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는 구시대 지주들의 오랜 습관대로 먹는 것을 굉장히 즐겼다. 새벽 동이 트고 (그들은 언제나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 안의 문짝들이 불협화음의 음악회를 열기 시작할 때면 부부는 벌써 식탁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를 실컷 마시고 나면 아파나시 이바노비치는 현관방으로 나가서는 손수건을 흔들면서 거위들에게 “훠이, 훠이! 계단에서 내려가, 인석들아!” 하고 소리쳤다. 마당에 나가면 으레 마름과 마주쳤다. 그럼 대개는 마름과 이야기를 시작하고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묻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지시를 내리는데 그때 그가 보여주는 농사일에 대한 지식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라 신참내기라면 이런 형안의 주인 재산 중에 뭐라도 훔친다는 것은 상상조차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마름은 능청맞기 짝이 없는 자인지라 주인의 마음에 들게 대답하는 법, 아니 어떻게 이 집 안에서 주인 행세를 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p.24
늙은 토이온은 선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까르는 가슴이 너무 답답할 때면 그의 얼굴을 보았고 그러면 마음이 가벼워졌다.
마까르의 가슴이 답답해진 이유는 갑자기 자신의 인생 전부가 세세한 것 하나까지 모두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모든 행동, 도끼질 하나, 자신이 벤 나무 하나하나, 그가 했던 모든 거짓말, 그가 마신 보드카 잔, 모두가 기억이 났다.그러자 마까르는 수치심과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늙은 토이온의 얼굴을 보자 다시 용기가 생겼다.
용기가 나자 마까르는 어쩌면 자신이 지은 죄 중에 일부는 감출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늙은 토이온은 그를 쳐다보고는 그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뭔지, 나이가 몇인지 물었다. 마까르가 대답하자 늙은 토이온은 물었다.
“살아서 무엇을 했느냐?”
“벌써 알고 있잖아. 장부에 다 기록이 돼 있을 텐데.”
마까르는 늙은 토이온에게 자신의 행실이 모두 기록된 장부가 진짜로 있는지 떠보기 위해서 짐짓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p. 95,96
“안녕하십니까.”
그를 보자 그녀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얘졌고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다시 한 번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는 손에 든 부채와 오페라글라스에 힘을 주는 것이 졸도라도 할까봐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두 사람 다 말이 없었다. 그녀는 앉아 있었고 그는 선 채로 그녀의 반응에 놀란 나머지 옆에 앉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바이올린과 플루트의 조율이 시작되었고 불현듯 지정석에 앉은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느낌에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 순간 그녀가 벌떡 일어나더니 빠른 걸음으로 출구 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고 두 사람이 말 없이 복도와 계단을 이리저리 오르내리는 동안 하나같이 무슨 배지를 단 법관, 교사, 왕실임야국 관리 제복을 입은 자들과 여인들, 옷걸이에 걸려 있는 모피 코트들이 그들의 눈앞을 스쳐갔고, 어디선가 담배꽁초 냄새가 섞인 바람이 코앞을 스쳤다. 쿵쿵대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구로프는 생각했다.
‘오 하나님! 이 사람들, 이 오케스트라는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입니까…….’---p.167
뻬찌까는 열 살이었다. 그는 담배도 안 피우고 보드카도 안 마셨고 비록 상스러운 말들을 많이 알고 있었지만 욕을 할 줄은 몰랐다. 이 모든 점에서 그는 동료인 니꼴까를 부러워했다. 손님도 없고, 어디선가 밤을 새우고 돌아온 쁘로꼬삐는 하루 종일 밀려오는 잠을 참지 못해 칸막이 뒤 침침한 구석에 나자빠져 있고 미하일라는 ‘모스크바 페이지’ 신문의 사회면을 읽으면서 절도범이나 강도범의 이름 중에 이발소 손님이 있지 않나 찾고 있을 때면, 뻬찌까와 니꼴까는 단둘이 수다를 떨었다. 둘만 있을 때 니꼴까는 언제나 다른 때보다 상냥했고 ‘사동’에게 테이퍼커트, 버즈커트, 가르마커트의 의미를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p.213, 214
우리가 잔교의 끝에 거의 도달했을 때, 갑자기 우리 기선으로 우리를 안전하게 데려다 줄 아래로 향한 계단이 있는 부분에 불길이 타올랐다. 그리고리 바실리예비치의 얼굴이 그때처럼 창백해진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되돌아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여기 어딘가에 아래로 내려갈 때 쓰는 승강대가 있어야 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우왕좌왕하며 아마도 스무 번 정도는 승강대 옆을 그냥 지나친 것 같았다. 불길이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덮개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손에 승강대가 잡혔다.
우리는 아래로 내려갔다. 사람들은 우리 바로 뒤에서 불을 지르고 큰 소리로 괴성을 질러댔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우리 기선이 정박해 있는 부두에 도착했다. 이제 곧 우리는 기선에 올라탈 ? 있을 것이다. 곧 기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세관창고만 돌면…….
창고 뒤에는 기선이 없었다. 기선은 뭍에서 멀어져 오백 미터 정도 거리에 닻을 내린 상태였다.---p. 270, 271
그녀는 혼자 살았다. 그녀는 저명한 상인 가문 출신으로 홀아비가 된 교양 있는 그의 아버지는 뜨베리에서 홀로 망중한을 즐기며 그 부류의 상인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무언가를 수집하는 낙으로 살고 있었다. 그녀는 모스크바 강이 잘 보이는 구세주 성당 맞은편 건물의 5층 모서리 아파트를 빌려서 살고 있었는데, 방은 두 개뿐이었지만 면적이 넓고 고급 인테리어로 치장돼 있었다. 첫 번째 방에는 커다란 터키식 소파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그 옆에 고급 피아노가 한 대 놓여 있었다. 그녀는 항상 느리고 몽환적인 월광 소나타의 도입부를 치다가 관두곤 했다. 피아노와 경대 위 유리 화병에는 근사한 꽃다발이 꽂혀 있었는데 매주 토요일 내가 그녀를 위해 주문한 것이었다. 토요일 저녁에 내가 그녀의 아파트에 도착하면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맨발의 똘스또이 초상화가 걸려 있는 벽 아래 소파에 길게 누워 내가 입맞춤을 할 수 있도록 천천히 손을 내밀면서 느리게 “꽃을 보내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말하곤 했다.
---p.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