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승리란 무엇인가
분쟁과 갈등, 원한과 복수의 종국적 해결책
나는 언젠가 미국 펜실바니아주에 있는 아미쉬 마을을 하루 구경한 적이 있다. 우주선이 달을 갔다오는 이런 시대에 아직도 19세기적 삶, 목가적 삶을 태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 신기하고, 아름답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후 이 아미쉬 마을에 우유배달을 하던 한 젊은이가 정신장애로 아미쉬의 한 가족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고 그 생존가족이 법정에서 그 가해자를 용서한 사건을 다룬 책을 읽었다. 도대체 어떻게 살인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지가 신기했는지 미국에서도 이 책은 큰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의문이 하워드 제어(Howard Zehr)가 쓴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이 책을 읽고 완전히 해소되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회복적 정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별짓기, 가해자에 대한 응징, 피해자의 손해에 대한 보상의 현존하는 사법적 정의, 응보적 정의를 넘어서는 것이다. 법정의 현실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원고와 피고, 고소.고발인과 피의자 사이에 상호간의 공방의 과정을 거쳐 그 누군가 승자에게 손이 올라가고 나머지 한 당사자는 울분의 패배를 당한다. 그는 억울해서 또 항소심, 대법원 그것도 모자라 헌법재판소까지 올라간다. 거기서 현실적.최종적으로 결판이 난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 사건에 관계되었던 사람들에게는 종국적 평화가 오고 분쟁이 끝나는가?
그렇지 않다. 여전히 불만과 분노가 가득 차 있다. 나는 이른바 ‘사법적 피해자’라고 하여 모든 법적 분쟁해결절차가 끝난 뒤에도 그 분노를 삭이지 못하여 끝없이 언론과 시민단체에 진정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의 나머지 삶에는 어둠의 그림지가 드리워지게 된다. 응보는 늘 원한을 남기고 심지어 그 응보적 정의를 이룬 사람조차 마음 한구석에 불만과 불안을 갖는다.
회복적 정의는 바로 이러한 경우 마음으로부터의 용서와 화해를 통하여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것은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 모두에게 만족을 준다. 외형적으로 보면 양보하는 형식일 수도 있고, 포기일 수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만족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의 승리이기 마련이다. 나는 이 회복적 정의가 단지 종교인들의 손 안에 남아있을 것이 아니라 현실의 법정에서도 추구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법조인들이나 사회운동가들에게도 유용한 책이다.
젊은 시절 나는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 압제자 로마에 대해 물리력과 저항을 통해 그 식민지 상태를 극복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통해 종국적으로는 로마인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거꾸로 로마를 정복하기까지 하였다. 용서와 사랑의 힘은 한 인간을 변화시키고 사회와 역사를 바꾸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도 바뀌기를 바란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어떤 분야의 가장 권위있는 전문가를 표현할 때 우리는 '아버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형법의 아버지, 범죄학의 아버지, 모든 분야에는 그 분야의 아버지가 있다. “렌즈를 바꾸기(Changing Lenses)”라는 제목의 이 책은 하워드 제어를 회복적 사법의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만든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형벌을 범죄에 대한 주된 대응수단으로 삼고, 범죄자에 대한 해악부과를 통해 사회적 비난을 표현하는 종래의 형사사법을 ‘응보적 사법(Retributive Justice)’이라고 부르며,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을 범죄에 대한 대응방식에 있어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타난 회복적 사법의 철학과 이념을 알게 되면 범죄문제에 대한 기존의 형사사법은 단순히 범죄사건을 ‘처리’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는 반성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에 나타난 회복적 사법의 새로운 사고패턴을 접하게 되면 범죄를 둘러싼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프로그램들을 고안할 수 있는 상상력을 얻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범죄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범죄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누가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범죄자, 범죄피해자 그리고 우리사회에 대해 우리가 무엇으로 응답해야 할 것인가? 라는 세가지 물음에 대해 답을 말할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해 준다. 그러기에 회복적 사법은 ‘강물같다’라고 말하고 있는 하워드 제어를 어떤 이들은 회복적 사법의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성돈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0년 5월부터 서울가정법원에서 시작한 화해권고제도는 실로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어느 한쪽이 이기고 다른 쪽은 지는 승패가 아니라 가해소년과 피해소년 모두에게 진정한 사과와 화해가 가능하게 도와주는 이러한 제도의 이론적 근간이 되는 '회복적 사법'의 철학과 역사를 잘 정리한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 사회에 소개되게 되어 법조인의 한사람으로써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앞으로 더욱 확대될 화해권고제도에 참여하는 여러 위원들과 법조인들이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사법제도에 대해 더 깊은 이해와 실질적 도움을 받기를 기대해 본다.
김귀옥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