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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일본의 걷고 싶은 길 1

: 홋카이도, 혼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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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6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344쪽 | 592g | 146*210*30mm
ISBN13 9788983946126
ISBN10 8983946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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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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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어두워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발길을 돌리지 못해 여덟 시간 코스로 들어선다. 이곳부터는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를 떠올리게 하는 완만한 구릉이 펼쳐진다. 멀리 바다가 흘깃 얼굴을 드러낸다. 풍경에 취해 걸음은 절로 느려진다. 도대체 누가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바람에 몸을 내맡긴 꽃들과 꼭 한 사람이 걸어갈 만한 흙길, 엎어놓은 조선 막사발 같은 구릉 너머 가없는 바다. 팔 벌리고 바닷바람 맞으며 꽃들 사이를 걷다 보니 몸이 절로 둥실거릴 것만 같다. 고운 님 앞세우고 말없이 걷고 싶은 길, 세상의 일 따위야 까맣게 잊어버린 채 머물고만 싶은 길이다. 길의 끝까지 가고 싶지만 이미 해가 설핏하여 발길을 돌린다. 못 다 걸은 길은 다음을 위해 남겨두고.---p.21

홋카이도를 떠올릴 때면 늘 겨울의 눈 쌓인 풍경이었다. 나 역시 몇 년 전 겨울, 삿포로와 오타루를 여행했다. 겨울의 홋카이도는 듣던 대로 눈의 나라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크고 굵은 눈발이 하루 종일 흩날리곤 했다. 흔적도 없이 세상을 하얗게 덮어가는 폭설은 경이로웠다. 눈은 쌓이고 또 쌓여 홋카이도 전체를 설국으로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여름의 홋카이도와 겨울의 홋카이도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여름의 손을 들겠다. 다른 곳처럼 습기와 더위에 지친 녹음이 아니라, 싱싱하고 상쾌한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홋카이도의 여름. 몇 번이고 돌아오고 싶다. ---p.37

내가 사랑하는 도시의 조건은 이렇다.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는 곳. 산으로 둘러싸인 곳.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규모. 너무 번잡하지도 너무 적막하지도 않은 분위기. 도시로서의 편리함을 갖추었지만 미적 품격도 느껴지는 곳. 내가 머물고 있는 도시 마쓰모토는 그 모든 조건에 딱 들어맞는다.
이 도시는 동서남북이 모두 산에 둘러싸였다. 도시를 걷다가 눈을 들면 어디서나 산이 내려다보고 있다. 전선조차 보이지 않는 옛 상점가 나카마치도리가 있고, 400년 된 목조 성이 도시 중심에 근사하게 서 있다. 그리 번잡스럽거나 요란한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도시의 기능은 살아 있는 듯하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곳곳에 눈에 띈다. 강변을 따라 도시의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몸과 마음이 느긋해지는, 비싸지 않으면서 아늑한 숙소가 있어야 한다는 조건마저 충족시킨다. 나는 금세 이 도시가 좋아졌다. 도시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처음 발견한 일본의 사랑스러운 도시다.---pp.118-119

에이칸도를 나와 ‘철학의 길’로 접어든다. 주택가 한가운데 비와코 수로를 따라 이어지는 2킬로미터 남짓한 길이다. 붉게 물든 벚나무가 늘어선 양쪽으로는 예쁜 가게며 카페, 식당이 눈길을 끈다. 반딧불이들이 날아다니는 여름밤에 이 길은 또 얼마나 정겨울까. 이 길이 철학의 길로 불리게 된 이유는 교토 대학의 철학자인 니시다 기타로 교수가 이 길에서 산책을 즐겼기 때문이다. 노벨화학상을 받은 후쿠이 겐이치 교수도 이 길을 즐겨 걸었다고 한다. 자다가도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연필을 집어들고 수첩에 뭔가 휘갈겨 쓴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잠드는 메모 습관으로 유명한 겐이치 교수는 노벨상 수상 비법을 이렇게 전수했다.
“산책하면서 드는 생각을 메모하라. 사색하기 좋은, 경사가 약간 있는 길을 걸어라.”
교토 대학의 총장 역시 그 대학 출신의 자연과학자들이 다섯 명이나 노벨상을 수상한 비결을 묻자 ‘산책하기 좋은 지형’을 꼽기도 했다. 산책이라면 나 역시 일가견이 있는 사람인데, 그들과 나의 차이는 무엇일까. ---pp.178-179

오늘은 나 혼자 교토를 돌아다니는 날. 집에서 가까운 아라시야마로 향한다. 아라시야마 역에 내려 도게쓰쿄를 건넌다. 오이가와 강 위에 걸린 이 다리는 ‘달님이 건너는 다리’라는 예쁜 이름을 지녔다. 원래는 다른 이름이었는데 1272년, 나들이에 나섰던 천황이 “환한 달이 다리를 건너가는 듯하구나”라고 탄복한 후 새 이름을 얻었다나. 나무로 만든 이 다리는 단순하면서도 품격이 있어 보는 순간 내 마음을 앗아간다. 봄에는 강변의 벚꽃이 길목을 환히 밝히고,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화려한 아라시야마의 명물이다. 다리 위에 멈춰 서서 바라보는 산과 강변, 마을의 풍경이 눈과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헤이안 시대부터 귀족들이 이곳에 다투듯 별장을 짓고, 문인들이 은둔하며 글을 쓰던 까닭을 알 것 같다. 아라시야마에서 사가노로 이어지는 이 지역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벗 삼아 산책하듯 거닐기 좋은 곳이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나오는 덴류지로 들어선다. 1345년에 창건된 이 절은 임제종 덴류지 파의 사찰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 절을 유명하게 만든 건 ‘일본 정원의 교과서’로 불리는 소겐치 정원. 선승이었던 무소 소세키가 선수행의 한 방법으로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연못 주변의 푸른 소나무와 하얀 모래가 대비를 이루고, 3단 폭포 아래 놓인 돌다리가 앙증맞다. 본당으로 들어서니 가노 단유(탐유, 1602~1674)가 그린 운룡도가 시선을 끈다. 구름을 뚫고 승천할 듯 포효하는 용의 기상이 매섭다.
---p.19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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