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사역은 함께 성숙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이다. 사역자의 자리에 앉았다고 당연히 그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미숙한 사역자일수록 성숙한 사람인 것처럼 가면을 쓴다. 청년사역자가 된다는 것은 그들을 판단하고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가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함께 거울 앞에 서서, 서로를 더욱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가는 관계를 맺는 것, 이것이 청년사역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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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경우, 사역자들이 그런 실수를 범한다.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 않은 성도들에게 전화심방을 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을 다그치거나 심문하는 경우를 본다.
“어제 왜 안 나왔어요?” 이미 깊은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된 사이라면 이런 질문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화를 거는 경우가 모두 이 질문을 위한 것이라면 청년들도 지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사역자의 사랑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관리되고 있다는 불편한 감정을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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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동체는 주기적으로 다양한 시험거리들이 등장한다. 워낙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는 청년들이라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런 문제들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은 예배를 잘 드리는 길밖에 없다. 영, 혼, 육의 모든 문제가 예배를 통해 해결된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또 그 속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험하면 청년들은 완전히 다른 존재로 거듭난다. 청년들이 포기하고 싶은 이유가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빛으로 살아갈 수 있는 영적 군사,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청년사역자가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워가고 또 새로운 공동체를 구상하려면 제일 먼저 예배를 점검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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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는 청년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청년들의 삶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변화가 나타나기를 소망한다면 먼저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그들이 갖고 있는 사역자에 대한 선입견을 무너뜨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설교다. 청년들에게 ‘사역자’는 고루하고 답답하고 훈계하고 권위적인 인간의 표상이다. 이것을 깨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아니 거의 유일한 방법은 설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년들이 그와 같은 선입견을 갖게 된 배경에는 그동안 사역자들이 권위적인 입장에서 훈계하고, 가르치고,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부터 다른 출발을 보여 주어야 마음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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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입시중심의 교육 때문에 청소년 시기를 신앙과의 단절 가운데 보낸 요즘 청년들은 하나님과의 만남, 은혜에 대한 체험이 거의 없다. 이성적인 합리성과 실용성으로 무장하고, 보는 것에 익숙한 지금의 청년들에게 하나님의 임재와 다양한 영적 은혜를 경험하는 기도의 자리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기도의 시간을 통해 청년들은 하나님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경험하게 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변화도 경험하게 된다. 기도회는 하나님을 아는 영적 성숙의 시간이자 성령 안에 청년공동체가 하나 됨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기도회는 청년사역의 심장이자, 청년들이 참여를 통해 하나님을 깊게 만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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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자의 존재 목적은 ‘청년들이 행복하고 즐겁게 사역할 수 있도록 모든 배려를 아끼지 않는 것’을 통해 확인되고 증명된다. 이 일을 위해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청년들이 행복한 것, 청년들이 기쁘게 교회를 섬기게 하는 것이 사역자의 최우선 가치여야 한다. 그래서 사역자는 리더들이 소그룹 모임을 마치고 전체 모임을 가질 때 행복하게 웃으면 너무 좋다. 힘이 난다. 그러나 리더들이 힘들어 하는 얼굴을 보면 뼈가 저린다. 사역자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다
고 느끼는 것이다. 청년이 행복해야 사역자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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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우선순위를 매기자면 청년에게는 사역 이전에 양육이 먼저다. 대부분의 청년은 여전히 영적 성장과 성숙이 필요하다. 따라서 청년에게는 먼저 균형 잡힌 양육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양육을 통해서 청년들은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으며, 현재의 모습을 넘어서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 이르기까지 자라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청년은 분명 양육의 대상이 맞다. 그러나 동시에 청년은 사역의 주체이기도 하다. 청년은 사역할 수 있다. 아니, 청년은 사역해야 마땅하다. 청년들은 의미가 분명하고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는 일이라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세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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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를 준비하면서 많은 사역자들이 놓치는 부분이 있다. 함께 기획하고, 준비하는 스텝들을 돌보지 않는 것이다. 수련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애쓰다가 가까이에서 땀 흘리는 스텝들을 힘들게 했다면 거의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가까이에 있는 이들이 가장 중요한 ‘평가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기뻐하고 만족스럽다면 거의 모든 것을 얻은 것이다. 그들과 또 다른 사역도 함께 할 자격을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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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선교 참가자들은 타민족과 세계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 하심에 참여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될 수 있다. 그저 나만 쳐다보며 살아가던 이기적인 신앙인에서 나를 넘어서는 신앙인, 세계를 바라보는 이타적인 신앙인으로의 변화가 단기선교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단기선교 참가자들에게는 가치관이 바뀌거나 진로가 수정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단기선교를 통해 비전과 시야가 넓어질 수 있다는 것 역시 매우 소중한 단기선교의 유익이다. 또한 단기선교는 진정한 신앙공동체를 경험하게 되는 최고의 시간이 된다. 매주 거룩한 공동 목적을 가지고 팀을 이뤄 선교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신앙공동체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단기선교 참가자들 가운데에는 단기선교가 끝난 이후 공동체에 필요한 좋은 헌신자로 세워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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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동체를 어떻게 하면 부흥시킬 수 있는가”라는 매우 원론적인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은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셨듯이, “청년들을 사랑하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물론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적인 문제가 남아있지만,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들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청년 부흥의 지름길이다. 다시 말해, 그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의 희로애락에 깊이 참여하는 것이다. 인간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청년공동체의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반대로 청년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청년들의 문화와 그들의 삶과 영적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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