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타나는 빈곤은 충격적이다. 새로운 빈곤은 경제기적을 이룬 시대 이후로 전해 내려오는 생각인 삶에 대한 설계를 말살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새로운 빈곤의 본질은 이것이 빈곤화의 과정이라는 것에서 성립된다. 지금까지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자녀들에 대해서도 사회적 상승의 시각만을 알고 있었던 계층들은 이제는 사회적 추락이라는 지옥과 싸워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계급이동이 일어난다는 것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하락이동일 뿐이다. 과거에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너는 나보다 더 잘 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제는 자녀들이 부모들보다 더 못 살게 되지 않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어느 지역에서 남성 숙련노동자들, 전문노동자들,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있는 여성들과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 하락을 보여주는 모든 결과들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회적으로 무용지물이 되었고, 정의에 대한 감정들이 상처를 받고 있으며, 무력감을 경험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남성들은 여러 차례 해고되고 재고용되고 해고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여성들은 불안정하면서도 매우 열악한 임금을 주는 일자리, 장기간의 실업상태, 직장 일을 하면서도 가사를 돌보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였다. 남성들은 사회적 안정, 낮은 수준에서라도 갖고 싶은 풍요, 사회적 인정을 위해서 어려운 노동조건들을 감내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여성들은 스스로 돈을 벌면서 동시에 자녀들을 위해 시간을 쓸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노동 성과와 노동에 대한 열정이 사회적 안정과 인정을 보장해 준다는 약속에 대해 그들은 동요하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사회적 하락을 경험하고 있었다. 금속노동자에서 거리의 환경미화원으로 하락하였고, 임금의 손실도 있었으며, 조기 은퇴를 강요당하였다. 열심히 일하면 어느 정도의 풍요와 사회적으로 인정된 지위가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이 보장하는 삶에 대한 설계가 사기(詐欺)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여성들은 항상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을 하였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항상 새로운 일자리를 다시 얻을 수 있었다. 저임금을 주는 일자리에서 항구적으로 얻을 수 있었던 기회들은 그러나 이제는 사라지고 있다. 50세가 넘은 나를 누가 한시적 일자리에라도 받아 주겠는가? 이렇게 일하는 것조차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아무 불평도 없이 시키는 대로 모든 것을 했음에도, 이것도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열심히 일하고, 일하면서 철저하게 일에 종속되는 태도를 보이면 사회적 안정과 인정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효력이 없다. 직업교육, 근면, 굴욕, 충성 등 이 모든 것들도 사회적 하락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지는 못한다. 당사자들은 이러한 현실을 공정성을 위반하는 구역질나는 현실로 인지하고 있으며, 깊은 상처와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심각한 무력감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사람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행실이 바르고 건실한 사람들을 불러 들여야 한다는 논쟁도 이러한 현실에서 비롯된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이러한 현실에서는 인지되지 않는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내동댕이쳐지고,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노동을 해야 한다는 공허한 정치적인 언설로 달래지거나, 인생 상담자들이 쓰는 세련되게 빈곤해지는 것이라는 수필의 몇몇 짧은 문장들에 의해 덮여 버리기도 한다. 사회적 인정을 위한 투쟁의 투기장에서 선동정치가들이나 이간질을 일삼는 사람들이 유일하게 남은 위대한 말을 꺼내는 단계가 오게 되면, 사회적 무용지물이 된 수많은 사람들이 당하는 무시는 이들에게 보복의 형식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사회적 구제가 아니라 보복인 것이다.---p.273
자신의 귀한 삶을 빈곤과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빈곤자들은 가장 열악한 직업이나 일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가장 적은 수입에 시달리면서 매우 협소하고 습기 찬 방에서 산다. 그들은 질병에 가장 취약한 노동에 종사하며, 주변 환경이 가장 나쁜 지역에 거주한다. 그들은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학교에 가며, 어느 곳에서나 빈곤자가 아닌 사람들보다 더욱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죽음을 제외하고는 빈곤자들은 모든 것을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오로지 죽음만이 빈곤자들보다 소득이 높은 사람들에 비해서 몇 년 먼저 찾아온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빈곤자들이 날마다 겪는 현실이다. 이 현실은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빈곤자들은 한계상황에서 살아가며, 그들이 빈곤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들이 결여되어 있는 현실과 싸워야 하고, 존재의 이유를 상실한 것에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p.4
우리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빈곤을 줄이는 방향으로 키를 조정할 수 있는 수단들과 가능성들은 충분하고도 많다. 빈곤은 자연에서 갑자기 발생하는 자연재해들과 같은 현상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이 갑자기 출현할 때마다 사람들은 놀라지만 빈곤은 이렇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빈곤에 대해 놀랄 필요가 없다. 유럽 국가들의 사회보장정책들을 비교해 보면 빈곤을 줄여 나갈 수 있는 길들을 추출해 낼 수 있다. 빈곤연구는 부유한 나라들의 경우 거시정책에서 빈곤퇴치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아래의 8개가 있다는 사실을 경험과학적으로 증명하였다.
1. 사회안전망 확보를 위해 국가가 지출하는 재정의 비율과 이 돈의 분배를 통해 얻 을 수 있는 실질적 효과
2. 사회적 출신 성분에 제약받지 않고 사회적 상승을 보장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
3. 소득이 높을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누진세 체계
4. 소득을 보장하고 생존을 지켜주는 일자리의 수
5. 여성취업률, 여성이 부모로서 직업을 가지면서도 가정을 돌볼 수 있는 가능성
6. 상대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는 집단에 대해 노동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자질 향상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
7. 사회시스템에서 최소한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의 구축
8. 감당할 수 있는 주거의 가능성
위에서 말한 8개 항목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얻는 국가들이 유럽에서 빈곤율이 가장 낮은 국가들이다.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의 빈곤율이 가장 낮으며, 네덜란드는 빈곤율이 내려가는 추세에 있고, 오스트리아도 낮은 편에 속한다. (...). 빈곤퇴치 투쟁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사람은 일단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시스템을 위의 8개 항목에 따라 검사해 보아야 한다. 빈곤문제를 축소해서 보거나 사회전체를 보는 시각으로 사고하지 않는 사람은 8개 항목 중에서 하나나 둘을 끄집어내서 살펴보고 다른 항목들을 잊어버린다. 특히 1번 항인 사회안전망 확보를 위한 재정지출과 3번 항인 누진세가 빈곤퇴치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음에도 두 항목들을 넘어가 버린다.---p.345
어떤 나라에서 사회적 및 경제적 관계들이 불평등하면 할수록, 범죄, 마약 소비, 10대 임신, 우울증, 비만 등과 같은 문제들이 증가한다. 이런 모든 문제들이 다른 문제들을 일으키면서 여러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 이것은 지난 30년 동안 수행된 수많은 연구들에서 입증되었다. 영국의 불평등문제 및 건강문제 전문가들인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케트는 그들의 분석 결과를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였으며, 더욱 공정하게 분배가 이루어진 사회들에서 거의 모든 사회적 관계들이 더욱 좋게 나타난다고 결론지었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경제성장이나 부의 증가가 이루어진 나라들에서도 이러한 부가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으면 경제성장이 가져오는 성과는 별로 없다. 미국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일본 사람들보다 30%를 더 많이 벌지만 수명은 5년이 짧다. 상위 20%에 속하는 사람들과 하위 20%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의 소득격차가 커지면 커질수록 문맹률과 범죄가 증가한다. 미국에서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비율은 미국보다 사회적 균열이 더 낮은 나라인 벨기에에 비해 3배나 높다. 미국의 10대 임신율은 스웨덴이나 네덜란드 보다 10배가 높으며, 영국의 10대 임신율은 두 나라에 비해 5배가 높다.
연구결과들은 아래와 같은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소득과 재산이 평등하게 분배되면 될수록, 소득 하위계층뿐만 아니라 중산층, 더 나아가 사회전체가 더욱 좋아진다. 정의로운 분배가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교육결과와 기대수명이 최상의 소득계층에서도 더욱 좋게 나타난다. 빈부격차가 낮은 사회에서는 환경과 기후에 주는 부담들도 더 낮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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