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에서 자본주의 계급구조가 얼마나 고착되었고 그 모순이 얼마나 심화되고 있는지는 ‘금수저’, ‘흙수저’,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일상어가 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뿐만 아니라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전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위기가 격화되면서 기존 체제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저항도 고조되고 있다. 작년 미국 대선에서의 샌더스 돌풍은 그 단적인 예이다. 또 이번 한국의 ‘촛불혁명’ 역시 ‘박근혜 게이트’가 방아쇠를 당기긴 했어도, 그 저류에는 현재의 사회경제질서, 즉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대중의 깊은 불만이 광범위하게 가로놓여 있다. _5쪽
즉 노동시간에 따른 분배, 노동증서를 활용한 이른바 ‘등노동량 교환’은 그 자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준수되어야 할 공산주의의 영원한 원리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유제, 즉 “결함”으로서 “처음부터” 극복되어야 할 과제이다. 마르크스가 ??고타강령비판??에서 “그러나 이러한 결함은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장기간의 산고(産苦) 후 막 빠져나왔을 뿐인 공산주의 ‘초기’ 국면에서는 불가피하다”(Marx, 1989a: 87)라고 쓴 문장에서 “이러한 결함”이라고 지칭한 것은 “주어진 한 형태의 노동량이 다른 형태의 동등한 노동량과 교환”(Marx, 1989a: 86)되는 ‘등노동량 교환’의 원리, 혹은 “동등한 권리”의 원리라는 것이다(Lebowitz, 2015). _32쪽
국민계정체계와 실물생산체계의 역사적 변천 과정은 자본주의와 ‘현실’ 사회주의라는 상이한 경제체제의 작동 방식, 국내경제와 세계경제의 변화·발전, 그리고 이들 계정체계의 통계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기법의 발전이 낳은 산물이었다. 그렇지만 국민계정체계와 실물생산체계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체계들이 생산의 범위, 금융서비스의 처리, 사회적 웰빙의 측정 등 여러 쟁점과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_51~52쪽
그런데 이러한 대안사회경제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는 대안사회에서 경제계정체계에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앞서도 언급했지만 대안사회에서도 경제계정체계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라는 대안사회경제의 생산 동기에 적합하게 변형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성격은 자본주의의 국민계정체계나 ‘현실’ 사회주의의 실물생산체계와는 달리, 사회 구성원의 필요욕구를 충족시키고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립될 것이다. 따라서 대안사회경제에서 생산의 범위는 상당히 조정될 것이다. 대안사회경제에서는 생산의 동기가 사회적 필요이기 때문에, 시장 거래 중심의 국민계정체계나 계획 중심의 실물생산체계와는 달리 생산의 범위가 더 명확해지고 생산부문의 범위와 성격이 폐지·축소, 확장, 전환될 것이다. _70쪽
협동조합이 성장하여 자본주의 경제를 “넘어선다”는 사상에는 역사가 있다. 19세기 유럽의 ‘협동조합 연합(cooperative commonwealth)’ 사상은 기업을 집단적으로 조직하고 노동자와 구성원에게 이윤을 분배하는 자급자족적 네트워크를 주장했다. 부유한 영국 산업 경영자였던 로버트 오언은 그의 목화공장 노동시간을 17시간에서 10시간으로 줄이고 노동자를 위한 교육과 주거를 제공했다. 오언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 성별 노동 규범을 평등하게 실천하는 소규모 협동조합 공동체의 구성을 주장했다(Robert Owen Group).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그의 시도는 영국 협동조합 운동에 영감을 불어넣었으며 협동조합 원칙의 지침이 되었다. 실제로 오언은 계급갈등에 반대하고 노동자들의 자기해방 노력을 불신했다. _77~78쪽
이 대안적 소유는 원초적 혹은 근원적 공유사상을 의식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기 힘든 부르주아 사적 소유를 정당화하려 했던 로크, 루소, 칸트, 헤겔 등의 소유권 사상의 모순,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마찬가지로 일시적이고 예외적인 부르주아 자유주의 사적 소유권개념의 모순을 지양해 마르크스가 제시한 개념이다. 이 개념은 대안사회경제에서 대안적 이념으로 기능하며 참여계획과 민주적 공동 결정, 실제노동시간과 필요에 따른 분배, 생태적 균형과 개선 추구의 근거가 된다(하태규, 2015a). _116쪽
전차와 지하철 모노레일, 마을버스, 자전거 등을 결합한 편리한 공적 교통체계가 구축되면 자동차 구입과 유지에 그토록 많은 재원을 낭비할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도심에서는 전차와 지하철 모노레일, 마을버스, 자전거 등을 결합한 편리한 교통체계가 구축되고 대중교통이 충분히 확대되어 농촌도 무료 대중교통체계의 수혜 지역이 된다면 자동차 소비에 시간과 노력을 들일 이유가 사라진다. 자동차 소비의 대폭적인 축소는 주차난, 교통체증, 교통사고, 공해 등이 사라질 토대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런던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19세기에 마차를 이용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Molyneux, 1991)는 지적을 염두에 둔다면 자동차 소비의 대폭적인 축소는 더 많은 여가 시간의 확대로 이어질 것이다. _160쪽
대안사회에서 실현 가능한 의사 결정 원리는 비배제, 정치적 평등, 합의이다. 대안세계화운동, 리얼 유토피아, 자개연은 이 원리를 따르고 있다. 참여계획경제론의 파레콘 모델만 유일하게 합의 대신에 비례적 결정권을 핵심 의사 결정 원리로 삼고 있다. 대안사회의 유형별 의사 결정 구조를 보면 최소 단위에서는 직접민주주의로 인민 혹은 노동자가 평의회나 협동조합의 의제 설정, 의사 결정, 정책 집행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의사 결정 구조는 멕시코의 사파티스타운동, 베네수엘라의 주민자치회, 브라질의 주민참여예산제, 그리고 스위스의 게마인데 지역집회 등에서도 이미 나타나고 있다. _204쪽
주민들의 생산적 생활세계와 정치적 자치세계가 분리가 아닌 융합을 이루어 내고자 했던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베네수엘라가 시도했던 사례에서 다양한 함의들을 추출할 수 있다. 공동체적이고 사회적인 생산경제모델의 출발선은 다양한 소유 형태였다. 차베스 정부는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한 상태에서 단순히 돈벌이가 아닌 협력을 바탕으로 운영하고 잉여소득을 평등하게 분배하는 대안적 사회경제체제를 시도하였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2007년 헌법 개정안에서 다섯 가지의 소유 형태를 제시했었다. “첫 번째는 공적소유로서 국가기관의 소유를 의미한다. 두 번째는 전체로서의 민중과 미래 세대의 소유로 정의되는 사회적 소유였다. 이 소유 형태는 간접적인 사회적 소유와 직접적인 사회적 소유로 구분되었다. 간접적인 사회적 소유는 국가가 공동체를 대신해서 운영하는 소유이고, 직접적인 사회적 소유는 도시가 소유권을 행사하는 도시적 소유와 코뮌이 소유권을 행사하는 코뮌적 소유였다. 세 번째는 집단적 소유였다. 이것은 사회집단이나 개인 집단의 소유이다. 집단적 소유의 예로는 협동조합을 들 수 있다. 네 번째 소유는 혼합적 소유였다. 이것은 다른 여러 가지 형태의 소유가 혼합되어 있는 경우였다. 다섯 번째는 사적 소유이다. 사적 소유는 자연인이나 법인에 속한 소유이다. 여기에 소비재뿐만 아니라 생산재도 포함된다”(강남훈, 2009, 56~57). _237쪽
한편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도 교육이 해방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제3세계 민중을 대상으로 한 비판적 리터러시 교육이 민중들에게 정치적 각성의 계기를 마련해주었고(프레이리, 1970), 1960년대 미국과 유럽, 1980년대 한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고등교육 기관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체제 모순에 저항하는 운동이 형성된 것도 교육의 기능이 작동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사회를 개혁할 수 있을 정도의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교육은 일부 사회의 엘리트들에게만 허용된다. 애니언(Anyon, 2011: 21~37) 등의 연구에서 보듯이 사회 체제에 대한 회의를 가능하게 하는 비판적 사고, 문제 해결, 의사 결정을 강조하는 수업은 미국의 상류층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만 강조된다. 업적주의와 관련하여 볼 때, 학습자의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강조하는 진보주의적 교육 방식은 학습자의 해방에 기여하기보다는 일부 계급의 학생들이 노동 위계의 최상위권에 머물러 있도록 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Reich, 1991). _248~249쪽
출산 고령화라는 인구학적 경향과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의 지배라는 사회경제적 변화는 돌봄 경제를 어떻게 재조직, 건설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복지 국가에게 던진다. 돌봄 경제를 재조직하기 위해서는 돌봄의 이상적인 윤리적 가치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패러다임이 되어야 한다는 점뿐만 아니라(조혜정, 2006; 허라금, 2006; 마경희, 2010), 돌봄이 공적 혜택(public benefit)이 있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돌볼 권리와 돌봄을 받을 권리에 대한 추상적 정의를 넘어서서 보다 실천적인 사회정책적 요구를 제시해야 한다. 돌봄이 국가, 시장, 가족, 공동체(비영리조직) 간에 생산되고 분배되는 방식을 이해하는 ‘돌봄 다이아몬드’라는 개념은 돌봄 경제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고 재조직할 것인가를 구상하는 유용한 틀이다(Razavi,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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