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12월 초 휴머니스트에서 진중권 선생과 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편집자주).
▶ 안녕하세요. 선생님. 중앙대학교와 문예아카데미, 가나아트 등의 강의로 무척 바쁜 것 같습니다. 그리고 EBS의 〈미학의 눈으로 읽는 서양미술사〉도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더군요.
강의가 하나 둘 마무리 단계죠. 휴! EBS 강의도 마지막 녹화를 마쳤구요.
▶ 주변에서 궁금해 하는 건 왜 또 다른 판본으로 나왔는가 하는 점일 겁니다. 독자들은 물론이고, 서점에 계신분들, 출판사 관계자 등등이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라도 저자인 선생님의 이야기를 ‘직접’ 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선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1994년 첫판이 새길 출판사에서 나왔죠. 그때는 제가 독일 유학 중인 때라 매달 50만 원씩 인세를 받기로 했어요. 몇 년 안 되어서 그게 끊겼어요. 책은 꾸준히 팔렸다고 생각되었는데, 그게 끊어져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죠. 96년 후반부터 2001년까지 이 책의 인세를 받질 못했습니다. 그럭저럭 지냈죠. 당시 새길 출판사 사장은 80~90년대 함께 활동했던 선배였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새길 출판사가 저도 모르는 싸움을 하게 되어 두 개의 출판사로 갈라졌다는 소식을 접했죠. 저는 2001년 현실과과학 출판사와 계약을 했습니다. 선배에 대한 최소한의 관계의 차원이었죠.
현실과과학의 선배는 애초 두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매달 일정액의 인세를 지불하겠다는 약속과 새길 출판사의 무단복제 판매를 막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 두가 약속 모두 지켜지지 않았죠. 저는 나름대로 선배에 대한 예우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기본적인 약속마저도 지체되었고……. 이런 어지러운 상황을 새롭게 정리하려고 했던 것이죠.
▶ …… 이 책은 지금 읽어도 무척 재밌습니다. 이 글을 쓴 지가 10년 전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인데요. 90년대 초반 이 책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터인데요. 도대체 이 텍스트에는 어떤 비밀이 담겨 있는 겁니까?
당시는 사회과학이 밖으로 나온 때였죠. 지금 이야기하는 ‘대중서’들이 처음 선보이기 시작한 시기였을 겁니다. 구상은 92년 정도 시작했죠. 늘 아쉬운 게 하나 있었어요. 이 책이 쉽게 씌어졌다고 해서 사람들이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어요. 몇 가지 밝혀야 할 것 같아요. 이 책의 내용은 절대로 쉬운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겁니다.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이 글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연구되고 있지 않은 미학 이론들을 담아야 했기에 공부를 꽤 많이 해야 했어요. 많은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죠. 왜냐면 기존 학계에서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저 혼자 공부를 해서 얻은 내용들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을 재구성하고 되새김질 했던 것이죠.
▶ 결코 쉽지 않은 내용들이었다구요. 쉽게 읽히려 했다면 나름의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요?
패러다임을 제대로 설정했던 게 전체 내용을 쉽게 이끄는 주요한 요인이었을 겁니다. 가상과 현실의 관계라는 패러다임을 설정한 것이 맞아떨어졌죠.
▶ 어려운 이론을 쉽게 서술하는 방식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무엇입니까?
쉬워지려면 논의의 핵심을 잘 잡아야 하는 겁니다. 쉽게 말할 수 있으려면 자기가 생각하고 말하려고 하는 주제 파악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하거든요. 그게 안 되면…… 저는 가상과 현실이라는 패러다임 설정을 잘한 것 같고, 그것의 관계를 풀어내면서 미학 이야기를 써내려 간 것이죠. 전체 서양미학사를 요약하는 키워드를 제대로 찾았다는 것도 있고……. .
▶ 가상과 현실의 관계라는 게 이 책의 핵심 개념이라는 것이죠?
예! 가상과 현실의 관계 문제이죠. 이걸 가지고 가상과 예술이 함께 있던 시대, 분리되어 있던 시대, 다시 하나가 된 시대 등으로 나눈 것입니다. 그리고 내용의 다양성·풍부함이라는 게 있는 것이죠. 미학만이 아니라 인접한 예술사의 성과, 심리학, 철학, 정신분석학, 정보이론, 기호학 등등의 다양한 방법론을 소개한 것이죠.
▶ 형식에 꽤 의미를 부여한 것 같은데요?
형식면에서는 3성대위법을 썼습니다. 3개의 구조가 시간적으로 진행되면서 공간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 말은 참 그럴싸하네요. 하지만 저로서는 그런 형식을 빌려서 국내 저자가 집필된 책은 읽어보질 못한 것 같아요(아마 제가 독서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도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시길……
에셔·마그리트, 대화, 서술이라는 세 가지가 각자 따로 가면서 특정 지점에서는 조화를 이루게 한 것이죠. 서로 이해를 도와주는 것이죠. 그러니가 ‘미학’이라는 주제를 세 개로 나누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기본적인 서술, 이건 문어체이구요.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에서는 ‘대화’를 등장시켰는데요. 저는 대화를 통해서 독자가 궁금해 하는 부분을 주요 포인트로 삼았습니다.
▶ 잠깐!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이라고 했는데요. 10년 전 이 책을 처음 집필할 때에는 무엇을 근거로 잡은 겁니까? 선생님이 직접 주변에 모니터를 한 것인가요, 아니면 개인적인 판단이었나요?
아니요. 그건요. 내가 공부할 때 처음에는 몰랐다가, 시간이 지난 뒤 ‘아하!’하고 이해했던 내용들이 있었어요. 그런 내용들을 ‘대화’ 형식 속에 넣은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드러낼 수 있는 부분은 드러냈습니다.
▶ 쉽게 이해시키려 한 게 아니라, 공부하면서 스스로 체득한 앎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거였군요. 다시 말하면 친구들과의 우정 비슷한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본문 속에 있는 에셔와 마그리트 그림들은 어떤 의도로 배치되었는지 이해가 되는 듯한데요. 그러면 에셔와 마그리트 그림들의 배치도 형식 미학 이론이 있는 건가요?
에셔와 마그리트 그림은 ‘기술적 형상’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셈인데요.
▶ ‘기술적 형상’이라……?
세계에 대한 기술(그림)이 아니라 텍스트에 대한 그림으로, 일종의 상징이나 알레고리처럼 사용한 것이죠. 에셔·마그리트라는 독특한 화가를 소개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본문에서 서술되는 내용들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니까요.
▶ 지금까지도 읽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는데, 저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어떤 요소들이 주효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마도 오랜 시간 독자와 할 수 있었던 것은 글쓰기와 구성에 있죠. 글쓰기는 우연히 인터넷 시대와 딱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저의 서술 자체가 문어와 구어의 중간 단계였던 것 같고, 아울러서 책 전체가 모자이크적인 구조잖아요. 선형적인(시간의 흐름) 텍스트에다가 공간적인 그림을 배치하고, 텍스트 자체도 상당히 시각적으로 서술했거든요. 텍스트를 봐도 형상이 잡히게끔 말이죠.
▶ 선생님은 미학 오디세이를 시작으로 해서 글쓰기가 시작되었고, 독자와의 소통이 이루어졌잖아요. 기억에 남을 만한 일도 꽤 있을 듯한데, 이 책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다면?
황지우 선생이 어떤 말을 했다는데 제가 듣질 못했고. 그렇지! 무용에 사용되었다고 한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NOW무용단’이라는 현대무용을 하는 모임이 있는데요. 대본을 쓰고 안무한 손인영 씨라는 분이 《미학 오디세이》를 읽으면서 인터넷이란 코드 안에서 천 년 전의 처용을 부활시키고 싶었다고 했죠. 신라시대 처용 설화와 궁중정재인 처용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한국창작무용 ‘아바타 처용’이라는 작품이었는데, 가상과 현실 세계를 융합, 신화 속의 잡귀들과 처용을 디지털 문화의 산물인 아바타와 연결시켰다고…….
.... 지면 관계상 하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