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사적으로 인간의 증상과 동물의 증상을 나란히 놓고 보았다. 감정의 촉발…스트레스 호르몬 분출…심장 근육의 기능 저하…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상황. 나도 모르게 ‘아하!’ 소리가 튀어나왔다. 사람에게 나타나는 다코쓰보 심근증과 동물에게 나타나는 포획근병증 심장병은 거의 확실하게 관련이 있었다.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증상이라 할 만했다. 그런데 곧 이어서 더욱 깊은 깨달음이 왔다. 핵심은 두 질환의 공통점이 아니었다. 둘 사이에 놓인 심연이었다. 거의 40년 전부터(더 오래전부터일 수도 있다) 수의사들은 이런 일이 동물에게 생길 수 있다는 것, 즉 극심한 두려움을 느낄 때 몸의 근육, 특히 심장 근육이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인간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2000년대 초에 와서야 이런 현상을 발견하고는 그걸 자랑스럽게 알려대고, 특이한 외국어 이름을(다코쓰보) 즐겨 언급하면서, 수의학과 학생이면 누구나 1학년 때 배우는 걸 가지고 ‘새로운 발견’이라며 학문적 경력의 디딤돌로 삼았다. 동물을 치료하는 의사들은 인간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감조차 잡지 못했던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다면…수의사들은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무엇을 알고 있을까? ‘인간의’ 질병 중 또 어떤 것들이 동물에게서도 발견되었을까? (15쪽)
암은 생태계와 동물계 어디에서든 발생한다. 에드워드 케네디의 아들 에드워드 주니어가 1970년대 초에 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 원인이었던 골육종은 늑대, 회색곰, 낙타, 북극곰의 뼈도 공격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공 동 창업자인 폴 앨런은 면역계에 생기는 암인 호지킨림프종과 싸워 이겨냈다. 하지만 같은 병에 걸린 아이슬란드의 범고래는 몇 달 동안 열과 구토와 체중 감소에 시달리다 안타깝게도 끝내 굴복하고 말았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생명을 앗아간 신경내분비종양은 사람에게선 드물게 나타나지만 집에서 기르는 페럿에게는 꽤 흔하며 독일셰퍼드와 코커스패니얼, 아이리시세터를 비롯한 여러 품종의 개에서도 발견된다. 전 세계의 야생 바다거북들은 헤르페스바이러스가 유발한다고 추정되는 암성 종양으로 인해 대량으로 죽어간다. 북아메리카의 바다사자에서 남아메리카의 돌고래, 난바다의 향유고래에 이르기까지 여러 해양 포유류 사이에선 생식기의 암들이 만연하고 있다. (65~66쪽)
동물들 주위에 얼마간이라도 있어보면, 그들의 성이 여러 형태를 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떤 종은 평생을 철저히 일부일처로 산다. 반면 어떤 종은 난교가 아주 심해서 성병까지 퍼뜨린다. 삶의 어느 시기에는 이성애적 행동을 보이다가 다른 시기에 이르면 동성애로 전환하는 종도 있다. 강간을 하는 동물이 있고, 상대를 속여 교미하는 동물이 있으며, 자신의 새끼를 겁탈하는 동물도 있다. 전희처럼 보이는 행동을 오래 하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 짝에게 구강성교인 펠라티오를 해주는 동물도 있고, 짝짓기에 앞서 어떤 형태의 동의부터 구하는 동물도 있다. 동물의 성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생태와 행동을 과학적으로 면밀히 관찰하면 인간의 성의 진화적 배경을 밝힐 수 있다. 동물의 발기와 짝짓기, 사정, 나아가 오르가슴에 대한 주비퀴티적인 조사를 통해 인간 성기능 장애의 치료를 발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고, 성적 쾌감을 높이는 방법까지 알아내게 될지도 모른다. (95쪽)
문어와 종마는 우리가 ‘커터(cutter)’라고 부르는 자해 환자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자해를 한다. 야생의 침팬지는 우울증을 겪으며, 때로 그 때문에 죽기도 한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강박장애 환자가 보이는 강박 증상은 수의사들이 동물 환자에게서 발견하는 ‘상동증(常同症, stereotypy, 같은 행동이나 몸짓, 말 등을 무의미하게 장시간 반복하는 증상)’과 비슷하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나 앤젤리나 졸리(두 사람 모두 칼로 자해를 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다)는 강박적으로 자신을 무는 말을 치료하는 말 전문가와 그들의 충동에 관해 의논했다면 위안을 찾을 수 있었을 법하다. (24쪽)
사람과 동물이 자해를 하는 이유의 하나는 생화학적인 것일 수 있다. 즉, 그들은 신경전달물질을 바탕으로 한 피드백 고리에 갇혀 있는데, 이 고리에서는 그들이 통증을 일으키는 뭔가를 하고 나면 그들 몸이 평안함과 좋은 기분으로 보상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들의 심장은 흥분으로 마구 뛰다가 급격히 느려지면서 이런 기분을 더욱 강화하는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쾌락과 고통, 그루밍(몸단장)과 신체 손상─가 몸에서 유사한 결과를 빚어낸다는 것이다. 너무나 비슷해서 어떤 사람들의 몸은 이것들을 혼동하는 듯하다. 뽑기, 쑤시기, 씹기 등 때로는 우리 자신을 해치는 행동이, 우리를 진정시키고 평화를 지켜주고 건강을 유지케 하고 근심을 잠재우는 그루밍과 동일한 스펙트럼에 속해 있기 때문에 유전자군에 남게 됐다. (…) 수의학이 인간의학에서도 탐구할 만한 새로운 통찰을, 혹은 적어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전통적으로 정신과 의사들은 성격장애나 과거의 트라우마 같은 것을 통해 자해를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수의사 동료들은 문제에 더 직접적으로 접근한다. 환자와 얘기를 나눌 수 없는 상황에서(어쩌면 이것이 외려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는데), 그들은 가장 흔하게 자해를 촉발하는 세 가지 요인을 확인했다. 스트레스, 고립, 그리고 권태다. (269쪽)
예일대학교의 과학자들은 초원의 풀숲 위에 철망과 유리섬유로 우리를 여러 개 짓고 그 풀들을 주로 먹고 사는 야생 메뚜기를 넣었다. 몇 개의 우리에서는 메뚜기가 평화롭게 먹이를 먹을 수 있게 했다. 그들은 대개 단백질이 풍부한 풀을 먹었다. 하지만 다른 무리의 메뚜기 우리에는 아주 불편한 깜짝 선물이 넣어졌다. 포식자인 거미들이었다. 메뚜기를 보호하기 위해 거미의 입은 접착제로 붙여놓았다.
거미들의 존재는 놀랍고 의미심장한 효과를 낳았다. 생명을 위협하는 적들과 한 공간에 살아야 하는 메뚜기들은 풀 먹기를 거의 포기했다. 하지만 먹는 일을 완전히 멈추지는 않았다. 그들은 꽃을 피우는 종자식물이며 달콤하고 탄수화물이 잔뜩 든 미역취로 먹이를 바꿨다. 같은 유형의 실험을 다시 하면서 이번엔 설탕이 많이 든 쿠키와 단백질이 풍부한 과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상황을 만들었을 때도, 메뚜기가 단백질보다 설탕을 선호하는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이 실험을 고안한 생태학자 드로어 홀레나는 이런 결과가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거미 때문에 심각하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 메뚜기들은 설탕과 탄수화물을 잔뜩 먹은 것이다. (…) 섭식장애를 연구하는 정신과 의사들은 폭식증 환자들이 단백질이나 잎채소를 과다하게 섭취하는 일은 거의 없다는 데 주목한다. (…) 하지만 다른 일부 동물들도 두려울 때 당도가 높은 음식을 먹으려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캔디를 마구 먹는 사람이 자신의 그런 행동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캔디 폭식이 허리둘레와 혈당, 어금니에 얼마나 해로운지 잘 알면서도 그 충동을 누르지 못하는 까닭은 그것이 위협에 대한 유전적으로 각인된─그리고 태곳적부터 많은 동물의 생명을 구해준─반응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일 수 있다. (289쪽)
인간 사회에서도 우리는 힘이나 세력이 우세한 자들이 약자를 공격하는 것을 늘 보는데, 다만 여기에 좀 더 일상적인 이름을 붙인다. 바로 약자 괴롭히기(bullying)다. (…) 동물들을 연구하면 남을 괴롭히는 사람이 희생자를 어떻게 선택하는지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떤 동물 집단에서는 뭔가 다른 점이 있는 개체는 그만큼 더 괴롭힘에 노출될 수 있다. 포식동물과 그리 다르지 않게, 남을 괴롭히는 사람 역시 자신의 피해자가 될 만한 사람들에게 무리와 조금이라도 다른 뭔가가 없는지 끊임없이 살핀다. 북아메리카에서는 남을 괴롭히는 자들의 흔한 표적은 동성애자인─혹은 그렇다고 여겨지는─소년들이다. 사실 2010년 9월에 자살한 10대 여섯 명에게는 자살한 해와 달 말고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다. 여섯 아이 모두 동성애자로 보인다는 이유로 시달리다가 목숨을 끊었다. (364쪽)
수의사들은 [심부전을 앓는 고릴라 바베크의 심장에 심박조율기를 달아주기 위해] 살균 소독된 메스로 조심스럽게 바베크의 피부를 절개하고 나서 조율기 삽입 작업을 시작했다. 여섯 시간 동안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의사들은 상처를 닫고, 붕대를 감고, 테크니션들이 바베크에게 깨어날 준비를 시키도록 방을 나갔다. 그런데 수술을 하는 동안, 인간 병원의 수술실에서라면 수간호사가 히스테리를 일으킬 만한 일이 몇 가지 있었다. 수술이 한창이던 때 보조자 한 사람이 평소엔 거무스름한 바베크의 손톱을 새빨간 매니큐어로 칠했다. 또 다른 사람은 고릴라의 두 다리 털을 여기저기 조금씩 밀어내고는 의사들의 메스가 근처에도 가지 않은 피부를 느슨하게 꿰매어 ‘유인용’ 실밥을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수의사 몇 명은 인간 병원의 수술실에서는 엄격히 금지된 짓을 했다. 그들은 마스크에 가려진 입으로 커다란 껌 뭉치를 힘들여 씹었다. 그러면서 이따금 입에서 놀이용 구슬 크기의 껌 덩이를 끊어내 바베크의 털 사이에 끼워 넣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바베크 담당 수의사가 나중에 내게 설명하기를, 인간의 보건규정에는 위배되는 그런 일들이 사실은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발한 계략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계략은 바베크 가슴의 절개 부위를 섬세하게 꿰맨 진짜 봉합사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뭔가 보호책을 쓰지 않으면 바베크가 깨어난 후 몇 분도 안 돼 실밥을 뜯어버릴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호할 건가? 나의 사람 환자들은, 적어도 반흔 조직이 형성되는 서른여섯 시간 동안은 실밥을 만지작거리고 싶더라도 참으라고 구슬리면 대체로 따라준다. 하지만 세상의 어떤 설교로도 고릴라가 상처를 탐사하는 걸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수의사들은 기발한 속임수를 생각해냈다. 그들은 환자의 신경을 다른 데로 돌리는 방법으로 봉합사를 보호하려 했다. 그러기 위해 고릴라로 하여금 애초에 실밥 같은 걸 뜯어내게 만드는 본능적 충동, 즉 그루밍의 충동을 역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바베크의 수의사들은 그 고릴라가 나의 인간 환자들이 수술 후에 흔히 그러듯, 정신이 혼미한 채 갈피를 못 잡고 불편한 상태로 마취에서 깨어났다고 했다. 회복실을 둘러보던 바베크는 절개한 상처가 있는 가슴 쪽으로 손을 움직이기 시작하다가, 손을 들어 올린 상태로 동작을 멈췄다. 새빨간 손톱들이 딱딱한 사탕처럼 빛났기 때문이다. 그게 족히 몇 분은 바베크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다 다시 손을 가슴 쪽으로 움직였지만 얼마 못 가서 손가락에 껌 덩이가 닿았다. 그 거슬리는 물질을 뜯고 비틀고 잡아당겨서 겨우 떼어냈나 했더니 곧바로 또 다른 껌 덩이가 손가락에 닿았다(수의사들은 껌을 씹고 나서 미생물을 죽이기 위해 열처리를 했다). 그 다음 바베크의 눈길을 끈 것은 발목에 있는 가짜 봉합 실밥이었다. 이처럼 바베크가 걸리적거리는 뭔가를 처리할 때마다 또 다른 것이 기다렸다가 관심을 끌어당김으로써 가장 중요한 것, 즉 가슴 봉합선에 그의 주의가 쏠리지 않도록 했다.
인간의학과 동물의학이 이미 하나로 수렴하고 있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다. 어느 쪽에서도 그걸 깨닫지는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일부 치료사는 자해를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하기를, 자신을 베거나 불로 지지거나 타박상을 입히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는 몸을 덜 해치면서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게 하는 ‘대용 통증’을 시도해보라고 한다. 손가락 하나를 아이스크림 통에 갑자기 집어넣거나, 얼음 한 조각을 손으로 꽉 쥐거나, 고무 밴드를 손목에 끼우고 탁 튕기는 것 등의 방법이 때로 효과가 있다.
선한 피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갈구하는 커터들은 베고 싶은 부위를 칼날 대신 빨간색 사인펜으로 그으면 된다. 빨간 식용색소를 넣어 만든 얼음덩이를 살갗에 문질러서 갈망을 적시는 진홍의 액체가 흐르게 할 수도 있다. 혹은 상처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피부라는 캔버스에 헤나 물감을 휙 뿌려도 된다(이 물감은 상처 딱지 비슷한 밀도로 말라붙어서 실감과 만족을 더해주는 추가적 이점도 있다. 물감 딱지는 다음날 떼어내면 그만이다). 자해 욕구에서 주의를 돌리는 이런 대안들은 좀 더 안전한 방법으로 자해의 ‘방출…후련함’ 효과를 얻게 해준다.
(274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