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지진보다 더 낯선 재해가 화산이겠지만, 한반도에도 도처에 화산 활동의 흔적들은 남아 있다.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도 화산 활동은 멈추지 않아 제주도에서도 용암류가 분출했다는 1002년과 폭발적인 분화로 화산체가 만들어졌다는 1007년의 기록이[고려사]에 실려 있다. 화산 분화를 그저 남의 일로만 넘겨버릴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이 올해 들어와 언론 매체들이 앞을 다투어 백두산 분화가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분화 시기는 구체적으로 2014~2015년이 될 것이라는 중국 화산학자들의 주장을 들을 수 있는가 하면, 백두산이 실제로 분화했을 경우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시뮬레이션을 했다는 소식도 들려 온다. 발해의 갑작스런 멸망과 관련되었다고도 하는 천 년 전의 대분화는 물론[조선왕조실록]에도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분화 기록들을 감안하면 백두산 폭발 임박설이 그저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진과 화산에 대하여 과연 우리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지금은 이들 재해를 고려하여 사회 인프라가 갖추어지고는 있지만, 정작 우리들의 마음가짐은 어떨까. 여전히 남의 일로만 보고 있지는 않을까. 아무런 대책도 없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지진과 화산에 대한 준비와 대응에 최전선에 서 있는 이웃나라 일본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하여 지진과 화산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이 높아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일본에는 직전에 예측된 사례가 없지만, 1975년 2월 4일 중국에서 일어난 하이청 지진은 예지된 지진으로 유명하다. 이 지진은 저녁에 발생하여 막대한 피해를 낳았으나 예지된 덕분에 많은 인명을 구하였다. 지진 발생일 오전에 예보가 나와 한겨울인데도 사람들이 바깥으로 대피하여 희생자가 적게 나왔다.
이 무렵 중국은 지진 예지 연구에 힘을 쏟아 많은 관측을 실시하고 있었다. 예지도 장기, 중기, 단기, 직전(중국에서는 임진이라고 함)으로 구분하고, 각 단계에 맞는 방재 대책 수립을 정책으로 추진하였다. 하이청 지진의 경우도 1970년경부터 토지의 상하 변동을 보여 주는 수준 측량에 의해 토지의 이상 융기가 관측되어 각종 측정이 이루어졌다. 이들 관측을 통하여 이상 현상을 조사하고 융기 정도에 따라 예보 수준을 정하였다. 관측은 기기에 의한 것뿐 아니라 지하수 변화 등 굉관 이상 현상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이 관측에 참가함으로써 지진 예지의 성공에 도움이 되었다.
중국의 지진 예지는 몇 개월에서 몇 년 전의 장기 및 중기 예지, 며칠 전의 단기 예지 그리고 직전 예지라는 단계별로 진행되었다. 기간 구분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는 지진 전에 일어나는 현상의 성질을 반영하고 있다. 산사태의 경우가 전형적인데, 산사태 발생이 가까워짐에 따라 미끄럼 면 부근의 변형이 급속하게 가속된다. 지진에서도 중·장기 이상 현상이 나타나는데, 지진 발생이 가까워지면 이상 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이청 지진의 경우에는 12월에 들어 지하수와 동물의 이상이 관측되었고, 경사계도 변화가 심했다고 보고되었다. 이것을 단기 예지 단계라고 보았다. 12월 22일에는 지진 발생이 예측된 지역 주위에서 매그니튜드 4.8의 지진이 발생했는데, 이상 현상은 진정되지 않고 오히려 커졌다. 1월 말부터 더 많은 이상이 관측되었고, 2월 3일에는 그때까지 장기간에 걸쳐 지진이 없었던 지역에 군발 지진이 발생하였고, 다음 날에는 그 수가 증가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따라서 2월 4일 10시 반 예보가 발령되었으며, 19시 30분경 지진이 발생하였다. 이 지진 예지 과정은 많은 지진 예지 연구자가 꿈꾸어 온 이상적인 모습으로서, 지진 예지에 대한 장밋빛 미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 후에도 몇 차례의 지진 예지가 성공했다고 보고되었다. --- p.94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데, 지구상에서 발생한 가장 큰 지진은 어떤 것일까? 1960년 5월 22일 남아메리카 칠레 앞 태평양 해저에서 일어난 칠레 지진은 모멘트 매그니튜드가 9.56으로, 기록이 남아 있는 지진 가운데 가장 큰 지진이다. 해저 단층의 길이는 남북 방향으로 1,200km로 추정되었다. 이 단층의 출현으로 인하여 발생한 쓰나미는 태평양 전역으로 전달되어 진원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하와이 제도는 물론 만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일본에도 큰 피해를 입혔다. 일본에서는 이 쓰나미를[칠레 지진 쓰나미]라고 부른다.
칠레에서 일본을 향하여 최단 거리로 나아가면 동쪽에서 일본 열도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일본과 칠레의 지리적 관계가 일본 열도 특히 동북 지방의 산리쿠 해안에 쓰나미로 인한 큰 피해를 가져왔다. 산리쿠 해안과 미에 현 시마 반도의 리아스식 해안 지역에는 만 입구가 대부분 동쪽을 향하여 열려 있기 때문에 동쪽에서 전달되어 온 쓰나미의 에너지가 그대로 만 안에 도달하여 막대한 피해를 일으켰다.
쓰나미는 5월 24일 오전 2시경부터 일본 각지를 덮쳤다. 쓰나미의 높이가 산리쿠 해안에서는 5~6m, 홋카이도 남해안과 시마 반도, 오키나와에서는 3~4m에 달하였다. 일본 열도 전역서 사망자와 실종자 139명, 가옥 전파 및 유실 2,800채, 반파된 가옥은 2,000채라는 피해를 입었다.
칠레 지진 쓰나미는 지진 발생으로부터 22시간 뒤에 일본 열도를 직격했는데, 왜 쓰나미의 내습을 사전에 알지 못했을까? 23일 오전 4시를 지나 일본 각지의 지진계에도 지진이 기록되었다. 따라서 칠레에 대지진이 발생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상태였다. 이 시점에서는 다음날 아침 50cm 정도의 쓰나미가 일본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발생 후 18시간이 지나 하와이에 쓰나미가 도달하여 하와이 섬 힐로에서 사망자 61명이라는 대재해가 일어났다. 이 소식은 기상청에도 들어온 것 같았지만, 결국 [쓰나미 정보]는 지진 해일의 첫 번째 파가 도달하기 전까지 발표되지 않았다. 칠레에서 일어난 대지진을 과소평가하여 긴장감이 결여된 것이 쓰나미 피해로 이어졌던 것이다. --- p.128
지진은 지구 이외의 천체에서도 발생하고 있을까? 지구뿐 아니라 우리에게 가까운 태양계의 천체, 달과 화성에서도 지진은 일어나고 있다. 지진을 조사함으로써 지구 내부를 알 수 있듯이 월진·화진을조사함으로써 이들 천체의 내부 구조와 형성사를 알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진행된 아폴로 계획으로 달 표면에 지진계를 설치하여 관측을 실시한 결과 많은 월진이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월진의 종류는 열 월진, 천발 월진, 심발 월진 그리고 운석 충돌로 인한 진동까지 다양하다. 열 월진은 달 표면에서 새벽부터 저녁 사이에 집중적으로 일어나므로 주야의 온도 변화로 인하여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표면 암석이 부서지는 현상으로 생각된다. 또한 천발 월진은 두께가 60km인 달의 지각이나 깊이 300km보다 얕은 맨틀에서 일어나며, 운석 충돌로 인한 진동보다 고주파의 파형이 만들어지는 것이 관측을 통하여 밝혀졌다. 천발 월진도 달의 지각 내 온도 변화로 암석이 팽창, 수축함으로써 응력 변화가 일어나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심발 월진은 깊이 400~900km에서 일어난다. 지진이 일어나는 시각은 지구와 달의 위치와 관계가 있으며, 주로 달 내부에 작용하는 지구 인력에 의한 기조력이 원인이다. 심발 지진 연구에 의해 달에도 지구와 마찬가지로 중심에는 핵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게 되었다. --- p.164
화산 분화로 생매장이 된 사람의 유골이 발견된 적이 있다.
1783년(덴메이 3년) 아사마 산이 대분화를 일으켜 북쪽으로 12km 떨어진 간바라 마을에서는 모든 가옥이 화산쇄설류에 매몰되어 주민의 85%가 목숨을 잃었다. 약 200년이 지나 1979년 매몰된 마을을 발굴하는 조사가 실시되었다. 이 조사에서 화산쇄설류에 매몰된 분화의 희생자로 판단되는 두 사람 분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그 전에도 부근에서 어른과 어린이 한 사람씩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화산쇄설류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유골이 발견된 많지 않은 사례이다.(중략)
간바라 열운은 순식간에 마을 전체를 토석으로 매몰시켰다. 마을 주민 570명 가운데 477명이 이류에 휩쓸렸으며, 가옥 93채가 매몰되었다. 간바라 마을을 삼킨 이류는 더욱 북상하여 와가쓰마 강의 계곡을 매몰시켜 강을 막았다. 댐은 곧 무너져 하류의 마을들은 물대포를 맞았으며, 인마?+의 시신과 가재 도구가 하구 부근의 에도 강까지 흘러가 닿았다.
간바라 마을의 생존자 93명은 대부분 마을 외곽에 있던 작은 구릉지의 관음당?a}으로 도망친 사람들이었다. 현재는 15단의 돌 계단만 노출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50단 가까이 있었음이 발굴 조사를 통하여 판명되었다. 두 사람의 유골은 가장 아랫단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관음당으로 도망치려고 돌 계단 아래에 도착한 순간 화산쇄설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은 것으로 생각된다. 이 부근에서 화산쇄설류의 두께는 5m나 된다. --- p.254
화산 분화로 화산쇄설류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도대체 화산쇄설류는 어떤 현상일까?
화산쇄설류는 화구에서 분출한 마그마의 파편이 600℃ 이상의 고온 가스와 일체가 되어 최고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로 산기슭을 흘러내리는 현상이다. 화산쇄설류가 지나간 자리는 모든 것이 파괴되고 불타버린다.
화산쇄설류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02년 서인도 제도 마르티니크 섬의 펠레 산에서 분화가 일어났을 때이다. 일본에서는 많은 희생자를 낳은 1991년 6월 운젠 후겐다케의 대참사를 계기로 화산쇄설류의 위력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화산쇄설류는 화산 재해 가운데 가장 큰 피해를 가져온다.
일반적으로 화산쇄설류는 분연 붕괴형과 용암 붕락형 두 종류가 있다. 전자는 분화와 함께 발생하는 화산쇄설류이며, 후자는 운젠 후겐다케처럼 고온의 용암돔이 붕락할 때 발생하는 화산쇄설류이다. 인도네시아의 메라피 화산은 빈번하게 화산쇄설류를 일으키는 것으로 유명한데, 대부분 후자의 유형에 속한다. (중략)
화산쇄설류에 휘말리면 목숨을 잃게 된다. 따라서 화산쇄설류가 흘러내릴 가능성이 있는 하류역에는 접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화산쇄설류 분화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융설기에는 토석류로 인한 2차 재해의 위험이 있으므로 화산체에서 떨어져 있더라도 그 하류역에서는 충분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렇게 화산체 주변의 재해는 조직적으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 pp.202-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