병익, 이청준, 오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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